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벌고 싶다
성수기가 되어 일이 쏟아졌고, 괜찮아 보이는 제안 두 개를 덥썩 물었다. 결국 지금은 Full-Time Job을 두 개 하고 있다. 다행히도 풀타임잡 하나는 계약기간 동안만 일하면 되는 것이어서, 정해진 기간까지만 열심히 하면 된다. 요즘은 다행히 글 쓸 정도는 여유가 있다.
자격증 시험공부나 일상에서의 해야 할 일도 병행하느라 한동안 집 앞 마트에 갈 시간조차 안 났다. 과거의 나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잘 해내겠다고 약속해 버렸을까, 사실 당장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만했는데 왜 바로 계약을 해 버렸을까,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려고 했을까 싶었다.
노동으로 돈을 벌지 않은 기간은 한 달 반 정도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뭐라도 집중해야겠어서 미뤄왔던 자격증 시험에 응시했고,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고, 책도 많이 빌려다 봤다. 그 일들까지 같이 하려고 하니 일상에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내 능력에 따라 성과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솔직히 성과와 보상은 아주 만족스럽다. 직장 다니던 때는 200-300만원 받다가, 사업자를 내고 풀타임 잡을 두 개 하니까 월매출이 1500만원이다. 내가 하는 일은 매입이 있지 않아서 매출 대부분이 수익이다. 일을 하고자 하면 할 수 있으며, 섭섭하지 않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다.
그런데 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잃는 게 훨씬 많은 것 같다. 어딘가를 오가는 시간이 아까워서 계속 집에서 일했다. 간단히 요리해 먹을 10분조차도 아까워서 굶거나 배달음식을 시켰다. 운동 갈 시간이 아깝다며 계속 같은 자세로 앉아서 일을 했더니 목에 담이 왔다. 자고 일어날 때마다 몸이 무거워졌다. 내 주변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도 안부 연락조차 하기 힘들었다. 문화생활은 말할 것도 없이 누릴 수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혼자 카페 가기'도 할 수 없었다. 집에서 3분 거리의 음식점에 점심식사를 하러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 햇살이 너무 좋았다. 날씨가 정말 좋은데 잠시 산책할 시간도 없고, 주말에 놀러 갈 수도 없는 상황이 너무 싫었다.
내 자유를 월 1500만원에 판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든 첫 번째 생각은, '1500만원이나 벌지 않아도 살만했는데'. 그리고 이어서 든 생각은, '이렇게 힘들 거면 더 받아도 될 것 같은데?'이다. 요지는 내 자유에 1500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스스로의 판단이다.
내 지출, 앞으로의 저축 계획을 생각했을 때 월 소득이 1500만원까지는 필요 없었다. 아니, 일 안 하고 월 1500만원씩 통장에 꽂히면 좋지만 그게 다 노동해야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이라고 생각하니 싫었다. 나는 사업소득 대부분이 근로소득이나 다름없지만, 직원을 채용하면서까지 지금의 사업 규모를 넓히고 싶지 않았기에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일단 투자 공부, 돈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 공부는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알아나가는 공부이기에, 스스로에 대해 알아나가는 공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돈 공부를 하게 된 원인, '돈을 많이 벌려면 일을 많이 해야 돼서 싫다'는 생각부터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일하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나는 일이 재밌다. 일을 많이 할지, 적게 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이 좋다. 올 초에는 '일이 너무 없을 때 나는 불안해하는구나'를 배웠고, 풀타임잡 두 개를 동시에 하면서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건 나에게 맞지 않구나'를 배웠다. 중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사람들이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직장에 다니는 이유도 어느 정도 공감이 됐다.
필요한 만큼보다 조금만 더 벌어서 저축하고, 스스로에게는 적게 쓰고, 주변에 나누며 살고 싶다. 가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커피 한잔과 조각케이크 세트를 사줄 수 있는 정도의 재력이면 충분할 것 같다(이 또한 살다보면 달라질지도 모른다). 직장 밖에 있다 보니 비교할 사람이 없어져서 마음 편하기도 하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의심스럽기도 하다. 결국 내가 내 기준을 만들고, 끊임없이 반문하면서 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