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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Jul 17. 2019

“나는 도시인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인간적 불편함

MBN 다큐멘터리 ‘나는 자연인이다’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1위에 올랐다고 한다. 한국갤럽이 6월 18일부터 3일간 성인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요즘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설문에서 1위를 기록했다.

나도 이 프로그램을 가끔 접한 적이 있다. 무인도와 같은 자연 속에서 사는 그 사람들의 생활이 특별해 보였다. 특히 나는 요리하는 입장에서 그들이 해 먹는 음식에 관심을 갖고 봤다. 먹어야 사니까 당연히 요리 행위가 궁금했고,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었다.

그런데 ‘자연인’이라고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남성이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나는 이 대목도 흥미로웠다. 나는 가끔씩 아내랑 노후에 관해 이야기하곤 한다. 어디에서 살 것인지를 물어보면 자연이 아닌 도시에서 살겠다는 것이다. 장모님도 역시 같은 입장이었다.

남자들이 여자들에 비해 늙어서 도시보다 대자연을 더 가깝게 여기는 것 같다. 아마도 남자라는 종이 생존 경쟁에 더 치이고, 더 삭막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 여자들은 관계를 더 중요시하고, 대자연보다는 병원과 카페, 복지관, 마트가 있는 도시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사실 남녀를 떠나 대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은 인간의 삶을 더욱 이채롭게 한다. 디지털이 아무리 편리성을 준다 해도, 생명이라는 아날로그의 본질은 그 자체가 하나의 대자연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연을 가장 친근하고 근원적으로 받아들이며 힐링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자연인’은 특별한 존재다.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것 자체로 힐링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불치병을 대자연 속에서 치유하는 모습은 시사점을 건네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대자연이 인간의 디테일 문제를 해소하는 장이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하다.

대자연이란 개념은 언뜻 ‘비건’과도 연결된다. 사실 먹는 것은 자유다. 뭘 먹겠다고 하는 데 대해 참견할 문제는 아니다. 생으로 먹든 요리해서 먹든 뭐가 문제겠는가. 다만 ‘오리지널’이란 뭘까 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것도 순수하지 않다고 본다. 채식과 육식은 순전히 생존과 습관의 문제이지, 가치 환원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보다 ‘자연인’이 느껴야 할 외로움이 걱정되면서 궁금했다. 이에 대한 답변이나 해명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이 누리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적 본성이 사회성과 별개로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들의 심리적인 기저는 결코 제거할 수 없는 인간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인간적인 것이 무엇일까. 대자연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간의 자연적 속성이 따로 독립할 수 있는가. 문명과의 조화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 이를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아무리 자연 그대로의 재료를 사용한다고 해도, 영양학적으로 도시의 요리 음식에 비교할 수는 없다.




나는 도시가 좋다. 그래서  ‘나는 도시인’이라고 얘기하고 싶다. 나는 문화와 문명이 살아 숨 쉬는 도심의 인프라를 좋아한다. 근사한 식당에서 밥을 먹고, 가끔씩 극장에서 영화 한 편으로 기분을 전환한다. 집에 와서는 가족들과 오순도순 하루의 일과를 나눈다.

생협이나 마트에서 식재료를 구입해 요리를 하고, 직장에 나가 때로는 궁색한 연기를 하며 비위를 맞추고, 동료들과 갈등이 다소 있다 해도 피하지 않으며, 몸에 이상이 생겨 통증이 올 땐 병원을 찾아 의사와 상담을 한다. 그리고 습관을 돌아볼 것이다.


시대가 ‘핫’ 한 것을 탐한다는 이유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갈 필요는 없으며,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대자연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달지 않아도,
간간이 휴식으로 진정시킬 수 있는
알량한 자존감으로 족하다.


나는 ‘자연인’이 택한 대자연이 도피처가 아니길 진정 바란다. 가족으로부터, 누군가로부터,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한 인간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우주이고 대자연이다. 우리의 심리 저편에는 어떤 것도 담아낼 수 없는 대자연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자연에 회귀했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이유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이미 대자연이고 원리의 체계이고 부분이다. 그 어떤 것도 따로 존재할 수 없고, 거세될 수 없다. 그래서 자연인과 도시인은 별반 다르지 않은 면모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만 ‘자연인’이 자연스러울 뿐이다.

나는 도시인이다. ‘자연인’만 가공되지 않은 순도 100%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진솔한 이야기는 듣기 나름이고 전해주기 나름이다. 도시를 사랑하고 자연을 동경하지만, ‘자연인’이 전해주는 대자연에 눈과 귀를 국한시킬 이유는 하등 없다. 도시는 나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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