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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Sep 08. 2019

‘파리’여 안녕

8일간 파리 여행이 남긴 것


여행은 어떤 일상을 해석하는 행위다. 낯선 여행은 일상을 잠시 비틀어 놓는다. 의식주 행위는 비슷하지만 사뭇 다른 형태를 낳는다. 입는 것은 제한된 코디의 적용이고, 먹는 것은 상이한 재료의 유입이며, 자는 것은 불편한 체형의 반응이다.

여행은 선택과 만족이라는 함수 관계가 도사린다. 너도나도 여행을 즐기지만 결과는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누군가는 뒤돌아봄 없이 보고 즐기는 것에 매달리는가 하면, 누구는 이에 상관없이 유유히 자신의 발자취만을 남기려 한다.

7박 8일 파리 초보 여행은 내게 자유롭지 못한 ‘자유’를 느끼게 해 줬다. ‘봉주르’와 ‘메르시’ 두 단어만으로 8일을 너끈히 보냈다. 관대하고 포용적인 파리 문화와 시민들 일상의 모습은 인상 그 자체였다. 특히 첫날 아침 파리의 ‘단아함’은 유려했다.

그 인상이란 나만의 특별한 감정이다. 어쩌면 오르세 미술관 후기 인상파 작품들의 ‘인상’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만의 느낌과 감정으로 획득된 표현의 대상화가 그것이다. 파리의 인상은 내가 느낀 감정으로는 오롯이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그 무엇이었다.


모나리자 그림 하나가 갖는 연간 경제적 효과가 2조 원대를 넘는다.


파리는 어떤 것도 급할 게 없고, 무엇을 하든 즐기는 분위기가 지배한다. 아담한 센강 변은 매일 혼자, 둘이서 혹은 그룹별로 모임과 퍼포먼스로 떠들썩하고, 지나가는 바토무슈 관광객들에게 환호와 박수로 파리의 자유와 낭만의 신호를 선사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고스란히 간직된 파리. 역사의 흔적을 유유히 지닌 채 일상을 맞는 그들의 표정에는, 그동안 형성된 이미지와 인상이 그대로 관광객들에게 전달된다. 어떤 것도 왜곡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여러 해석을 낳게 하는 자유의 힘이 느껴진다.

여행은 문물이 전해주는 낯선 ‘인상’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남긴 유산은 바로 이로부터 생기는 해석의 다양성이다.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파리가 주는 경외감, 신비감은 이런 인상이 낳은 결과다. 인간의 면모가 개입된 파리의 일상이 잊히지 않는 이유다.

디자인과 패션의 나라, 향수와 와인의 문화가 곁들여진 파리는 몇 번이고 방문해도 좋을 ‘자유’와 ‘취향’을 만끽하게 된다. 봉주르(안녕하세요)와 메르시(감사합니다)가 일상적인 파리. 긍정적인 신호와 친절한 이미지는 어떤 편견을 뛰어넘는 ‘인상’으로 남게 된다.




이번 파리 여행은 좋은 인상에도 불구하고, 여러 측면으로 아쉬움도 남는다. 우선 숙소를 선택하는 어려움이다. 한인민박을 선택하는 이유와 효용성에는 정보 습득과 안정성일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해보면 정보와 안정성은 직접 맞닥뜨려야 가능함을 배운다.

상업화로 특화된 한인민박의 선택은 불가피함이 불편함을 넘어서는 문제가 있다. 비좁은 공간과 홍보와는 다른 식사와 편의성들이 여행을 불편함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여행의 경험은 불가피함만으로 숙소를 선택하는 문제 해결에 대한 자신감을 주기도 한다.

파리는 ‘바게트’ 문화가 인상적이다. 시민들이 반쯤 종이에 싼 기다란 바게트를 들고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파리에 있는 동안 식사로 바게트를 자주 먹게 되면서 이해하게 됐다. 바게트 안에 햄, 치즈, 야채, 베이컨 등을 넣어 마치 긴 햄버거를 연상하게 한다.

바게트는 미국식의 햄버거보다 장점이 많은 것 같다. 우선 식감이다. 딱딱해 씹는 맛이 좋아 치아와 뇌에 쉽게 자극을 준다. 파리의 바게트는 겉은 딱딱해도 속은 부드럽다. 길어 잡기도 편하고, 한입 베어 먹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바게트를 자주 먹다 보니 잘라먹게 되는 앞니 안쪽 잇몸이 붓기도 했다.

파리는 물이 귀한 나라다. 생수가 비싸고 수질도 비교적 좋지 않다. 수돗물 대신 정수를 한 물을 먹는 집이 많다. 미끈거리는 수돗물은 세수를 해보면 느낌이 다르기도 하다. 물의 문제는 수분이 적은 식사 문화를 갖게 만든다.


파리는 대부분 에스프레소 커피를 즐긴다. 스타벅스에나 가야 아메리카노를 먹을 수 있다.


파리에 일주일 있으면서 느끼는 것은 물 대신 주스나 풍부한 과일, 음료로 수분을 보충하게 된다는 점이다. 와인과 치즈, 포도와 올리브유가 풍부하지만, 수분을 직접 공급하는 조건에는 불리하다. 채소를 날 것으로 자주 먹고, 과일을 많이 음용하는 조건은 기본적으로 인슐린 저항성과 관계가 깊다.

19세기 때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에서 상당히 음식을 밝혔다고 한다. 민중의 적이 되면서 위험한 테러용 포크 대신 손을 사용해 게걸스럽게 음식을 엄청 즐겼다고 전해진다. 지중해의 풍부한 과일과 로열젤리 벌꿀, 와인과 치즈 등 천혜에 널려 있는 먹거리들이 넘쳐난다.

루이 14세를 보면서 조선시대 우리 왕들을 생각했다. 음식을 그리 밝혔다는 왕은 들어보지 못했다. 지리적 환경은 먹거리 문화에 많은 영향을 준다. 한식의 우수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한식은 깊은 손맛의 요리다. 수분이 많고 줄기가 많은 나물을 자주 요리해 먹음으로써 건강을 챙긴다.

파리의 거리를 다니다 보면 독특한 인상이 있다. 사람들이 카페 바깥 의자에 옆으로 나란히 앉아, 와인이나 커피를 마시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일조량과 관련이 큰 듯 보인다. 실제로 햇빛이 그들을 비추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지중해 기후는 일조량이 긴 여름과 아주 짧은 겨울을 갖고 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저녁 9시가 돼야 해가 진다. 반면 겨울은 오후 3~4시가 되면 해가 진다고 한다. 비까지 자주 길게 내리는 겨울이다 보니 우울증에 쉽게 걸리는 기후가 그들의 조건이다.

파리의 관공서 행정 문화는 느린 편이다. 주 35시간 근무제와 점심시간, 휴가제 등이 확실하게 지켜지다 보니 일 처리를 위한 공무원들의 절대적 시간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진다. 통장 개설에 한 달이 걸리고, 병원에서는 감기약 대신 휴식과 물을 충분히 섭취할 것을 처방하기도 한다.


파리의 관광명소에는 늘 소매치기를 경계해야 한다. (노트르담 성당과 샹젤리제 거리의 루이뷔통 본 매장 앞)


파리는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민정책과 인종문제, 범죄가 끊이지 않는 사회적 조건들이 그것이다. 거리를 다니면서 소매치기 범죄에 늘 긴장해야 했다. 프랑스 자국민들이 최근 보수적 경향으로 흐르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공공장소마다 소지품 검사를 매번 받아야 했다. 입장 티켓을 끊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관용 정책의 위기와 대안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기도 한다. 사회복지와 세금, 일자리 문제에다 테러에 대한 경계와 신뢰 문제는 여전히 남는 파리의 숙제가 될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한 해 관광객이 1천만 명, 모나리자 그림 하나가 갖는 연간 경제적 효과가 2조 원대를 넘는 파리. 그렇기에 역사는 요동친다. 인간의 동작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디자인, 활용이 뛰어난 파리 문화는 늘 유인의 손짓을 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조화로운 문화적 특성을 지닌 파리. 함께 사는 사람이건, 길에서 잠시 눈만 마주친 사람이건, 우리는 죽는 순간까지 어떤 인상을 형성한다. 여행은 인상의 형성과 축적 행위이다. 문화적 힘의 ‘인상’을 던져 준 파리, 들뜬 피로감으로 돌아가는 나를 위로한다.


9월 8일, 8일간의 파리 자유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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