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신이 Feb 06. 2019

모유수유 마지막 날입니다

허망하게 끝나버린 모유수유


출산하고 보니 모유수유를 해야 하더라


“산모님, 지금 신생아실로 오실 수 있겠어요?"


출산 후 입원실로 내려와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아기에게 수유를 하라는 거였다. 신생아실로 가니, 간호사가 아기를 보여준다. 분만실에서 보고 처음이라 낯설다. 아기의 발에 '000 아기'라고 내 이름이 적혀있다.


"자리에 앉아서 준비하고 계세요."


커튼을 젖히니 2인용 소파가 마주 보고 놓여있었고, 산모 한 명이 앉아 젖을 물리고 있다. 동그란 링 모양의 방석을 놓고 조심스럽게 앉았다. 이내 내 품으로 온 댕이. 분만장에서 봤을 때는 그렇게 아기가 커 보일 수 없었는데, 막상 안고 보니 너무나 가볍고 조그마하다. 실 같이 작은 눈을 감았다 떴다가 한다. 간호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젖을 물리니, 약간 주춤하던 아기가 힘차게 빨기 시작한다. 순간 ‘아'하는 소리가 나올 만큼 아프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의 입놀림이 점점 느려지는 것 같다.


"선생님, 애가 안 빠는데요? 안 나오나 봐요.”

"원래 첫날은 안 나와요. 며칠 후면 나올 거예요."


2박 3일 입원기간 동안 두 시간에 한 번씩 신생아실로 불려 갔다. 입원실에 잠깐 누워있다 보면 어느새 콜이 왔다. 몸을 움직이기 쉽지 않았지만 아기가 기다리겠지 싶어 부지런히 신생아실로 향했다. 하루에 몇 번씩 수유를 했지만 퇴원 때까지 모유는 나오지 않았다. 잠깐 물리는 시늉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우유병을 아기 입에 물리고 있었다.


모유 잘 나올 수 있을까요


산후조리원에 가서야 마사지 선생님의 도움으로 초유를 받았다. 한쪽 젖꼭지에서는 아기가 물 때마다 피가 나와서, 마사지 선생님이 내 가슴을 붙잡고 한동안 피를 짜냈다. 그나마 멀쩡한 다른 쪽 가슴만 아기에게 물려야 했다.


"이렇게 매일 마사지받고 유축하다 보면 며칠 안으로 잘 나올 거예요."


선생님은 내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난 마사지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가슴 마사지를 하고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유축을 했다. 하지만 모유량은 미미했다. 그로부터 2주 동안의 산후조리원 기간 동안 양은 그다지 늘지 않았다.


방에서 유축을 해서 젖병에 담아 신생아실에 가져다 놓으면 밤사이 신생아실 선생님이 아기에게 먹여주는 시스템이었는데, 나는 젖병을 신생아실에 가져갈 때마다 쭈뼛거렸다. 다른 엄마들의 모유가 젖병의 반 이상을 채워 찰랑거릴 때, 내 모유는 젖병 바닥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찰랑거리는 젖병을 든 엄마는 당당해 보였고, 그 앞에서 난 움츠러들었다. 아기에게 모유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빈 젖을 물리니 미안했다. 이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모유량이 아주 적은 엄마다.


그래도 모유수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온갖 육아 지침서에서 모유수유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았던가. 아기가 모유를 먹어야 면역력도 강해지고 건강하게 큰다고. 모유가 안 나오니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집에 돌아온 후 모유량을 늘리기 위해 친정엄마가 가져다준 돼지족을 먹었다. 털이 붙어있는 족발이 때때로 혐오스러웠지만,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혼자서 조리원에서 배운 대로 마사지도 했다. 꾸준히 10분씩 젖을 물리고, 그다음에 분유를 보충하는 식으로 수유를 했다. 하지만 단유의 시기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두 달만에 모유수유를 멈추다


며칠 전 새벽 수유 때 젖을 물린 후 우유를 먹이려고 하자 댕이가 싫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면서 계속 입을 뻐끔거리며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난감했다. 더 먹이고 싶은 마음을 굴뚝이지만 물려봐야 나올 게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빈 젖을 물렸다가, 아기가 진정되자 떼어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댕이가 점점 좋고 싫고 가 명확해진다. 그동안에는 엄마젖도 물고 우유병도 물었는데, 이젠 엄마젖만 물고 싶어 하는 거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고민을 하고 있자 의외로 친정엄마가 결정을 내려줬다.


“끊어야겠네.”

“그래도 아직 나오는데...”

“아니야. 나중에 고생해. 지금 빨리 끊는 게 좋아.”


엄마 말이 맞았다. 아기에게 모유로 만족감을 줄 수 없는데, 희망고문을 할 수는 없었다. 아기가 계속 모유를 찾고 분유를 거부하게 되면 큰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원래 100일 때쯤으로 생각했던 완분 시기를 앞당기게 됐다. 생후 66일이 되는 날 먼저 직수부터 끊기로 했다. 모유를 열심히 짜내어 젖병에 담는데 아쉬운 감정이 앞선다.


며칠간 나는 부지런히 유축을 해서 모유를 우유에 섞어주었다. 조금이라도 모유를 아기에게 더 먹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유축을 하고 있자니, 친정엄마가 오셔서 한 마디 하신다.


“이제 그만 해. 할 만큼 했잖아.”


눈물이 핑 돌았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와 내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찌르르하게 울리는 가슴통증은 아이가 열심히 빨면 금세 사라졌다. 젖을 빨고 있는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자면 진짜 엄마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모유수유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차피 길게 할 생각도 아니었다. 요즘 분유가 잘 나와서 영양적으로도 부족함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냥 자기만족일지도 몰랐다. 아이와의 교감은 모유수유가 아니더라도 충분할 거다. 아기와 눈을 더 자주 맞추고 손도 꼭 잡아주면 된다.


단유 후 며칠 만에 아이는 금세 우유에 적응했다. 아쉬운 건 나뿐이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이는 분유만 먹고도 무럭무럭 잘 자랄 것이다. 그렇게 애써 생각을 하면서도 밀려드는 아쉬움을 어쩔 수 없어, 괜스레 아기 손을 더 꼭 쥐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