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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Aug 20. 2019

인생, 평균율의 법칙

삶을 즐기기 위한 수준을 유지하는 길


나는 중간을 좋아한다. 굳이 중용(中庸)의 미덕을 얘기할 것까진 없다. 그저 일상적으로 적당함이 좋다. 많지도 적지도,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상태가 좋다. 실사구시를 좋아한다. 그저 형편에 맞게 생각하고 처리되길 원한다. 내가 앞설 필요도 없고, 뒤처질 이유도 하등 없다.

한때 마라톤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중간만 하기를 원했다. 뒤에서 따라가는 것은 힘들고, 앞에 선두로 나가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수영을 배운 적도 있었다. 그때도 수영반에서 중간 레이스를 좋아했다. 앞은 물살을 치고 나가야 하고, 뒤는 한 바퀴 돌기가 무섭게 금방 따라가기에 헉헉대고 만다.

한때는 중독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결과는 늘 중간 정도로 끝이 났다. 어릴 때부터 바둑을 좋아해 실력도 남달랐다. 바둑은 중독의 게임이다. 1970년대 당시 일본 기보로 공부했으니까. 그런 바둑이 내 인생을 좌우하진 못했다. 결국 1급 수준, 프로의 절반 수준 정도에서 멈췄다.

군 말년에는 기타를 만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반 당시 통기타의 매력에 빠졌다. 역시 중독됐다. 제대 후 가리봉동에서 자취할 때 옆방에 무명 통기타 가수들이 기거했다. 보고 따라 배우면서 이정선 기타곡을 독학으로 거의 마스터하게 됐다. 그런데 거기까지였고 거기서 멈췄다.

지금 돌이켜보면 자기의 합리화 일지 모르겠지만, 중간에서 멈춘 게 다행이라 여긴다. 인생이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한 길로만 가는 것이 좋지만은 않게 생각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유리한 선택일지 몰라도, 풍부한 경험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광적인 열정을 십분 이해는 하지만 한편으로 회의적인 이유가 들기도 한다. 좌도 우도 아닌 중도의 길을 찾게 되는 이유다. 저울도 가운데를 가리키는 게 보기 좋고, 어느 때부터 인가 한쪽으로 들던 가방이 백팩으로 중간에 메면서 편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중간이란 스탠스가 살아가면서는 많은 상처를 남긴다. “너는 왜 뜨뜻미지근하냐” “너의 입장을 분명히 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직장에서 토론을 하다 보면 이 사람 말도, 저 사람 말도 맞는 경우가 많다. 쉽게 결정을 못 내리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중간이란 그렇게 오해를 받을 때가 많다.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사실 쓸개는 간 바로 밑에 붙어 있다. 쓸개는 모아 놓은 쓸개즙을 분비하는데, 다 분비하면 간이 분비하게 돼 있다. 간과 쓸개를 오간다고 해서 하등 기능에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럼에도 ‘쓸개 빠진 녀석’이란 소릴 듣는다. 쓸개가 없어도 사는데 문제가 없지만, 그만큼 중간은 사람을 궁색하게 만든다. 중간은 왜 그만한 가치를 못 누리는 것일까. 사람들의 생각, 삶, 행위를 보면 사실 중간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 데도 말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대개 삶은 굴곡이라고 말한다. 어떤 때는 행복하고 어떤 때는 불행하다. 사람이 늘 그런 양 극단만 겪고 있는 것일까. 때로는 아무런 생각 없이 쉬고 싶을 때가 있다. 누군가로부터 아무런 간섭이나 개입 없이 있고 싶을 때가 있다.

나는 삶이 아마추어다. 프로가 부러울 때도 많지만, 아마추어라고 해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보통 프로의 50% 수준이면 꽤 괜찮다고 본다. 프로의 절반이면 웬만큼 즐기는 수준이다. 당구가 500점 넘으면 꽤 고수인데, 그럼 250점 치면 충분하다. 바둑이 프로가 단이면 아마추어 1급이면 족하다.

‘중간만 해라’ ‘나서지 마라’, 엄마가 아이에게 흔히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세상은 너도나도 누군가보다 뛰어나길 원한다. 성공은 절대적 성취보다는 상대적 우위가 현실이다. 갑질이 대표적인 예다. 가진자들은 그냥 자신들의 테두리 세계에서 살면 안 되는 것인가. 꼭 약자들을 괴롭히고 부려먹어야 행복한 것인지.

삶을 즐기려면 중간이 필요하다. 물론 중독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극단은 극단을 낳기 마련이다. 우울증보다는 조울증이 더 위험한 법이다. 즐기는 일은 중간지대에서 가능하고 의미가 크다. 너무 잘하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고, 너무 못하면 자존감이 떨어진다.




소신은 중립에서 빛난다. 소신이 중립을 이탈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중립을 지키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이유다. 극단적인 소신은 누군가를 힘들게 하기 마련이다. 남을 인정해 주고,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란 마음의 거리를 충분히 두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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