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신은 1916년 평양 무역상 강용석씨의 7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는 평양 서문공립여자고보 시절이던 1931년 전조선여자올림픽대회 200m에서 29초3의 신기록을 세우고 1933년 조선신궁경기대회 200m에서는 27초6의 신기록으로 우승하는 등 선배인 현금녀와 함께 이 학교 육상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학교 졸업 후 그가 택한 길은 일본 유학이었다. 당시 고등보통학교만 졸업하면 교사 자격이 주어졌으나 강복신은 체육 이론을 더 체계적으로 배우기를 원했다. 일본 도쿄 여자체육전문학교에서 1년 동안 공부하고 귀국한 뒤에는 동덕고등여학교 유일한 여자 체육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사단법인 100인의 여성체육인이 과거 자료들을 참고해 편찬한 <한국여성체육 100년: 구술생애사>에 의하면 강복신은 “개인적 상황보다도 학생들을 먼저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사”였다. 출산일 전날까지도 전교스케이트경기대회에 참가할 학생들을 지도하는 등 책임감이 강했다. 여성체육진흥책에 대해서는 학교 체육의 보편화를 주장하는 소신 있는 교사이기도 했다.
1939년 결혼한 강복신은 넉넉지 않은 살림에 교사 일을 계속 하면서 집안일도 병행했다. 1941년 첫째 딸을 출산하고 1943년 둘째 아이를 낳았으나 몸조리도 제대로 못하는 바쁜 일상에 건강했던 그의 몸은 서서히 망가졌고 지병인 간장염이 악화돼 결국 1944년 5월 생을 마감했다.
강복신의 남편은 훗날 아내의 죽음에 대해 “신혼의 꿈 같다는 재미도 모두 잊은 채 집안 살림, 학교 일에 시달리다 처는 스물 아홉 한창 나이에 가고 말았다. 비통한 일이었다”고 서술한다. 강복신의 남편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2002년 작고)이었다. ‘마라톤 영웅의 아내’가 아니라 어려운 사회적 환경에 굴하지 않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여자 체육인 강복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