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생동물의 친구 Jun 04. 2018

새끼오리의 첫 여행기, 도시엔 함정이 널렸다.

자동차, 보도블록, 집수정... 심지어 옥상 정원도 때론 위험의 덫

더운 여름, 야생동물의 번식이 한창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두고 주위를 둘러보면 먹이를 물고 자신을 기다리는 새끼에게 바삐 돌아가는 어미와 그들의 노력에 움틀 대는 새 생명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죠. 그런 모습 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느껴지겠지만, 정작 야생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겐 매순간이 위기일 만큼 생존 경쟁이 치열합니다. 그 때문에 야생동물구조센터에는 야생동물의 번식기가 도래하는 이때에 새끼 동물을 구조해달라는 신고가 가장 많이 들어옵니다. 이 과정에서 충분한 고민 없이 무턱대고 구조를 요청해 본의 아니게 ‘납치’를 하게 되기도 하지만, 정말로 구조가 필요한 위험한 상황에 놓인 경우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많이 구조되는 동물이 다름 아닌 ‘오리류’입니다. 국내에서 번식하는 대표적인 오리과 조류로는 ‘흰뺨검둥오리’와 ‘원앙’이 있습니다. 흰뺨검둥오리는 보통 하천 주변의 야산이나 초지에, 원앙은 나무구멍에 들어가 알을 낳아 품습니다. 이들은 ‘조성성(早成性) 조류’입니다. 조성성 조류란 부화와 동시에 눈을 뜨며, 온몸에 털도 나있는 새들을 말합니다. 반면, 만성성(晩成性) 조류는 참새류와 같이 부화할 때 온몸에 깃털이 나지 않은 채 태어나는 부류를 일컫습니다. 흰뺨검둥오리와 같은 조성성 조류의 새끼들은 심지어 곧바로 기립 및 보행이 가능하죠. 이렇게 태어난 새끼들은 어미를 따라 앞으로 살아갈 강가로 이동합니다.

흰뺨검둥오리(왼쪽)와 원앙은 선호하는 둥지는 다르지만, 알에서 깬 새끼를 데리고 강가나 하천으로 이동해 살아가는 특성은 같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바로 첫 여행을 시작하는 셈이죠.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아무리 태어나자마자 이동이 가능하다지만 연약한 새끼 오리들은 여러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날 수조차 없으니 종종 위태로운 상황에 부닥치곤 하죠. 특히 오늘날에는 인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거주지 확대, 특히 하천 주변에 생겨난 건물과 정비 공사 탓에 하천과 가까운 곳에서는 번식에 적합한 환경을 찾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위험을 무릅쓰고 도심에서 번식하는 사례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위험이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도로와 자동차를 꼽을 수 있습니다. 오직 두 다리로 열심히 걸어서 강가로 이동해야 하는 녀석들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입니다. 우리나라는 도로의 밀도가 매우 높고, 특히 도심지에서 도로를 마주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차에 치어 폐사하거나 무리에서 떨어져 도태되기 일쑤이며, 위험을 무릅쓰고 도로를 건넜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마주하는 중앙분리대나 도로 경계석에 막혀 더는 이동할 수 없어 결국 도로에 갇히기 십상이죠.   

도로 중앙분리대에 가로막힌 새끼 오리들. 녀석들의 어미는 이미 차량에 치어 폐사했다.

   

두 번째는 건물의 옥상에 조성된 작은 정원이나 텃밭에서 번식을 하는 경우입니다. 최근 도심 속에서도 자연의 향취를 느끼고자 옥상에서 정원이나 초지,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흰뺨검둥오리와 같이 풀밭에 번식을 하는 새들에게 그런 공간은 꽤나 유혹적입니다. 어느 정도 높이가 있다 보니 천적의 접근이 쉽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막상 새끼가 부화하고 나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강가로 가기 위해선 건물에서 뛰어내려야 하는데, 높이가 높아 그 과정에서 심각한 외상을 입거나 폐사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것보다도 대부분의 건물 옥상에 추락을 예방하기 위해 둘러쳐진 담이나 울타리가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런 경우, 부화하더라도 그 담을 넘을 수 없으니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는다면 새끼들은 고립 된 채 그 안에서 서서히 죽어가게 됩니다.

건물 위 옥상에 위치한 자그마한 풀밭 역시 녀석들에겐 유혹적일 수 있다.


세 번째는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정말 곳곳에 수없이 널려 있는 인공구조물인 ‘집수정’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맨홀 뚜껑이나 사각으로 짜인 그물 모양의 철제 구조물이 바로 빗물이나 오수를 모아내는 집수정입니다. 어미의 뒤를 졸졸 따라 이동하는 새끼오리들에게 집수정은 치명적입니다. 어미야 덩치도 크고, 발바닥도 크다 보니 집수정에 빠지는 사고를 겪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미는 자신의 새끼가 너무 작아 집수정 구멍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새끼들을 데리고 집수정 위를 유유히 걷다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한 마리의 새끼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알고 당황해합니다.

어미 오리도, 새끼 오리도 집수정에 대한 경험과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집수정에 빠지면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수도 내부가 좁아 사람이 들어가 구조할 수 없거나, 내부가 너무 길고 복잡하다면 구조 자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좁고 어두운 하수도 내부에는 여러 오염 물질이나 날카로운 파편에 외상을 입을 수 있어 상당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단순히 작고 낮은 집수정에 빠진 것이 아니라면, 발견자 본인이 직접 구조를 시도하기보다는 전문가에게 요청해 구조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집수정에 빠진 새끼 오리를 구조하는 모습. 조심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순탄치 않은 새끼오리들의 삶이 참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당장에 해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로를 없앨 수도 없고, 누군가가 애써 조성해 놓은 옥상 위 정원을 금지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또 전국에 설치된 수많은 집수정을 다른 형태로 바꾸려면 막대한 예산과 인력,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번식기의 오리들을 위해 이러한 것을 요구한다 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에는 무리겠죠. 현재로서는 이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오리들이 어딘가에 고립된다면, 그 환경이 사람에게도 위험할 수 있기에 보다 신중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새끼오리들이 조난된 원인과 현재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한 후 야생동물을 전문적으로 구조하는 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하지만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면, 최대한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구조하거나, 오리가 안전하게 강가로 이동할 수 있게끔 주변의 위험 요소(차량, 집수정 접근 등)를 통제하는 것 역시 충분히 시도할 수 있습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어렵습니다. 강가에서 유유하게, 한가로이 헤엄치던 녀석들이 실은 이렇게 힘겹게 살아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차라리 몰랐으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우리가 녀석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그 때문에 많은 야생동물들이 피해를 당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되겠죠. 자동차 괴물, 도로 경계석 벽 그리고 집수정 함정은 결국 우리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니까요.

자동차를 피하고, 보도블럭을 넘고, 집수정을 탈출했다고 녀석들의 모험에 위험의 그림자가 지워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도.


언젠가 도로를 건너는 오리 가족을 위해 스스럼없이 달리는 자동차를 멈추고 안전하게 건너도록 도와준 누군가의 행동이 많은 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 일화가 있습니다. 이런 행동이 특별한 미담으로 남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새끼오리들의 첫 여행을 선뜻 도와주는 마음 넉넉한 사람들이 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욕심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