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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 Oct 10. 2021

달리기가 왜 좋았냐면….

4N년 차_달리기, 연골 파열, 원반모양반달연골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의적으로 달리기라는 행위를 해 본 적은 내가 가려는 길목의 신호등이 깜빡거릴 때와 잠시 다녔던 헬스장에서의 러닝머신 위 뿐이었다.

그랬던 나는 지금 달리기를 중단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고 난 후 하루하루 우울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오늘도 남편과 산책을 나갔다가 공원을 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하나하나 쳐다보면서 나도 다시 달릴 수 있을까? 하고 남편을 쳐다보았다.



달리기 로망의 시작


2009년 남편과 둘 다 각자의 회사에 3개월가량의 휴직, 잠시 사직(이후 다시 복직했으니)을 하고 두 달 반 동안 유럽으로 여행을 갔었다.

그리스 아테네에 머물던 어느 날, 시내 이곳저곳을 정처 없이 산책하다가 ‘아테네 올림픽 경기장’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경기장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의 사람들이 늘어나고 뭔가 흥미로운 공기가 우리를 더 빠르게 경기장 쪽으로 걷게 했다.


도착한 경기장은 마라톤이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떠난 모습이었지만 아직도 결승점에서 들어올 누군가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역사 속의 중요한 장소인 올림픽 경기장을 감상이나 해 보자 하고 관중석에 앉아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었다.

근데 그 마라톤의 거의 마지막 주자들일 것 같은 사람들이 시간 차이를 두고 한 명씩 한 명씩 경기장 안으로 들어왔고 경기장 안의 사람들은 모두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들에게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우리도 다른 관중들과 같이 선수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왜 우는지 남편이 물어보는데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끝까지 사력을 다 해 완주를 해 낸 선수들에 대한 감동과 그 마지막을 지켜주던 관중들에 대한 감동이 뒤섞여 있었던 것 같다.

그날의 감동은 나와 남편의 머리와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었고,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도 마라톤을 해 보자, 언젠가 이곳 아테네에 와서 마라톤을 참여해 볼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라는 얘기를 나누었었다.

2009년 11월 8일 아테네 경기장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 우리는 다시 각자 회사로 복귀를 했고 곧 다시 직.장.인의 삶으로 돌아가 그 약속을 마음속에만 간진한 채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지도 10년이 넘은 어느 날 나는 남편과 싸운 후 혼자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너무나 슬프게도 달리기의 맛을 알아버렸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체중이 많이 불어서 당장 달리기를 하면 관절에 무리가 갈 것이기에 다이어트를 한 후 합류하기로 마음을 먹었었으나 대재앙 코로나로 인하여 운동하던 운동시설도 문을 닫고 다시 확.찐.자의 계열에 들어서면서 합류의 희망은 더 멀어져 갔다.


나는 달리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는데, 다들 나에게 물어왔다. 왜 달리기가 좋으냐고.



달리기가 왜 좋았냐면…


1. 땀이 난다.

난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찜질방에서도 땀이 잘 나지 않는 사람이다. 찜질방에 놀러가면 다른 친구들은 옷이 다 젖도록 땀을 흘려도 나는 뽀송한 옷 상태를 유지했었고, 그 어떤 운동을 했어도 땀이 나지 않았었다. 음… 살사 댄스를 좋아했었는데 한참을 춤 추고 나면 그때나 조금 피부 표면이 습해질 정도로 땀이 나는게 전부였다.

그런데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티가 땀에 젖는 어마어마한 경험을 하게 됐다. 땀을 한바탕 흘리고나면 노폐물이 다 빠져나간 것 같은 심리적인 개운함을 느낄 수 있었고, 뭔가 내가 운동을 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2. 나도 할 수 있다. 자신감과 성취감.

런데이라는 앱의 30 달리기 도전 코스를 처음 시작하면 1 천천히 달리기, 2 천천히 걷기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1분을 천천히 달리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달리기를   상태인가보다 생각했다. 근데  도전 코스를  회차,  회차를 거듭할수록 1 30초를 달릴  있었고, 1 30초가 죽을만큼 힘들었는데 다음에는 2분을 달릴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2~3 달리다보면 8 후에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있게 된다. 점점 달리기의 페이스가 좋아지고 달릴  있는 거리도 늘어난다. 이렇게 작은 도전을 계속해 나가면서  목표를 이루어 냈을  느껴지는 성취감은 대단했고, 나도   있다는 자신감을 매일 매일 심어주었다.


3. 삶이 생기있어 진다.

보통 달리기를 주말 새벽, 그리고 평일 퇴근 후 저녁식사 전 진행했었다. 주말 새벽 레깅스와 운동용 티셔츠를 입고 무릎보호대를 차고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러닝벨트에 핸드폰을 넣어 허리에 묶고 워치를 누르면 달리기 시작. 이렇게 30분~1시간 정도 달리기를 하고 집에 들어와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면 즐거운 주말이 시작된다. 달리기를 하고와서 달리가 뻐근해도 아침밥을 하는 내내 기분이 좋고 생기가 발랄해진다. 평일 퇴근 후에는 보통 저녁을 해서 조용히 TV보면서 저녁을 먹고 또 TV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소파에 박혀 있다가 침대로 가는 것이 일상이지만, 퇴근 후 잠시라도 달리고 들어오면 저녁도 맛있고 저녁을 먹는 동안 대화도 생기로워 지는 마법이 펼쳐진다.


4. 나에게만 집중. 단순화. 스트레스 해소.

아마 이게 제일 큰 매력일 것 같다. 달리기를 하는 동안에는 온전히 나에게, 그리고 나의 숨소리와 나의 근육들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회사에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다. 남편과 시간이 맞아 같이 퇴근을 하면서도 그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속도 메스껍고 구역질이 날 정도로 너무나 정신적으로 힘든 날이었다. 집에 도착할 때 쯤 남편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저녁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으니 혼자 먼저 챙겨먹으라고, 나는 잠시 나가서 달리기 좀 하고 오겠다고. 속이 너무 답답해서 바람을 쐬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집에 도착하자 마자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신나는 음악조차 듣기 싫은 그런 날이어서 이어폰도 끼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내 얼굴에 불어오는 한강의 차가운 바람, 나의 숨소리, 운동하고 있는 나의 근육들에 온 정신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그렇게 30분 쯤 뛰고 들어와서는 남편이 시켜먹고 있던 치킨을 와구와구 먹어대며 즐겁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달리기는 나의 숨구멍이 되었다.


5. 누군가의 의지가 되어주는 기쁨.

나는 계속 혼자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달리기 크루에 들어가 볼까 알아보기도 했지만, 어느 크루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라 40대 중반 아줌마가 끼기 어려울 것 같아 보였고 또 어떤 동호회는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라 좀 불편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코로나였기 때문에 그 모임들도 단체 달리기는 모두 취소하고 삼삼오오 소규모 모임들만 겨우 이어나가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같이 달리며 느끼는 맛은 (다행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는 날, 달리기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달리는 발소리가 났다. 그날은 발라드를 연속으로 틀어놓고 천천히 달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옆으로 비켜 속도를 줄였다. 먼저 가시라고. 하지만 뒤의 러너가 앞서나가지 않길래 이분도 천천히 달릴건가보다 하고 그냥 천천히 내 페이스대로 달렸다. 뒤에서 나는 발소리를 계속 들으며. 간혹 산책하는 분들을 앞서가기 위해서 위치를 바꿀 때 부딪히지 않도록 슬쩍 뒤를 보고 조정하면서 달렸을 뿐. 약 20분 쯤 그렇게 달리다가 내가 생각했던 반환점에서 돌아섰는데, 뒤에 달려오시던 여자분이 ‘감사합니다!’하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시면서 지나가셨다. 그분도 나를 의지해 달리셨나보다. 기분이 너무 좋고 뿌듯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꼭 오프라인 마라톤 대회를 나가서 사람들과 함께 와~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가고 서로 응원하는 그럼 로밍을 실현해보고 싶었는데, 당분간 그 로망은 잊고 지내야 할 것 같다.


이런 생활의 기쁨을 주던, 나의 숨구멍이었던 달리기를 당분간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런데이 코치가 항상 ‘여러분 부상당하시면 안됩니다.’ 라고 강조하며 아무리 재미있어도 달리기를 하고 난 후에는 충분한 휴식시간을 주라고 했었고 나도 오랫동안 달기리를 하고 싶은 마음에 그 조언을 모두 새겨듣고 지켜왔는데 ‘원판형반달연골(선천적)’이라는 복병이 나타나 나의 달리기를 잠시 멈춰세웠다.


무릎 치료가 어떤 식으로든 끝나고 나면 다시 다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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