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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동물의 친구 Sep 06. 2018

버려진 밭 그물, 야생동물에겐 '죽음의 덫'

제구실 못해도 사실상 방치, 적극적인 철거 활동 필요해

회색빛 건물과 즐비한 유리창, 눈부신 빛과 굉음을 내뿜으며 달리는 자동차와 곳곳에 설치된 도로 역시 곳곳에 존재합니다. 녀석들은 가던 길을 갔을 뿐인데, 무언가에 의해 이동에 방해를 받고, 심하면 목숨을 잃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야생동물의 삶을 가로막는 위험은 어느 곳에나 즐비합니다. 하물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한 ‘밭 그물’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보니, 천연기념물 제323-4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에 지정된 보호종 ‘새매’가 밭 그물에 얽혀 거꾸로 매달린 채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몸부림칠 수 없도록 붙잡은 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얇고 날카로운 줄이 발과 날개, 몸통에까지 어지럽게 감겨있었습니다. 녀석이 스스로 줄을 풀어내고 탈출하기란 불가능했지요.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서서히 목숨을 잃어갔을 녀석이지만, 이 모습을 가볍게 지나치지 않은 신고자 덕분에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습니다.

얇고 날카로운 밭 그물에 몸이 얽힌 채 위태롭게 매달린 '새매'


녀석을 구조한 후 주변을 살펴보니 약 100m 조금 넘는 길이의 그물이 과수원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그물에서 보호종 맹금류 세 구를 포함해 어지럽게 널려 있는 총 아홉 구의 사체를 발견했습니다. 고작 밭 그물 하나를 잠시 관찰했을 뿐인데, 살아 있는 새매까지 총 열 마리의 새가 걸려 있다는 건 앞으로도 얼마든지 많은 동물이 같은 피해를 겪을 위험이 있다는 얘기였죠. 실제로 밭 그물은 너무 얇아 사람의 눈에도 잘 띄지 않았습니다. 그물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새들에겐 몸이 엉키고 나서야 장애물이었음을 인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람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마치 안개같은 그물의 형태이다. 심지어 훼손된채 방치되어 역할이 유명무실하다.


그물에 걸린 채 죽은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닷속에 버려진 폐그물에 끝없이 생물이 걸려드는 ‘죽음의 덫’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명을 다한 새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넘어, 사체를 먹기 위해 접근할지 모를 또 다른 야생동물의 미래가 걱정스러웠습니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수를 먹기 위해 접근한 참새목 조류가 먼저 그물에 걸려 피해를 입고, 이후 이 새들을 먹이로 삼는 상위 포식자가 접근했다가 미처 그물을 인지하지 못하고 엉켜버렸을 수 있다는 합리적 추측이 가능하죠. 반대로 사체가 오랜 시간 소모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서 발생할지 모를 질병의 확산까지로 우려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사체가 오랜 시간 소모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면서 발생할지 모를 질병의 확산까지로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이다.


밭 그물은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고, 외부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발견한 그물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곳곳이 찢어지거나 말려 올라가 침입 방지의 역할이 유명무실했습니다. 관리 감독의 소홀이나 더는 농사를 짓지 않는 따위의 이유로 목적과 역할에 맞지 않다면 그물을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법정 보호종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야생동물이 피해를 겪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방법이 없습니다. 정부 기관에 문의하니 농작물 피해를 우려해 설치한 시설물을 지도하고 감독할 권한이 자신들에게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철거를 권고하는 것조차 꺼려하는 소극적 태도에서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실상 사용하지 않는 폐그물인데도 철거하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그물의 사용과 선택에 부분적 제한을 두거나 지자체에서 주기적으로 점검해 폐그물의 철거나 수거를 농민들에게 권고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현재로서는 농민 개개인의 의지에 맡기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물의 두께가 굵은 것을 사용해 야생동물이 그물이 있다는 것을 쉬이 알아차리게 하거나, 부드러운 재질을 이용해 몸이 걸리더라도 조금은 더 쉽게 빠져나가게 하는 것 그리고 그물이 필요 없어지면 깨끗하게 철거해 불필요한 희생을 줄이려는 자발적 노력 말이죠. 하지만 생산에 필요한 노동력이 곧 자본과도 직결되는 농민들에게 생산과 상관없는 노동력의 소비를 기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죠.

새매의 몸에서 풀어낸 그물. 참 많이도 얽혀있었다.


밭 그물 설치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야생동물로 인해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헤아려야 합니다. 자금과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재배하고 키워 낸 농작물이 하룻밤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도 야생동물의 이동권과 생존권만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겠지요. 밭 그물을 설치한 농민을 탓하기보다는 동물의 접근을 적절히 예방하고 차단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경제적, 감정적, 생명의 소모를 일으키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밭 그물의 설치가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지, 자신의 농작물과 과수에 피해를 끼치는 야생동물을 죽여 없애고 분풀이를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피해를 겪는 농민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요?    

고라니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밭 그물을 설치했지만, 막상 고라니가 얽혀 몸부림치는 것을 보니 연민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에 고라니를 구조해달라는 신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피해 당사자들에게만 떠넘기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농작물의 생산자와 야생동물 사이의 갈등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결국 농작물을 소비하는 우리와도 결코 뗄 수 없는 문제이지요. 피해를 겪는 농장에 대한 예방책 지원, 피해 정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에 걸맞은 투명한 보상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먹을 농작물의 가격이 다소 오를 수밖에 없다면, 이를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심을 갖춰야 합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되어 왔습니다.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동물은 자연히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에 이끌릴 수밖에요.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면,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서 혹은 그들이 행한 것이 우리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잘못은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산에 올라 임산물을 채취하고 도토리를 주워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야생동물이 사람 거주지 부근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하게 느껴집니다.

단지, 야생동물도 자신들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야생동물도 자신들의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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