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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Sep 03. 2021

부부가 각자의 침대를 가진다는 것

우리는 너무 다르잖아

이전 글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 부부는 결혼 10주년이 될 즈음 더블 침대를 나눔하고 슈퍼싱글 침대 2개를 집에 들였고,

작년에는 결혼 45년 되신 부모님의 침대를 슈퍼싱글 2개로 바꿔드렸다. 특별히 서로의 생활 패턴의 차이를 제대로 느끼시라고 비싼 모션침대로.

처음에는 침대 분리에 완강하게 반대하시던 아빠도 이제는 엄마의 다리가 올라간 침대를 보며 본인의 상체 부분을 올려서 모바일 고스톱을 치시면서 나름 침대에 만족하며 사용하고 계시다. 물론 그와 별개로 아직도 부부는 한 침대, 한 이불을 덮어야 하는 게 맞고, 지금의 상황은 엄마와 본인의 사이가 안좋기 때문에 임시방편 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계시지만.




부부가 각자의 침대를 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적어도 나에게는 수면의 질을 (어느 정도, 각방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수준이 많이 떨어지지만) 향상해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는 굉장히 중요하고 획기적인 방법이다. 각자의 침대를 가짐으로써 우리는 아래와 같은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첫째, 매트리스의 차이

남편은 허리가 안 좋아서 딱딱한 매트리스를 선호한다. 반면 나는 조금 부드러운 매트리스를 선호한다. 물론 이런 선호의 차이를 같이 살고 경험해 보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결혼 전 내 침대는 그냥 엄마가 사 주신 것이고 난 그게 딱딱한 것인지 부드러운 것인지 따져 볼 생각도 안 해봤었으니까.

결혼하면서 매트리스를 살 때는 가구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했거니와 상대의 취향을 묻지도 않았다. 그냥 ‘침대는 에이스라’는 엄마의 말에 가구거리에 있는 에이스 침대 집에 들어가 영업사원께서 권해주시는, 신혼부부에게 적당한 침대 프레임과 매트리스를 결제하고 왔을 뿐이었다.

그 매트리스가 조금 단단한 것이었던 것을 나중에 친정에 와서 내가 쓰던 침대에 누워보고 알았다. 반면 남편은 친정에 와서 내가 쓰던 매트리스에서 잠을 자면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너무 물렁하다고.

슈퍼싱글 침대 2개로 변경할 때 우리는 매트리스를 각자 선택했다. 사이즈만 같을 뿐.

그래서 남편은 단단한, 나는 부드러운 매트리스를 선택했고 매트리스의 두께도 달라서 같이 옆에 누워있으면 항상 내가 조금 위에 있게 되어 남편이 기분이 안 좋다며 농담을 하곤 한다.


둘째, 온도의 차이

남편은 열이 많은 사람이고 나는 극으로 추위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연애할 때도 차를 타면 남편은 에어컨을 틀고 나는 한여름에도 담요를 덮고 있곤 했다.

그 온도의 차이가 하루 종일 있는 집에서도 이어지는 것은, 그리고 잠을 잘 때도 이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내가 쓰는 구스 이불은 일 년 내내 나와 함께 한다. 겨울에는 겨울이라 여름이면 에어컨 때문에.

나의 힘듦과는 또 다르게 남편은 내가 항상 추워하니 나름 온도를 맘껏 내리지 못해 에어컨을 켜도 덥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어떠한가. 나는 보일러를 밤새도록 틀면 공기가 너무 건조해져서 보일러를 약하게 틀고 등이 따뜻하게 온수매트를 켜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남편은 둘 중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가슴이 답답할 만큼 더워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었다. 요즘은 온수매트도 더블일 경우에 각각 온도조절이 되는 것 같은데, 우리가 각각 온도조절이 되는 전기매트에서 전자파 등을 고려해서 온수매트로 변경하던 그 초창기에는 온수매트 분리가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우리는 둘 다 본인에게 적절하지 않은 온도 조건 속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더워서 깨고, 누군가는 추워서 깨고.

물론 각방을 쓰기 전까지는 이 차이로 인한 어려움을 100% 극복할 수는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따로 쓰는 침대는 이 부분에의 어려움을 50%는 줄여줄 수 있다.

여름이면 남편은 인견으로 된 매트리스 패드 위에서 인견으로 된 얇은 이불을 배에 덮고 에어컨과 선풍기의 도움을 받으며 잠을 잔다. 나는 따뜻한 소재의 면 매트리스 패드 위에 따뜻한 구스 이불을 덮어 체온을 유지하며 잠을 잘 수 있다.

겨울에도 남편은 인견으로 된 매트리스 패드 위에 얇은 구스 이불 하다 배에 걸치고 잠을 자고, 나는 온수매트 빵빵 틀고 따뜻한 구스 이불을 덮고 따뜻하게 잠을 잔다.

각자 침대의 온도도 각자 맞춘다.


셋째, 침구 취향의 차이

보통 같이 쓰는 침대의 커버와 이불은 한쪽 일방의 취향을 반영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부부들은 참으로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내가 원하던 취향의 매트리스 커버, 패드, 이불로 (그리고 가끔 우리 엄마 취향의) 사용해 왔었다.

하지만 침대를 바꾼 후 각자의 취향을 반영하여 본인이 고를 수 있게 하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더위를 타는 남편은 차가운 소재의 인견으로 된 매트리스 패드와 이불을 사용한다.

나는 따뜻한 소재의 면 매트리스 커버에 구스 이불을 덮는다. 게다가 내가 먼지 알레르기가 있어서 알레르망 이불을 사용하는데, 이 이불의 감촉이 남편에게는 미끌거려 좋지 않았고 움직일 때마다 나는 이불의 소리가 거슬린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덮을 때는 움직이면서 소리가 나는 것이 조금 미안했었는데, 이제는 나 몰라라 내 맘대로 온몸에 둘둘 말고 잘 수 있다. 소재뿐만 아니라 침구의 색깔도 각자 선택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참으로 구색 안 맞아 보이는 색의 조합이 나오는데, 어떠랴, 우리가 편하면 되었지.


넷째, 소음 공해에 대한 민감도의 차이

결혼하고 처음으로 나는 내가 잠꼬대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 방을 썼으니 내가 잠을 잘 때 코를 고는지 소리를 지르는지 잠꼬대를 하는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데 결혼 후 어느 날 새벽, 남편이 잠이 일찍 깨서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내가 혼자 무슨 말을 하더니 하하하하 웃더란다. 깜짝 놀라 달려와보니 잠꼬대를 하는 중이었고, 물론 잠에서 깬 나는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남편은 코를 곤다. 머리를 베개에 붙이자마자 잠드는 종족인 남편은 같이 누우면 내가 잠잘 마음의 준비가 다 되기도 전에 바로 코를 골아대서 잠을 쉽게 들지 못하게 만들었었다.

또 왜 그렇게 내쪽으로 돌아 누워서 내 귀에다 대고 코를 고는지 정말 고역과도 같았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코골이를 방지하는 링도 껴봤고, 심지어 병원에서 수면 처방을 받아서 양압기도 써봤는데… 밤새도록 이어지는 양압기의 소리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 부분도 사실 각방을 쓰기 전까지는 100%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침대가 살짝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소음의 정도는 조금 줄어들었고 더군다나 내 귀에 바로 대고 코를 고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었다.


다섯째, 몸 움직임의 차이

나의 남편은 커다란 몸을 가지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항상 말랐다 말랐다 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그런 본인의 몸이 나에게 불편함을 줄까봐 몸을 안 움직이려 힘을 주고 자고 있었다. 물론 이건 그의 생각일 뿐이었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힘들어한 사실도 결혼하고 한참 후에나 알았다. 왜냐하면 남편은 있는 대로 대자로 팔다리를 뻗고 자고 있었고 돌아눕다가 잘못해서 자고 있는 나의 눈, 코 등을 가격해 잠에서 깬 적이, 코가 부러진 건 아닌지 더듬어 본 적인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상을 그러했을지라도 본인의 마음가짐은 그랬다니 인정해 주기로.

나는 남편의 팔꿈치 가격을 몇 차례 경험하고 나서는 침대 모서리로 몸을 돌아누워 잠을 자곤 했다. 이렇게 자고 나면 잠을 자고 나도 마사지가 진심 그리웠다.

침대를 바꾸고 나서 나는 팔다리를 남편처럼 대자로 뻗고 잔다. 가끔 남편의 팔이 내 침대 위로 선을 넘어오기는 하지만 봐줄 만한 정도라서 그냥 놔둔다. 이렇게 해서 몸의 불편함도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지금 나는 결혼 전 숙면의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행복하게 잠을 자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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