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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Aug 15. 2019

‘강다니엘’에 거는 기대

힙합 속에 전통무용 춤 선을 가미한 혁신 열정


신세대와 구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음악이 가능할까. 최근 1집을 내놓고 기지개를 켠 강다니엘의 음악적 행보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기획사와의 분쟁을 이겨내고 홀로 기획사를 차려 내놓은 1집 대표곡 ‘뭐해’가 단숨에 kbs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출연할 수가 없었다. 기득권을 가진 기획사들의 견제와 갑질 때문이라는 분석이 자자하다.  


‘뭐해’ 뮤직비디오를 보면 일단 춤사위가 예사롭지 않다. 힙합의 언밸런스 동작에 한국무용 같은 가녀린 팔 동작들이 곡선을 타고 부드럽게 흐르기 때문이다. 마치 전통무용이 힙합의 ‘끊고 맺음’을 유연하게 연결시켜 주고 있는 모양새다. 이는 최근 어떤 아이돌에게도 볼 수 없는 동작들이다.  



사실 지금 시대는 음악이 신구세대를 아우르지 못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신구 양쪽을 포괄하는 게 불가능하다”라고 잘라 말했다. “지금은 감각이 달라 섞을 수 있는 방법이 음악적으로 어렵고 작곡자가 웬만큼 해선 안 된다”면서 “아이유처럼 옛 곡을 지금 감성으로 다시 불러보는 ‘리메이크’ 방식이 좋을 것 같다”라고 진단을 내린다.  


아이돌 혁신의 선두 주자는 sm이었다. yg와 jyp가 미국과 유럽에 신경 쓰고 있을 때 sm기획사는 중국을 공략했다. 당시 낯설어했던 '동방신기'라는 팀 이름도 그렇게 나왔다. 최근 엑소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두 번째 엑소팀 m 멤버 6명 중 4명을 중국 아이돌로 만든 것이 문제였다. 중국 시장을 안이하게 본 것이다. 임 평론가는 "쌍방향이 없는 마인드로 우월감에 빠진 결과"라고 지적했다.  


최근 아이돌 1위는 ‘방탄소년단’에게로 넘어갔다. 방시혁 사장은 흙수저 출신으로 구성된 이들을 집단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sns를 다방면으로 활용했다. 음악 유튜브로 시장을 공략해 갔다. 최대 무기인 ‘칼군무’가 주효했다. 방탄소년단의 칼군무는 살인적인 연습의 결과다. 처음 힙합으로 출발한 이들 7명은 아이돌로 자리 잡을 때까지 매일 12시간을 연습했다는 후문이다.  


방시혁 사장은 방탄소년단을 철저히 팀으로 만들었다. 이들은 sns에 개인 계정이 없다. 팀으로만 팬들과 소통한다. 작년 연말 행사 23개를 방탄소년단은 전부 참여했다. 그것도 전부 콘셉트가 다른 방식으로 선보였다. 임 평론가는 “요즘 ‘나 혼자 산다’ 혼밥, 혼술이 강조되면서 ‘협동’이라는 말이 사라졌는데, 방탄소년단은 ‘워크 투게더’ 즉, 함께 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솔로를 강조하는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원 오브 뎀’이라는 방탄의 메시지가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이유다. “너나 나나 같다. 너무 애쓰지 말고 고민하지 마.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좀 쉬어 가면서 해.”라는 메시지가 그것이다. 매일 12시간씩 집단 춤 연습을 하며 세상에서 제일 열심히 노력한 이들이지만, 상반된 그들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은 오히려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방탄소년단의 칼군무는 기술적으로도 남다르다. 특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하체의 힘이 강력하다. 이들의 춤을 직접 본 임 평론가는 “방탄은 댄스가 아니라 퍼포먼스”라고 혀를 내둘렀다. 한 다리로 지탱하면서 하는 상체 동작이 보통 아이돌의 3~4배라는 것이다. “7명이 7개의 바위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힘이 넘치고, 섬세함과 부드러움까지 갖췄다”면서 “방탄에게는 어른 춤, 아기 춤, 남자 춤, 여자 춤 모든 게 다 있다”라고 그는 극찬했다.


문화의 힘은 늘 그 시대의 ‘혁신’으로부터 나온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대표적이다. 엘비스가 있던 시절은 백인 음악이 주류인 시대였다. 엘비스는 어린 시절 늘 흑인들과 놀았다. 엘비스는 끊어 내는 흑인 창법을 구사할 수 있었고, 한 시대를 풍미했다. 임 평론가는 “엘비스는 한 사람의 가수가 아니라 당시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 미국의 상징이었고, 자신의 창의와 노력으로 신분 상승을 꿈꾸게 한 ‘아메리칸드림’을 만들었다”라고 소개했다.  


네 명의 멤버 비틀스도 혁신의 주자였다. 비틀스는 영국의 런던, 맨체스터도 아닌 시골 리버풀에서 자란 흙수저 들이었다. 지금은 리버풀이 비틀스 때문에 관광도시로 탈바꿈됐다. 무명시절 비틀스는 새벽 3시까지 일할 수 있는 함부르크로 건너가 손이 아프도록 목이 터지도록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숙소가 없어서 깡패 소굴에서 기거하기도 했다. 막내 조지 해리슨은 빵을 먹다가 너무 힘들어 울음을 터뜨렸다. 리더인 존 레넌은 눈물 젖은 빵을 함께 먹으며 막내를 다독였다. 존 레넌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부모를 솔로 곡에 담았다. “엄마는 저를 가졌지만 저는 엄마를 못 가졌어요” 비틀스는 유럽 음악을 평정했다.  


한국에는 조용필이 있었다. 2013년 조용필 ‘바운스’ 곡 열풍은 대단했다. 그의 나이 64세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세계기록’이라고들 말한다. 최백호가 ‘낭만에 대하여’를 내놨을 때가 47세였다. 보통 음악계에서는 50대 중반을 표현력 한계의 정점으로 본다. 조용필의 19집 ‘헬로우’는 혁신의 상징물이다. 10년 전 18집 ‘레인보우’의 참패를 딛고 있어선 것이었다. 당시 시니어 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아내도 세상을 떠나면서 실의에 빠졌다. 다시는 음반을 내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조용필은 다시 기운을 차렸다. 이번엔 중3이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만들겠다고 작정했다. 음을 자유롭게 끊을 수 있는 두성을 내기 위해 술을 끊었다. 창법을 바꿨다. 조용필의 기존 펑크 끼 창법은 유명하다. 미 8군 시절 팝송과 흑인음악을 해왔던 가수가 일순간 트로트로 떴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대마초 투서로 몰려 벌었던 돈을 싸 들고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2년 반을 폭포수 아래에서 연습하다 두 번이나 목이 터졌다. 남도 판소리 세 가지 소리 패턴인 평음, 굴곡음, 진동음을 완벽히 훈련했다. 돌아오자마자 ‘창밖의 여자’로 대중음악계를 평정했다. 임 평론가는 “소리는 타고난 것도 있지만 피나는 훈련이 더 중요하다”면서 “우리 사회가 어느 때부터인가 훈련, 열정, 노력이 조롱의 언어가 돼 버렸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이번 음반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중2, 중3이 부를 수 있는 음악 말이죠.
지난번 앨범 실패를 생각해서 열심히 했습니다.
하다 보니
20대, 30대가 내 안에도 있는 걸 알게 돼
저도 놀랐습니다.
또 다른 나, 새로운 나를 찾고 싶었는데···.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19집 앨범이 성공한 후 조용필은 기자회견에서 ‘음반이 젊어진 비결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 기자들은 모두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제 시대는 세대 ‘차이’가 아니라 ‘분리’로 가고 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인순이나 이선희의 ‘알고 싶어요’와 같은 노래는 남녀노소가 좋아했는데 지금은 없고, 어른들은 나이 먹더니 다 나훈아로 정리되고 아이들은 전부 힙합 세대가 됐다”면서 “애들은 어른을 ‘꼰대’로, 어른은 아이들을 ‘거지 같은 세대’로 보면서 음악이 세대 간 가교 역할을 못 하고 있다”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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