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운전 경력 첫 경험, 결격사유로 존재가 부정당한 하루
운전은 요리와 닮았다. 속도보다는 안전(정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운전면허를 딴지도 25년이 넘었다. 그동안 큰 사고는 없었지만, 소소한 접촉사고는 있어 왔다. 운전에 익숙하던 어느 날 눈길에 앞차를 받은 이후로, 고속도로에서는 정규속도를 놓고 운전하게 됐다.
운전을 배우고 난 후 자동차를 몰면서 한때는 속도감에 빠졌다. 비가 퍼붓는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 이상을 밟지 않으면 안 됐으니 말이다. 그래도 멀쩡했다. 사고 한번 나지 않았으니까. 순발력을 믿었던 젊은 날이었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사고가 났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운전은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는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이었다. 나를 어디론가 자유자재로 이탈하게 한 동력이었다. 때론 일탈에도 필요한 수단이 됐다. 젊은 시절 외로움을 속도에 내맡기곤 했으니까. 옆 자리에 멋진 이성을 태우는 꿈도 꾸곤 했다.
자동차는 존재를 부풀리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중고 외제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이유가 그런 것이리라. 취직하기도, 집을 마련하기도 힘든 현실에서 자동차는 자신의 유동적 존재감을 마련해주는 도피처가 된다. 나도 젊은 시절 그랬으니까.
자동차는 고향을 잇는 가교 역할도 했다. 지금처럼 ktx가 없던 시절, 명절 때면 내가 자라고 부모님이 계셨던 대구에 혼자 차를 몰고 가곤 했다. 300km 거리인 대구에 차를 갖고 가서 부모님을 뵙는 것이 그렇게도 스스로 위안이 됐다. 무려 20시간을 운전한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힘든 줄도 몰랐던 시기였다.
그런 운전이 지금은 점점 힘들어진다. 어제는 미국에서 온 처제가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날이었다. 인천공항까지 75km 밖에 되지 않는 배웅 길도 힘들었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시내에서 아내가 주로 자동차를 쓴다. 나는 이제 대중교통 이용이 더 좋다.
자동차는 아내가 주로 사용해도, 검사나 정비는 내가 주로 담당한다. 아내와 함께 이동할 경우에도 운전은 나의 몫이다. ‘사모님과 김기사’는 대본이 아닌 현실이 된다. 같이 운전 능력이 있어도, 차 안에 같이 있다면 남자가 운전대를 잡는 경우가 흔하다.
오늘은 2년마다 받아야 하는 자동차 정기검사를 받았다. 자동차의 성능과 안전을 점검받는 것이다. 운전자가 받아야 하는 적성검사를 자동차가 받는 셈이다. 매번 검사를 받아왔지만 ‘불합격’은 처음이었다. 불합격되면 차량 출고가 안돼 그 원인을 해결해야만 한다.
후미 번호판 등 우측 전구가 나가서 불합격 처리됐다. 후미 번호판 등이 두 개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사실 번호판 등 결격은 기능상의 문제는 아니다. 이번 검사가 있기 한 달 전에 차량을 싹 정비했기에 기능 검사는 최상의 결과가 나왔다. 그 번호판 등 하나 때문에 불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다.
역시 한국사회는 스펙보다는 간판이 중요한 것 같다. 명찰을 달고 회사를 다니다가 명찰 한쪽이 찢어졌다고, 이를 고친 이후에 근무를 해야 인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그 사람을 판별할 명찰이나 번호판을 밝힐 등이 필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가 결격사유로 인해 부정당하는 것이 괜히 불편해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