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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생동물의 친구 May 07. 2020

봄처럼 따뜻하게 왔다 벚꽃처럼 아스라이 떠난 아들에게

못난 아빠지만... 다시 태어나 꼭 아빠에게 한 번만 다시 와주라.

만수야! 아빠야... 잘 지내고 있지? 오늘은 우리 아들 하늘에 별이 된 지 정확히 한 달이 되는 날이야. 네가 없는 세상은 모든 게 그대로야. 같이 걷던 산책길에 보이던 풍경도, 벤치에 앉아 함께 느끼던 햇살과 바람도, 너와 함께 오갔던 모든 곳이 변하지 않았어. 물론 우리 만수가 없다는 점이 그 무엇보다 큰 변화겠지만 말이야. 반면 아빠의 삶은 꽤 많은 것이 변했단다. 작은 침대에서 행여나 네가 불편할까 봐 새우잠을 청하는 일도, 밥을 먹을 때 무릎에 턱을 괴고는 날 뚫어져라 응시하는 너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 또 야생동물을 다루는 일을 하는 아빠가 기생충, 털 따위를 옮겨와 행여 너한테 피해를 줄까 밖에서 열심히 털어내고 오는 것도, 소변을 보면 꼭 발바닥에 잔뜩 묻혀 나오는 널 쫓아다니면서 발바닥을 닦아줘야 하는 것도 필요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아빠는 너와 함께 즐겨보던 무한도전을 여전히 틀어두고 있어. 딱히 집중해서 보지 않더라도 무언가 위로받는 느낌이랄까? 벽에 기대고 앉아 너의 배를 어루만지며 멍하게 바라보던, 행복했던 때로 돌아간 것 같고 말이야. 


오늘따라 유난히 널 처음 만나던 때가 생각나. 황량한 농경지에서 털이 덕지덕지 엉킨 상태로 쓰러져있던 널 발견했던 그 날 말이야. 이미 죽은 줄 알았던 넌 처절하게 삶을 붙잡고 있었고, 내 손결에 꿈틀거리기 시작했지. 그때의 감정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단다. 돌이켜보면, 아마도 아빠 인생에 가장 감사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 그렇게 널 만날 수 있었으니까. 뭉쳐있던 털을 다 밀어내고 미용사 선생님 손에 들려 나오던 순간도 생각난다. 비쩍 마른 상태에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정말 너무 못생기고 귀여웠어.


만수 너는 참 독특한 아이였어. 날 만나기 전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지. 3kg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몰티즈가 왜 그런 농경지에 있었는지부터 의문이었어. 식탐 대마왕이지만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느라 쉬이 보채지도 않았고, 이마엔 큰 상처도 있었지. 아, 심장사상충도 앓고 있었어. 그동안 네가 살아온 삶의 무게가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겠구나 짐작만 할 뿐이었지. 그랬던 네가 조금씩 마음에 문을 열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따뜻해지는 걸 느껴지면서 우린 정말 아빠와 아들, 가족이 되어갔어. 많은 것을 함께했고, 많은 시간을 공유했어. 서로의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이가 되어버렸지. 나는 그런 널 정말 많이 사랑했고, 너 역시 나를 정말 많이 사랑했지. 


너는 내게 봄처럼 따뜻하게 왔다가 벚꽃처럼 아스라이 떠났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사랑받는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알려주고서는 붙잡을 틈도 주지 않고 떠나버렸어. 너에게 아직 못해준 게 너무나 많은데... 많이 부족한 아빠였기에 널 행복하게 해 주려면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는데... 한동안 아빠는 널 잃은 슬픔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너의 흔적을 치워야 할지 남겨야 할지 수백 번 고민했고, 멍하니 있다가도 바보같이 눈물을 쏟더라. 아빠가 아직 오래 살진 않았다만, 태어나서 그렇게 소리 내어 엉엉 울어본 것도 생소한 경험이었어. 널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내달리던 그 길을 따라 아빠는 지금도 출퇴근을 반복하고 있어. 그 길을 오가는 매일매일 후회를 반복해. "널 떠나보내던 그날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 넌 내 곁에 있었을까?" 하고 말이야.

야생동물을 구조하고 치료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게 직업인 아빠는 그렇게 수많은 야생동물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에 한껏 무덤덤해졌다고 생각해왔어. 그런데 왜 너는 쉬이 보낼 수가 없는 걸까. 야생동물의 죽음엔 수많은 합리화를 세워오며 날 무너뜨리지 않으려 애쓰던 내가, 왜 너의 죽음 앞에는 이리도 하릴없이 무너지는 걸까.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저 착하기만 했던 네가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갔어야 했는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어. 심장이 토막 나 부서진 것만 같았고, 흩어진 조각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찾을 수가 없을 것만 같더라고. 그리고 어느 새부터는 원망해야 할 대상을 찾고 있었어. 상황, 사람, 우연하게 겹친 여러 과정들... 아빤 만수 널 그렇게 떠나보내게 만들었던 그 모든 것을 샅샅이 찾아내어 원망하고 있었어. 그러다 보니 결국, 가장 크게 원망하게 되는 존재는 역시 아빠 자신이더구나. 내 부족함이 널 떠나보내게 만들었고, 살아있을 때 더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이렇게 사무치는 그리움과 아쉬움을 남기게 된 거니까. 더 많이 쓰다듬을걸,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할걸, 산책도 더 자주 갈걸... 또, 왜 그렇게 안된다는 말을 그리도 많이 했을까? 더 좋은 환경에서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했던 아빠의 한계가 원망스럽고, 정말 모든 게 후회 투성이야. 그렇게 아빠는 후회 속에 살았어. 네가 자주 앉던 침대 모서리를 어루만지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너와 걷던 산책길을 걸으며 미안하다고 말했어. 미안하다고 지겹도록 말하면 미안한 감정과 후회를 조금이나마 떨칠 수 있을까 싶었어.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더라. 


진부하지만... 만수 넌 분명 이런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들더라. 만수가 사랑했던 아빠는 위축되어 후회만 곱씹으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언제나 씩씩하게 목소리 높여 너의 이름을 부르고 네 앞에서 덩실덩실 춤추던 사람이었으니까. 더 이상 너에게 실망스러운 아빠이고 싶지 않기에 이제 그 후회의 무게를 좀 줄여볼까 싶어. 그렇다고 만수 널 잊거나 지우려 노력하지는 않을 거야. 계속 생각할 거고, 추억할 거야. 눈물이 나면 흘릴 거고, 웃음이 나면 웃을 거야. 우리가 함께 살던 집에는 여전히 너의 흔적과 너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어. 널 보내거나 잊고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러고 싶지도 않고 말이야.


아빠한테 새로운 취미가 생겼어. 그동안 널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몽땅 핸드폰에 담아서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봐. 처음엔 코가 시큰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는데, 이젠 조금씩 웃으며 볼 수 있어. 너의 체온과 냄새가 느껴지진 않지만,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거든. 특히 산책 중 네가 아빠에게 힘껏 달려오는 사진이나 날 뚫어져라 응시하는 사진에 눈이 오래 머물더라. 좋은 기억이었기 때문이겠지. 

아, 우리 만수가 떠나고 아빠는 유기견을 구조하고 입양하는 단체를 후원하기 시작했어. 물론 이 전에도 야생동물이나 환경과 관련한 여러 단체에 후원해왔지만, 유기견을 전문으로 다루는 단체에 후원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야. 너처럼 소중하고 반짝이는 존재들이 그곳에 수없이 많은데, 사랑받지 못하다가 그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고 잊히는 것이 안타까워서... 우리가 아빠와 아들이 되었던 기회를 그 친구들도 꼭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말이야. 


만수야. 아빠는 여전히 퇴근하고 집에 들어올 때, 밥을 먹을 때, 잠에서 깨어날 때 그 모든 순간에 네가 없다는 사실이 빨리 깨어나야 할 꿈이었으면 싶어. 그만큼이나 우리 만수를 정말이지 너무나 많이 사랑했어. 넌 내게 봄이고 빛이자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어떤 좋은 수식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내 아들이었어. 항상 고마웠고,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했어. 그런 아빠임에도 사랑해준 내 아들 만수야.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만수에게 행복만 주기엔 많이 부족했을 거야. 그런 못난 아빠지만... 그래도 아빠랑 지내는 게 행복했다면, 다시 태어나 꼭 아빠 아들로 나타나 주라. 그럼 그때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우리 만수 행복하게 해 줄게. 아빠한테 꼭 한 번만 다시 와주라. 그때까지 아빠 힘내서 우리 만수랑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잘 지내고 있을게. 우리 만수도 꼭 편안하게, 행복하게 아빠 잊지 말고 잘 지내야 해! 


사랑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아들.


만수에게 보내는 이 편지는, 곧 여러분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합니다. 지금 당신의 곁에서 당신만을 바라보는 그 존재들을 더 많이 쓰다듬어주세요. 더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 말해주세요. 귀찮다고 산책도 미루지 마세요. 무조건 안된다고 하지 마시고 왜 그걸 요구하는지, 그런 행동을 하는지 유심히 들여다보고 이해하려 노력해주세요. 그리고 끝까지 함께 해주세요. 후회하지 않을 순 없지만, 후회의 무게를 줄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하세요.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함께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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