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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Jun 24. 2019

젊은 여자가 좋은 이유

우여곡절로 아내와 함께 한 서울국제도서전

가끔씩 오해가 맥락을 덮을 때가 있다. 최근 아내는 타인과 비교해 자기를 무시한다고 항변했다. 20점짜리 남편이란 낙제점도 받았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굳이 분석해 보면 내 잘못이 더 크기도 하다. 사전에 공유하지 못해 벌어진 일 때문이다.

자식이 없이 산 지도 14년이 넘었다. 처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2013년부터 요리를 시작해 전담한지도 5년이 넘은 것 같다. 나는 처가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정말 주변에 이런 유형의 가족관계는 없지 않은가. 그것이라면 내가 추구하는 일들이 정당성을 얻고도 충분히 남을 거라 여겼다.

2016년부터 인스타그램에 빠졌다. 피드를 올리다 보니 요리도 늘었다. 느는 것은 요리실력만이 아니었다. 팔로워가 늘었고, 댓글과 좋아요도 상승했다. 그것만도 아니었다. 요리 분야는 대부분 여성들과의 관계로 이어진다. 매일 아침 올라오는 웬 남자의 집밥 요리가 신기하고 궁금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은 내게 여성성이었다. 따뜻했고 포근했다. 아침 집밥을 올리면 여성들의 격려와 환호가 쏟아졌다. 아내는 내가 만든 음식을 몸으로 먹었지만, 인친들은 눈으로, 맘으로 먹어주었다. 그렇게 함께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눴던 셈이다. 아내와의 질감과는 분명히 다른 온도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여자를 좋아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실습 나온 교생을 쫓아다니곤 했다. 고등학교 때는 동네 여고생이 좋아 무작정 집에 찾아갔었다. 대학 때는 짝사랑을 했고, 병역 시절엔 동기의 연애편지에 내 동정을 소비했다. 이런 무망함들이 여성 편력을 만들었던 것 같다.



아내를 꼬신 건 연애편지 덕분이었다. 물론 편지가 거짓으로 꾸며진 건 아니었다. 당시 글 말고는 달리 표현할 능력이 없었다. 숫기가 없어 말에는 도통 자신이 없었다. 그때가 마흔 살이었지만 이성에 대한 ‘숙맥’ 감정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아내를 얻었다.

나는 착한 남자라고 생각했다. 아내의 말을 잘 듣는 것이 행복한 일이고, 또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 모든 과정은 순조로웠다. 부부싸움도 별로 없었다. 주변에선 늘 부러운 눈치였다. 내가 아내와 같이 있는 모습이 자주 그들 눈에 뜨였고, 이젠 요리까지 척척 해내기까지 했다. 처부모를 모시는 일은 덤이었다.

나의 처신이 종종 문제를 만든다. 아내와 같은 부서에 있는 젊은 간호사와 인터뷰 약속을 잡은 것이 화근이 됐다. 인터뷰는 브런치 글감으로 기획한 것이다. 그 일을 아내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아 ‘서울국제도서전 약속’ 오해를 낳았다. 그 약속이 충분한 이유는 가지지만, 미리 말하지 못한 것은 내 잘못이다.

나는 왜 이렇게 젊은 여자와 얘기하고 싶은 걸까. 나이 든 여자보다 젊은 여자가 좋고, 화장 안 한 여자보다 꾸민 여자가 좋다. 은은한 향수에 이끌리고, 어깨로 살짝 넘어오는 펌 헤어 뒤태에 미소를 빼앗긴다. 인스타그램에 멋진 여성들을 보면 “예쁘세요”라고 댓글을 다는 일도 마냥 즐겁다.




아내가 갖는 불평과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갈수록 아내와의 대화가 적어지고, 능동적으로 처신하지 못하는 점도 인정한다. 아무리 젊고 멋진 여자를 만날 기회가 생겨도, 결국 나는 아내를 편들 수밖에 없다. 아내는 정말 내 심리를 정확히 꿰뚫는 능력을 지닌 내 편이기 때문이다.


내가 서울국제도서전을 싫어한다는
근거를 대봐.
그건 자기가 젊은 여자와 가려고
합리화하는 거잖아.
한순간이라도
나랑 같이 가면 어떨까 생각해봤어?
파리 여행은 가서 뭐하게.
당신이 홍상수야!
23일 일요일 오후 서울국제도서전 마지막날 코엑스 브런치 부스에서 받은 굿즈. 아내와 함께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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