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N년 차 여자사람_내 무릎, 내 연골, 내 마라톤
작년에 얼떨결에 달리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나는 항상 혼자였다.
다만 ‘런데이’ 앱의 목소리 코치가 있었고, 그 앱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달리기를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초급 러너인 나를 응원해주고 초급 러너로서 알아야 하는 사항들을 때에 맞춰 알려주고 같이 즐거워해 줬다.
그렇게 1년을 조금 넘게 나는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절의 달리기였기에 답답한 마스크, 혼자 달리는 외로움 위로 하나의 로망이 생겼다.
많은 러너들과 출발선에서 몸을 풀고, 와~ 하는 함성소리와 함께 웃으면 달려 나가는 그 순간, 그 순간 하나만을 바라며 지금까지의 외로운 시간들을 버텨왔었다.
작년에 ‘손기정 언택트 마라톤대회’ 10km를 잘 마치고 올해도 다시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지난 8월 참가신청을 온라인/오프라인 모두 받길래 너무 반가운 마음에 오프라인으로 참가를 신청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11월 21일, 그때쯤이면 우리 다들 백신 접종 마치고 같이 달려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커다란 기대와 함께.
그러던 중 지난달 밤에 비몽사몽 화장실을 가다가 침대 다리에 발을 세게 부딪혔고 그날 오후부터 오른쪽 발가락이 아팠었다.
병원에 가봤더니 다행히 뼈는 문제없지만 2주 정도는 사용을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새겨 조심조심 다녔다.
나는 곧 11월 마라톤 대회를 위해 다시 달리기를 제대로 해야 하니까.
몇 주 다리를 조심하고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어느 날 왼쪽 무릎의 볼록한 부분이 멍이 든 것처럼 아프더니 부어올랐고 걸을 때마다 무릎이 아팠다.
몇 주 동안 달리기도 안 하고 조심했는데 왜 그러는지 불안해서 병원을 가보고 싶었지만 회사 일이 너무 바쁘고 병원 시간과 맞지 않아 가보질 못했다.
3~4일이 지나면서 부기도 빠지고 통증도 없어져서, 그냥 오른쪽 발가락 부상으로 걸을 때마다 왼쪽으로 체중이 많이 실려서 무리가 되었나 보다 생각하고 지나갔다.
근데 또 3~4주가 지나면서도 순간순간 무릎 뒤쪽이 앞쪽이, 안쪽이 바깥쪽이 따끔따끔 불편함을 주었고, 제대로 달리기를 하려면 물리치료라도 받아서 근육을 좀 풀어줘야겠다 라는 가벼운 생각으로 병원을 찾았다.
엑스레이 상으로는 깨끗했다. 다리를 이리저리 구부려보고 돌려보고 하시던 의사 선생님이 MRI와 혈액검사를 해 봤으면 좋겠다 말씀하셨다.
피를 뽑고 MRI를 찍고 다시 진료를 기다리면서 45만 원이나 하는 MRI를 꼭 찍었어야 하는지 남편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고 이번에는 보호자도 같이 들어오시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에 남편과 같이 들어갔다.
선생님은 내 MRI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면서 보시더니 앞에 놓인 뼈와 연골 모형을 예로 들면서 말씀을 이어갔다.
원래 무릎은 위아래 뼈가 있고 그 사이에 연골이 있다. 연골은 반월상 모양이라고 하는데, 이건 도넛처럼 가운데가 뚫린 반원형 모형을 말하는 것이다.
이때 도넛 가운데 구멍 부분에서 위아래의 뼈가 움직이는 거라고 한다.
근데 나는 선천적으로 해당 연골이 도넛 모양이 아니라 가운데 구멍이 없는 원반형이란다. 구멍이 없으니 위아래 뼈가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자극이 고스란히 연골판에 무리를 주었고 일부 연골이 찢어져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얼른 수술을 통해 찢어진 부분을 확인하고 가운데에 구멍을 만들어 주어야 한단다.
원래도 연골의 찢어진 부분을 그대로 놔두면 염증이 발생하고 관절염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은데 나 같은 경우에는 연골이 받는 자극이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연골이 더 이상 상하기 전에 이렇게 빠르게 발견한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다만 내시경을 통하여 시술을 하게 되는데 들어갔을 때 연골이 찢겨있는 것이 가운데 구멍 부분이라면 긁어내고 끝내는 상대적으로 간단한 수술이 될 테지만 만약 상한 연골이 도넛의 링 부분이라면 이 부분을 꿰매는 것 까지 진행해야 하고 이 경우에는 회복 시간도 약 4주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진료를 시작하면서 어떤 격렬한 운동같은 것을 하는지 묻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달리기를 좀 한다고 대답했던 나의 대답을 기억하셨는지 의사 선생님은 ‘달리기는 이제 하지 마세요’ 하셨다.
그리고는 바로 수술 상담실로 이동이 되어 가능한 일정 및 수술비용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머리가 멍했다.
가볍게 물리치료나 받자고 온 병원에서 수술이라니… 게다가 이게 선척적인 것이라서 아마 오른쪽도 그러할 가능성이 높다니…
게다가 이제 달리기를 하지 말라니… 최근 들어 내가 찾은 내 인생의 낙, 내 몸을 움직여 얻는 가장 큰 낙을 이제 할 수 없다니…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어서 수술 날짜는 정하지 못하고 피검사 결과가 나올 때를 기다려서 다음 진료만 우선 예약하고 나왔다.
그러고 나니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도 이맘쯤 무릎이 그렇게 부어올라 아팠었고 2~3일 지나 통증이 사라져 그냥 무리했나 보다 생각했었다는 걸…
아마도 내 무릎 연골은 그런 모양 속에서도 내가 40년 넘게 강도 높은 운동을 하지 않고 있었어서 그냥저냥 잘 지내다가 작년에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무리가 갔고 작년 이맘때쯤 찢어지기 시작한 게 아니었을까.
하루 종일 우울했다. 40대 중반에 연골 수술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11월 마라톤을 놓치기 싫다는 마음에 11월까지만 꾹 참고 마라톤 뛴 후에 수술을 받으면 어떨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들었다.
또 11월에 있을 연극 공연도 걱정이었다. 나는 현재 11월 말 공연을 목표로 연극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주인공도 아니고 대사도 적은 역할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준비하는 데 내가 최악의 경우 한 달 가까이 연습에 참여하지 못한 다는 것은 어마 어마한 민폐가 된다.
남편은 정색을 하면서 그러다가 나중에 걷지도 못하게 되면 어쩌려고 하냐고 강하게 얘기했다. 이미 상해있는 연골이고 구조 상 일상생활의 자극에도 더 찢어지기가 쉽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 왜 하필 지금, 왜 하필 내 연골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냐.
오후 내내 우울함을 감추려고 그냥 TV를 보고 웃고 떠들었다.
남편이 잠든 저녁 인터넷을 켜고 이런저런 검색을 했다. 수술을 피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 다만 이제는 언제 그리고 어디서 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다.
아마도 연극을 마치고 회사일이 바빠지는 시기 등을 고려해서 병가를 내고 수술을 받게 될 것 같다.
그동안 아마 오늘 갔던 병원 외 한두 군데에 더 방문해서 다른 의사들의 소견도 들어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곧 수술을 받게 될 것 같다.
오늘 아침 손기정 마라톤 대회 참가 취소 신청을 보냈다.
달리기는 나에게 너무나 행복한 힐링의 시간이었고, 평생 소소히 해 나가려고 했던 취미생활이었다.
이렇게 내 마라톤 인생이 끝나는 건가.
나 다시 달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