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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 Sep 14. 2019

클라라의 파란 웃음이 만개하는 날

카렐 차페크: 푸른 국화 (Modrá chryzantéma)

단지 조금 이상한 사람들, 카렐 차페크, 홍성영 옮김, 민음사: 푸른 국화, p9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정찬형 옮김, 모비딕: 푸른 국화, p32




   푸른 꽃을 본 일이 있는가? 예전, 한참 사진을 찍을 때였다. 산사를 찾아다니거나 거리에서, 또는 꽃 전시장에서 많은 꽃들을 찍었고 좀 더 세밀하게 담아내겠다는 욕심에 매크로 렌즈까지 장만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수많은 꽃들을 찍으며 의아하게 느낀 점은 푸른 꽃은 찾기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파란색 계통의 꽃잎을 가진 꽃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오래전 노발리스의 소설 <푸른 꽃>을 읽으면서였는데 수만 가지 형형색색의 꽃들을 보고 찍었지만 파란 계통의 꽃은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비단 사진뿐만이 아니라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경험했던 꽃들의 색을 곰곰이 반추해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거리의 화단에서 엷은 파란빛을 띠는 제비꽃을 본 적이 있었지만 보라색 계통이었다. 여름 수국이 푸르스름한 빛을 띠기도 했지만 만개할수록 이 색은 곧 보랏빛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교배를 통해서 푸른 꽃잎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지만 여하튼 볼 수는 없었다. 사실 유전자 교배를 통한 파란 장미는 존재한다. 오래전 상상력을 강조하기 위해 파란 장미를 카피로 내세웠던 광고가 있었지만 실제로 2004년에 13년 간의 연구를 통해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 학자들이 파란 장미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하지만 자연 그대로의 파란 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인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2006년 8월의 여름이라고 사진에는 기록되어 있다, 회사 워크숍을 영월 동강으로 간 적이 있었고 그곳 산기슭 후미진 언덕배기 덤불 속에 숨어 있던 자그마한 푸른 꽃을 우연히 발견하고야 말았다. 신기하고도 기쁜 마음에 셔터를 연신 눌러댔던 기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아래의 이미지가 그때 찍은 그 꽃, 푸른 꽃의 사진이다.



   이 꽃의 이름을 알 수는 없었지만 몇 년이 지나고 구글 신의 검색 기능이 이미지까지 확장된 후에야 그 기능을 이용해서 그때 찍었던 이 꽃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름이 너무나 특이하다: "닭의장풀(Dayflower)", 학명은 Commelina(콤멜리나)며 달개비, 압척초(鴨跖草) 또는 닭밑씻개라 불리기도 한단다. 닭장 근처에서 많이 자란다고 해서, 또는 꽃 모양이 닭볏을 닮았다고 해서 '닭의장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매우 조그마한 꽃이었는데 꽃 자체는 특이하고 예쁘다. 두 장의 파란 잎과 그 아래로는 한 장의 하얀 반투명 잎을 가지고 있으며 두 개의 기다란 수술과 네 개의 노란 헛수술을 갖고 있다. 번식력이 워낙 좋아 잡초로 취급되기도 하는데 예로부터 복통 치료나 이뇨작용으로 인한 열을 내리는 데 많이 쓰였으며 순을 꺾어 나물로도 먹는다고 한다. 그리고 13년이 지난 후...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 근처 길가의 후미진 흙무더기나 돌담 아래에서 이 꽃을 다시 보았다.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꽃은 여전히, 다행히도 파란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푸른 잎을 가진 꽃 닭의장풀을 두 번째로 봤을 때, 그 이후로도 내가 사는 도심 속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을 때 다소 허무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그래서 당연히 시골의 깊은 산속에서나 운 좋게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고 또 그런 곳에서 어렵사리 찾았더랬다. 하지만 닭의장풀을 잊고 지낸 두터운 시간을 무색하게 하듯 도심의 대로(大路) 한 켠 돌담 아래에서 올망졸망 피어있는 이 녀석을 다시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두서없이 푸른 꽃잎을 가진 '닭의장풀'이라는 꽃과 사진의 기억을 늘어놓는 이유는 오늘 소개할 카렐 차페크(이전 브런치 글 "하나의 사건, 여러 개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차페크의 장편 <유성>을 소개한 바 있다.)의 단편 <푸른 국화> 때문이다. 푸른 국화... 국화 역시 - 요즘은 교배를 통해 더욱더 - 다양하고 풍성한 색깔을 갖고 있다. 하지만 푸른 국화는 현실 세계에는 자연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 것 같다. 차페크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이 푸른 국화를 찾아 헤매는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상상의 장치를 통해서 만들었다. 8 ~ 9페이지 정도 분량의 이 단편은 차페크의 단편집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카렐 차페크, 정찬형 옮김, 모비딕)>에 담겨 있는데 이 책은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와 쌍을 이루는 책이다. 이 두 권에 담긴 다양한 단편들은 기묘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미스터리라는 화두를 재밌고 기발하지만 결코 무겁지 않게 던지고 있다. 원제는 <한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와 <다른 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로 <주머니 이야기>로 통칭되기도 한다. 차페크는 자신이 신문에 연재하던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이야기들을 주머니 이야기라는 두 권의 단편집으로 묶어 1928년과 1929년에 1년이라는 간극을 두고 각각 출간했다. 국내에서는 민음사에서, 1993년에 이 두 권에 담긴 총 48개의 이야기들 중 36개를 발췌하여 한 권으로 엮어 <단지 조금 이상한 사람들(홍성영 옮김)>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다. 하지만 이 책은 절판되었기에 필자는 오래전 제본판을 통해서 이 단편을 읽었지만 2015년에 모비딕 출판사에서 각각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와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로 완전 번역하여 출간했다. 현재는 오른쪽 주머니에 해당하는 이야기가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란 제목으로 을유문화사를 통해서도 번역, 출간되어 있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며 주인공인 화자는 루베니츠라는 지역에 있는 리흐텐베르그 왕자의 집 정원사다. 집주인인 왕자는 영국에서 나는 모든 나무를 수입했으며 네덜란드로부터 1만 7천 종의 화초를 들여올 정도로 식물에 대한 편집증적 애착을 가진 수집가였다. 어느 일요일, 주인공은 길을 걷다 클라라라는 소녀를 만난다. 클라라는 우리가 어릴 적 한 번은 본 적이 있을 법한 바보다; 귀도 멀고 벙어리에다 머리도 정상이 아닌, 그래서 축복을 받은 듯 늘 신이 나서 까르르 웃으며 마을 여기저기를 즐겁게 쏘다니는, 천진난만한 백치 소녀다. 여느 때처럼 클라라의 키스 세례를 피하기 위해 주인공은 몸을 요리조리 피하던 중 클라라의 손에 들린 꽃다발 한 움큼 속에서 도드라진 한 송이의 꽃을 보게 된다. 그 꽃은 주인공도 보고 싶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알려진 푸른 국화였다. 그런 귀하디 귀한 푸른 국화를 바보 소녀의 품에서 보게 되다니...


   클라라는 쾌활하게 주인공에게 꽃다발을 안기고 손을 내밀었다. 주인공은 동전 한 닢을 쥐어 주고는 간절하게 이 꽃의 출처를 물었다. 하지만 클라라는 백치답게 웃으며 주인공을 껴안으려고만 했다. 주인공은 푸른 국화만 재빨리 뽑아 들고는 식물 수집광인 주인에게 달려갔다. 주인은 클라라와 함께 푸른 국화를 찾기 위해 당장 마차를 대령시켰지만 그 사이 클라라는 사라지고 없었다. 1시간 여를 기다린 끝에 숨을 헐떡이며 나타난 클라라는 이번에는 한 다발의 푸른 국화를 안고 있었다. 주인은 지폐를 꺼내 주었지만 지폐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클라라는 실망해서 울기만 할 뿐이다. 동전을 쥐어주자 클라라는 좋아서 폴짝폴짝 뛰었고 그런 클라라를 마차에 태워 푸른 국화가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달리는 마차에 신이 난 클라라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놀란 말들은 속도를 높였고 마부는 혼비백산을 했다. 그런 상태로 무려 1시간 반을 달렸고 인내심이 바닥이 난 주인은 클라라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클라라가 손끝으로 먼 곳을 가리켰지만 그것은 마차를 타는 재미에 빠져 마차에서 내리지 않기 위한 행동임을 간파할 수 있었고 기어이 주인은 노발대발하며 클라라에게 저주를 퍼부어댔다. 어쩌면 주인이 클라라를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주인공은 다른 방안을 짜내어 주인에게 제안했다. 클라라 없이 자신들이 직접 찾자는 것이다. 지도에서 반경 2마일 이내의 지역을 몇 구획으로 나누어 차례차례 뒤져보자는 방안이었다. 그 근거로 클라라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푸른 국화를 가져왔으며 이는 그 출처가 반경 2마일 내라는 추론이었다. 또한 줄기 아래 묻은 흙이 인분으로 인해 기름진 점토라는 점과 잎에 뭍은 비둘기 배설물, 잎 꼭지에 전나무 껍질이 붙어 있다는 사실로 보아 2마일 이내의 모든 헛간과 오두막을 뒤지면 된다고 설득했다.


   다음 날 아침, 클라라는 또다시 한 다발의 푸른 국화를 주인공에게 안겨 주었고 주인과 주인공은 인부들을 불러 모아 네 개의 팀으로 나누어 계획대로 탐사를 시작했다. 탐사대의 한 팀을 맡은 주인공은 구획 내의 모든 선술집에 들러 지루한 탐문을 한 후 모든 농가를 일일이 방문하여 농가 주인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야심한 밤까지 다리품을 팔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런 상황은 나머지 세 팀도 마찬가지였다. 손바닥만 한 좁은 마을임에도 결코 푸른 국화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라라는 갓 꺾은 푸른 국화 한 다발을 또 가져왔다. 이에 주인은 한 술 더 떴다. 마을의 셀럽이었던 주인은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형사들을 불렀고 심지어 일반 경찰과 시의회 사람들,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한 무리의 집시들을 모아 2마일 내의 모든 땅을 수색했다. 동원된 사람들은 피어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꺾어서 주인에게 달려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한 송이의 푸른 국화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는 클라라를 미행하는 방법만 남았다. 하지만 이 방법도 소용이 없었다. 하루 종일 클라라를 감시했지만 클라라는 저녁 무렵이면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자정이 지나서는 한 팔 가득 푸른 국화를 안고 나타났다. 이런 상태로 계속 간다면 클라라가 푸른 국화를 모조리 꺾어버릴 것이다, 이런 두려움에 조바심이 난 주인은 기어이 클라라를 감옥에 가두고 말았다.


   푸른 국화로 몸이 달아 오른 주인은 점차로 주인공을 닦달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 길길이 날뛰면서 클라라와 다를 바 없는 바보 멍청이라고 주인공을 몰아세웠다. 이런 주인의 폭언은 주인공의 인내심을 박살내 버렸고 주인공은 더 이상 늙은 바보 천치 소리는 듣지 않겠다고 쏘아붙이고는 다시는 루베니츠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짐을 챙겨 기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기차가 출발하는 순간 그는 어떤 북받쳐 오르는 감정 때문에 자리에 앉아 어린애처럼 펑펑 울고 말았다. 주인에게 당한 폭언 때문이 아니라 이제는 영영 푸른 국화를 볼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려 계속 흐느끼던 중에 철도 변에 위치한, 푸른색을 띤 무엇이 주인공의 눈에 들어왔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는 무조건 반사처럼 벌떡 일어나 비상 브레이크를 힘껏 당겼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객실은 난리가 났고 주인공도 반대편 자리로 처박혀 손가락까지 부러졌다. 놀라서 달려온 차장을 어설픈 변명으로 달랬지만 엄청난 벌금을 물고 나서야 기차에서 내린 주인공은 철로를 따라 푸른 물체 쪽으로 걸어갔다. 이런 바보! 확실치도 않은 것에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만 했던 쓸데없는 짓을 저질렀다고 자책하며 500미터 정도 갔을 때 마침내 그는 볼 수 있었다. 작은 둑 저편으로 철도 경비원들의 자그마한 관사가 보였고 관사의 정원을 에워싼 나무 울타리 사이로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두 무더기의 푸른 국화들을...


   일반적으로 철도 경비원들이 관사에서 키운다고 알려진 식물들은 그곳에서는 볼 수 없었고 그저 약간의 감자와 강낭콩, 한 그루의 검은 엘더베리 나무와 한구석에 피어 있는 두 무더기의 푸른 국화만이 있을 뿐이다. 울타리 이편에서 주인공은 경비원에게 그 꽃을 어디서 구했는지 물었다. 푸른 국화 말이오? 경비원은 심드렁하게 자신의 전임 경비원이 키우던 거라 했다. 그러면서 철로 위를 걷지 말라고 경고하며 "철로 위 보행 금지"라고 적힌 표지판을 가리켰다. 주인공은 관사 쪽으로 가려했으나 경비원이 철로 위를 걷지 말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철로에서 조금 떨어져 앉아야 했다. 혹시 국화를 팔 수 있는지 물었지만 경비원은 짜증만 내고 그곳에 앉아있지 말고 나가라고 욕지기만 퍼부울뿐이었다. 그렇게 30분이 지나 경비원이 철로를 살피러 나왔을 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그를 보고 다가왔다, 여기서 나갈 거요 말 거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철로 위를 걸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어떻게 여기서 나가라는 겁니까? 경비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번 한 번은 눈감아 줄 터이니 자신이 둑 아래로 사라지면 그때 철로를 따라 나가라고 했다.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경비원이 사라지자 주인공은 반대로 산기슭을 기어올라 관사 정원으로 들어갔고 두 무더기의 푸른 국화를 모두 캐내어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1시간 후 주인공은 푸른 국화를 품에 안고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이제 비밀이 풀렸다. 바로 보행 금지 표지가 비밀의 열쇠였다. 아무도, 자신들뿐만 아니라 경찰이나 집시들, 심지어 어린애들까지도 그 푯말 때문에 철로를 건너갈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직 클라라만이,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데다 정신마저 온전치 않은 백치 클라라만이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고향으로 가져온 푸른 국화에 클라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15년 동안, 경비원이 방치하듯 키운 것과는 다르게 클라라를 아기 다루듯 애지중지 키웠다. 매년 클라라는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의 시작과 더불어 만개하여 8월부터 조용히 지기 시작한다. 비록 증명할 길은 없지만 이제 주인공은 세상에서 푸른 국화를 가진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랑스럽게 중얼거린다. "아, 물론 브리타니와 아나스타샤도 약간 푸른색이 감돌긴 해. 하지만 한껏 피어난 클라라가 자태를 뽐낼 때면 세상은 온통 클라라 이야기만을 할 거야!"






   예전, MBC 예능 "나는 가수다"에서 박정현이 다시 불러 역주행 신드롬을 유발했던 조용필의 노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에 이런 가사가 있다;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원하는 소중한 것은 당연히 찾기 어렵다고, 막연히 먼 곳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우리는 그저 멀리 떠날 생각만 한다. 그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 부근이나 가까운 곳은 돌아볼 생각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허망하게도 적지 않은 시간만 낭비한 채로 멀리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오고 나서야 가까운 곳을 보게 된다. 아니, 보게 된다면 다행일 것이다. 필자의 사진과 기억 속의 푸른 꽃 '닭의장풀'도 마찬가지 경험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내가 살고 일하는 도심 한 복판 대로변에, 나의 삶의 지근거리 안에 닭의장풀이 존재하리라고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껏 우리가 해오던 반복되는 패턴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것이 바로 루틴이며 웬만해서는 그 루틴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 루틴들을 표현하는 다른 말이 고정관념일 것이다. 우리는 이런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지 못한다.


   하지만 누구든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은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빈번하게 쓰던 어떤 단어나 잘 알고 있던 사람의 이름, 또는 어떤 영화나 작품의 제목이 순간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것을 기억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은 결코 떠오르지 않다가 그것을 생각하기를 멈췄을 때 비로소 그것은 불쑥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각성시킨다. 일상에서건 또는 업무에서건 어떤 문제에 막혀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엄청난 고민과 번뇌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문제는 풀리지 않는 경우도 이와 비견될 수 있다. 그런 고민과 번뇌에 이젠 지쳐서 반쯤은 포기하고 아예 그 고민을 멈추고 머리를 비운 채로 다른 일이나 엉뚱한 생각을 하다 문득 어떤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순간이 바로, 닥친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찾는 그 동안의 고유한 패턴을 벗어난 결과 얻게 되는 해결책의 경험이 아닐까? 관점을 바꾸어 보거나 다르게 생각하기, 아니 더 나아가서는 생각을 비우기...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찾고자 하는 어떤 것을 뜻하지 않게 발견하기도 한다그 순간은 바로 "클라라되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 순간을 잡고 난 후라면, 우리의 오감은 만개한 클라라의 푸른 웃음으로 가득 차서는 누구를 만나든 한동안 우리는 클라라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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