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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스완 Feb 14. 2023

아버지; 무심한 잿빛 연민의 습작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단상


오늘 아버지가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아니길 바랬지만 삶은 늘 그런 안도를 역시나 비켜간다.

최근 몇 달 수척해진 모습과 다양한 병증으로

고생하신 이유가 단 하나의 이유로 압축된다.


어느새 나이 70 중반이신 고령의 연세에

어찌보면 그리 놀랄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다만 오늘 아버지가 70대라는 것.

그리고 죽음과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날이다.


그렇게 늘 회피하지만 결국 맞이해야 하는

우연 같은 숙명. 삶의 블랙스완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선명하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어린 시절부터 이런 날을 예상했던 것처럼

담담하게 통화를 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돌아갈 수 없지만

돌아간다고 해도 바뀌지 않는

생로병사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시나리오의 자연스러운

진행에 난 무표정하게 슬픈 장면을 응시한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내내 무능하지만 인자했던 아버지.

단 한 번 철없던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한적 없는 분.

어린 시절 난 그걸 무관심이라 생각했다.


어머니의 강한 관심과 케어만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나이가 40이 넘어 돌아보니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무한한 신뢰와 응원이었다.


중년의 나이에 허무를 느끼며

삶의 실체를 알아갈 만한 나이에

아버지는 그게 뭔지도 모른 채

어쩌면 알면서도 감정을 누른 채

자식을 위해 묵묵히 존재하는 삶을 택했다.


여자로서의 어머니의 민감함을 등에 지고

예정에 없던 스트레스와

부작위와 답답한 환경들을 그냥 흡수하고 살아온

스펀지 같은 인생이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조그마한

형과 나를 오토바이 앞뒤에 태우고

저수지도 가고 산고 가고 여기저기

다니셨다.


시골에서 태어나 크게 데려갈 곳도 없었지만

늘 자식들에게 뭐라도 하나 보여주고 싶으셨나 보다.

먼 길 다녀오면 위험하다며 어머니에게 꾸사리도

먹으셨지만, 아버지는 그래도 웃으며 아들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느라 바쁘셨다.


가장 무식한 시골구석에서 나에게

가장 유식했던 아버지.

월화수목금토일 절차가 틀리긴 했지만

영어를 유일하게 알려주셨던 분.

어느 순간 내 머리가 커질수록

아버지는 생각보다 무능하고 유식하지도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아들은 세속적이고 걍팍해져만 갔다.


그리고

도시로 나가 공부를 하고

더욱 유식해지고 경쟁에 내 몰린

타락한 어린양은

시간과 감사의 가치를 잃은지 오래다.


하루에도 수십번 생각하는 사업과

돈과 투자와 복잡한 인간 관계 속에 아버지는 없었다.

가끔 명절 때가 되면 같은 자리에 늘 존재하는

그런 존재. 그게 아버지라는 단어였다.


하지만 오늘 이후로

아버지는 당연한게 아닌게 되었다.

앞으로 슬픈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징조였을까.

삶은 그렇게도 젊은 날의 객기와 야망을

꺾어 변곡점을 소상하게도 알려준다.


아버지는

크게 사랑한 적은 없지만 그저 잔잔한 존재다.

하지만 그 빛을 잃어갈때 눈시울이 붉어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티내지 않는 등신불이다.

세상 풍파와 조롱이 난무해도

본능적으로 뼈대를 만들고

자식들을 위해 쉴 곳을 만드는 존재다.


나는 아버지처럼 순결한 희생의 삶을

살수도 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난 그 인자함의 혜택을 오롯이 받아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의 무심같은 애정은 삶의 열쇠가

되기도 하고, 깨달음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어미 거미를 파먹고 커가는 새끼 거미처럼

사랑은 그렇게 늘 야속하게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


그리고 뒤돌아 봤을 때

이미 존재는 심연으로 사라지고

허무하고 야비한 실체만이 껍데기를 남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목적을 위해 생겨난다.

하지만 인간은 아무 목적없이 태어난다.

그리고 욕망이 목적을 잉태한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걸 알려준 존재다.

삶은 꼭 욕망과 목적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그런 다소 권태로운 삶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오늘 아버지는 죽음과 한 발자국 가까워졌다.


그리고 나도 한 걸음 그 뒤를 따라간다.

삶이라는 다소 뻔한 메트릭스 안에서


권태로워지는 존재의 거뭇한 소실 앞에서

늘 안스러운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었다.


그리고 오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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