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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동물의 친구 Jan 10. 2019

대형 맹금류의 배아픈, 배고픈 겨울

겨울철 발생하는 대형 맹금류의 조난 실태

매년 겨울철마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최상위 포식자에 속하는 독수리나 흰꼬리수리와 같은 대형 맹금류가 구조되어 들어옵니다. 녀석들은 덩치도 크고, 바람을 타고 유유히 하늘을 날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띕니다. 그래서일까요? 하나같이 법정 보호종에 속해 당장 보호가 필요한 멸종위기 야생동물인데도 빈번히 누군가 쏜 총에 맞아 사고를 당합니다. 법적 테두리를 한참이나 벗어난 야만적 행태지요. 녀석들을 위협하는 것은 밀렵만이 아닙니다. 안개가 끼거나 흐린 날에는 교각이나, 전깃줄, 풍력발전소의 날개와 같은 인공 구조물에 부딪히곤 합니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즉각 회피하기가 어려워 갑작스레 나타난 구조물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죠.

덩치가 큰 조류에게 눈앞에 갑작스레 나타나는 인공구조조물은 치명적인 위협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안개가 끼는 등 시야가 좁은 날에는 사고가 더 쉽게 발생할 수 있다.


독수리나 흰꼬리수리 같은 대형 맹금류는 종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죽은 동물의 사체도 곧잘 먹는 청소동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체를 먹는 동물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이는 편견일 뿐 생태계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고기 역시 엄밀히 보면 죽은 동물에서 비롯되는걸요. 이상할 것 하나 없죠.

무엇보다 자연생태계에서 분해를 담당하는 청소 동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 분명합니다. 사체가 부패하면 질병이 퍼지고 해충이 집단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와 같은 청소동물이 나타나 사체를 먹는다면, 이런 문제를 예방할 수 있겠죠. 만일 청소동물의 개체 수가 줄어들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동물들은 물론 우리도 질병에 쉽게 노출될지 모릅니다.

차량충돌에 의해 도로변에서 폐사한 고라니를 독수리가 먹고있다. 독수리가 배를 불리고 난 뒤에는 까치와 까마귀의 몫이다. 녀석들도 엄염한 청소동물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청소동물에 대해 잘못 알려진 상식 가운데 하나가 그들이 ‘썩은 고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청소동물이 사체를 찾아 먹을 기회는 그리 흔치도 않을뿐더러 녀석들에겐 꽤 간절한 기회입니다. 또 죽은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먹이만을 찾아 헤맬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신선한 먹이만을 먹는 청소동물이라면 다른 개체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기 쉬울 겁니다. 그렇기에 조금 시간이 지나 부패가 시작되었더라도 그 먹이를 포기할 수 없는 거죠. 좋아한다기 보다는, 그거라도 먹는다고 봐야 합리적입니다.


어쨌든 사체를 먹는 청소동물에게는 먹이자원인 죽은 동물이 ‘과연 어떤 이유로 숨을 거두었는가’라는 문제가 녀석들의 생사를 결정할 만큼 매우 중요합니다. 잘못 먹으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농약 중독'입니다. 농약에 중독되면 가벼운 경우 회복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심하면 폐사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최근 수년간 충청남도 일부 지역에서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농약이 묻은 볍씨를 농경지에 뿌려두었고 이를 섭식한 오리류 수백 마리가 집단으로 폐사한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습니다. 물론 폐사한 오리를 먹이자원으로 활용하는 청소동물 독수리 역시 수십 개체가 농약중독으로 같은 현장에서 폐사하거나 구조되었습니다. 농약을 이용해 오리류를 다량으로 사살, 수거하여 고기를 취하고자 했음이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청 되지만, 이유야 어쨌든 무척이나 야만적이고 불법적인 행태인 것은 확실합니다.

농약을 묻힌 볍씨를 먹고 폐사한 가창오리, 그 가창오리를 먹고 죽음의 문턱을 서성이는 독수리. 이처럼 2차, 3차적인 연쇄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중독사고의 무서운 점이다.


또 사람이 쏜 납탄에 맞고 죽은 동물을 먹는 과정에서 혹여 납탄을 함께 먹는다면 납에 중독됩니다. 농약중독과 납중독에는 여러 차이가 있지만, 조금만 섭취해도 문제가 발생하고 쉽게 분해되지 않아 축적된다는 공통점이 있죠. 그래서 그 지역의 다른 많은 동물들 역시 같은 사고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니 절대로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축산물을 야외에 버리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어 청소동물들이 먹이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민간단체와 관공서에서 때때로 먹이를 공급하는 실정이죠. 하지만 도축장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나 가축 농장에서 나온 폐사체도 먹이로 주고 있어 잠재적으로 질병 감염의 문제가 남습니다. 그렇다고 일반 정육을 제공하자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요. 최근에는 사고로 죽은 야생동물, 특히 고라니를 먹이로 많이 주고 있습니다. 폐사한 야생동물이 다른 야생동물의 에너지원이 되는 것 자체에는 나름 의미가 있지만 고라니의 경우 수렵 과정에서 사용된 납탄이 몸에 박혀 있을 가능성이 있고, 이를 다시 독수리나 흰꼬리수리가 먹게 되면 심각한 납중독에 빠질 위험이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죽은 야생동물을 먹이로 주기 전에 엑스레이로 찍어 몸에 납탄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잘 못 먹어서 쓰러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아예 먹을 것이 없어 기아상태에 놓이기 쉽다는 것 역시 문제다.


또한 먹이를 제공한다는 공익적인 이유로 너무 많은 개체의 대형 맹금류를 한 장소에 모이게 하면 예기치 못한 질병이 확산되거나 오염원과 접촉해 대규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실제로 독수리들이 많이 도래하는 지역에서 여러 마리가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단체로 조난에 처하는 일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먹이를 안 줄 수도 없고, 다양한 곳에 나눠 제공하자니 물리적인 어려움이 따르고요.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깊은 고민과 관련자들 간의 지속적인 협의가 필요합니다.


지금의 혹독한 겨울이 지나 봄이 찾아오면 이 덩치 큰 친구들은 그들의 번식지인 몽골, 러시아 등으로 북상합니다. 돌아가서 새끼를 길러내고 이듬해 겨울에 또다시 우리나라를 찾겠지요. 그때까지 아무쪼록 잘 먹고, 잘 쉬다가 무사히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꼭 내년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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