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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Sep 19. 2021

손과 발의 노동자 이야기

5분 노트

어느 날, 그는 목욕탕에 갔다. 이날도 과수원에서 하루 종일 일한 터. 손과 발은 흙투성이였다. 집에서 얼추 씻었지만 손톱, 밭 톱에 낀 흙은 사라지지 않았다.

 딸이 사준 9만 원짜리 단화를 신었다. 쿠션이 있어서 걷기 편했다. 나름 외출 때만 신고는 했다. 딸은 이 신발을 사주기 위해 회사일에 얼마나 치였을까. 그는 늘 걱정투성이다.


 목욕탕 입구에는 여러 신발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는 혹여 신발을 잃어버릴까 싶어 구석에, 남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나름 숨겨놨다. 하지만 오판이었다.

 하루 노동의 흔적을 물에 씻어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 그는 깨달았다. 신발이 사라졌다는 것을. 아무리 뒤져도 그의 단화는 없었다. 목욕탕 주인에게 물어도 알지 못했다. 주인에게 혹여 신발을 잘못 신고 간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나중에라도 알려달라며 전화번호를 남겼다. 자신은 허름한 슬리퍼 하나를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음속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딸이 사준 것인데...'


1주일 뒤에도, 한 달 뒤에도 목욕탕에서 연락은 없었다. 그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신발을 가져간 게 분명했다.

 그는 한참 뒤 딸에게 말했다.

 "누가 그 단화가 좋아 보여서 신고 갔나 봐. 그래도 엄마는 괜찮아. 나보다 못 사는 사람이 신고 갔을 테니까. 그 사람의 발은 편해졌을 테니까."

 .....

그는 세금 낼 때 좋아한다. 나라가 세금으로 좋은 일은 할 것이라고... 제주 4.3 사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남의 밥을 얻어먹을 정도로 지독한 가난으로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그는 손과 발의 노동을 하면서 더 많이 공부한 이들보다 더 많이 배려하고 베푼다. 육체의 노동과 정신노동에 대해 차별의 선을 긋는 그 누구와는 다르다. 그는...우리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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