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기 전에 떠나려던 마음
나는 자꾸만 그를 시험했다. 그래도 나를 사랑할 수 있는지. 모든 말들이 단서처럼 보였고, 모든 행동이 그의 사랑을 셈하게 했다. 사랑을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별일이 된다. 그의 말과 행동은 더 거대해야 했다. 일반적인 사랑과는 다른, 엄청난 것이어야 했다. 이런 나를 사랑하려면 적당한 사랑으로는 안 된다고 믿었다. 그런 마음으로 그를 바라보니 그의 사랑은 너무 평범하고 초라해 보였다. 날 더 아껴야지. 더 따뜻한 눈빛으로 날 바라봐야지. 힘들어도 날 보러 와야지. 악귀 들린 사람처럼 매 순간 도끼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
수틀린 날이었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그가 갑자기 업무 전화를 받으러 나갔고, 우리 자리에는 덩그러니 수제 햄버거가 놓여 있었다. 금방 오겠지 하고 먼저 칼질을 시작했고, 내 햄버거가 다 사라지고 얼음 소리가 나도록 콜라를 다 마실 때까지 그는 통화 중이었다. 식당 창가에서는 그가 전화하는 모습이 보였다. 중간중간 담배를 피우고, 하늘을 바라보고, 바닥의 돌맹이를 톡톡 차기도 했다. 멀찍이서 그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식당 안에서 혼자 기다리고 있을 나는 안중에도 없어 보였다. 한 번쯤 내가 밥을 먹고 있는지, 자기를 기다리는지 어떤지 고개를 돌려 살필 법도 한데, 그의 시선은 식당 창가에 앉아 있는 나를 한 번도 향하지 않았다. 전화는 길어져서 30분이 넘어섰고, 그가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햄버거는 이미 식어 있었다. 기분이 매우 안 좋아졌다.
"너는 전화를 그렇게 오래하면서 한 번을 나한테 양해를 안 구하더라."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업무 전화 받으러 간 거 설명 안 해도 알잖아. 내가 뭐 친구랑 통화를 했겠어?
당연히 너라면 이해해 줄 줄 알았지. 나한테 그렇게 쏘아붙일 일은 아니잖아."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보다 더 큰 사랑이 필요했다. 나만의 정답을 만들어 놓고, 이 정도는 해야 이런 나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넌 거기서 미안하다고 말했어야지. 이런 나도 사랑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원래는 밥을 먹고 전시를 보러 가기로 했는데 그냥 집에 가겠다고 했다. 작은 일에도 섭섭했고, 마음이 화르르 불처럼 타올랐다. 어떻게 나한테 이래.
그가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나는 됐다고 했다. 그는 왜 요즘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모르겠다고 화를 냈다. 난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뭐가 예민해. 너가 날 사랑하지 않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다. 굳이 굳이 데려다준다는 그를 거절하지 못해 조수석에 앉았다. 집까지 향하는 길,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믿었다. 내 처지도 이렇고, 그는 아기를 낳고 싶어하고, 무엇보다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으니까.
집 앞에 도착했다. 나는 그에게 헤어지자고 냉정하게 말했다. 그가 황당하게 물었다.
"왜? 왜 갑자기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데?" 정말 황망한 표정이었다.
"나 그냥 오빠랑 싸우는 게 지겨워. 내 마음도 몰라주고 진짜 싫어."
이상했다. 그전까지는 이게 맞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말을 꺼내는 순간 알았다.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어떻게든 그에게서 찾고, 모든 책임을 그에게 전가하고, 그것 때문에 헤어지는 것으로 내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는 걸. 다 핑계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콧물이랑 침이랑 뒤범벅이 돼서 조수석에서 미친 여자처럼 울었다. 30분을 울었다. 그는 나를 왜 달래야 하는지, 이 여자가 왜 이렇게 우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옆에서 꿋꿋이 휴지를 뽑아줬다. 눈이 퉁퉁 부었다.
"왜 그래..? 응?"
옆에서 걱정스럽게 나를 보는 그에게 말했다.
"오빠, 나 아기를 못 갖는대. 오빠 아기 낳고 싶잖아. 그러니까 헤어지자."
너무 울어서 눈이 떠지지 않았다. 그를 볼 수가 없었다. 바닥만 보고 있었다.
그가 울먹이면서 말했다. 내가 너무 울어서 죽을 병 걸린 줄 알았다고. 그런 건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냥 강아지 키우면서 살면 된다고 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대답이 거의 바로 돌아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또 울었다. 안심해서 운 건지, 여전히 내일이 되면 그 말이 바뀔 것 같아서 무서워서 운 건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명확하게 생각나는 건,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끝내려고 했던 내가 비겁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대답이 무서워서 먼저 헤어지자고 말해놓고, 붙잡으면 남고, 안 붙잡으면 떠나겠다는 식으로 그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에게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나는 그걸 기다리지 못했다. 비겁한 걸 알았지만 그게 내 최선이었다. 나는 그것밖에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