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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르바 Jan 06. 2021

나는 김종국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헬스인의 삶

티비에서 김종국이 헬스 이야기를 할 때면 미쳤다고 생각했다. 헬스장에 가면 놀이공원에 온 듯 행복해하고, 삼시세끼 묵묵히 닭가슴살을 주식으로 삼으며, 50kg 덤벨을 들면서도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을 보면서. 여자 친구에게 한 가장 큰 이벤트가 "나 오늘 헬스장 안 갈게"였다고 하니 참. 굳이 왜 자발적으로 시간을 들여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을 택할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물론 내가 헬스에 빠지기 전까지는.


본격적으로 '김종국화'가 되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입사 4년 만에 회사 생활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 무렵. 일하는 시간이 아깝고, 힘들었고, 아무 성취감도 느끼지 못하는 고통 그 자체였다. 도전이 무척 그리웠다. 가격 대비 효과가 최고라는 헬스를 시작했다. 반복 훈련이 가져오는 근육통은 고통스러웠다. 하체를 한날에는 오리처럼 뒤뚱뒤뚱 계단을 내려갔다. 가슴 운동한 날에는 두 팔을 위로 들기조차 버거웠다. 고통은 타들어갔는데 몸은 냉정했다. 변하지 않았다.


몸의 변화는 석 달 뒤쯤 시작됐다. 한 손에 무거운 덤벨을 들고 등 운동을 하던 날이었다. 바닥에 있던 덤벨을 몸 쪽으로 힘껏 끌어당겼다.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나 보려 고개를 치켜들었다. 순간 맞은편 거울에 비친 얼굴이 보였다. 관자놀이에 핏줄이 바짝 섰고 눈이 발갛게 충혈됐다. 덜덜 팔을 떨며 힘겹게 덤벨을 들어 올리는데, 입고리는 왜 활짝 웃고 있는 것인가. 죽을 만큼 힘든데 웃는 내가 변태 같아 소름 끼쳤고 정신 나간 놈 같았다. 혹여나 웃고 있는 표정을 딴 사람에게 들킬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신기하게도 이날을 기점으로 몸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왜 나는 죽을 듯 힘들면서 웃은 걸까? 근육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아프고 힘들다. 헬스의 원리는 근육을 찢고 회복하며 크는 거니까. 달라진 점은 하나였다. 근육통을 대하는 나의 자세. 예전 근육통은 고통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학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즐거움이다. 성취감을 준다. 오늘도 성장하고 있구나, 알려주는 기분 좋은 자극이랄까. 생각하기에 따라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것이다. 김종국이 쇠질을 하며 미친 사람처럼 웃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나는 일을 즐겼다. 하루 두 시간 자며 경찰서를 도는 수습 기간 때도 그랬다. "힘들지 않냐"라고 누가 물어보면 "졸리고 죽을 것 같은데 행복하다"라고 했다. 다들 미친놈이라 했지만 상관없었다. 원하는 일을 한다는 즐거움과 의미 있는 기사를 쓴다는 성취감이 넘쳤으니까. 기분 좋은 근육통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일이 고통으로 인식된 순간, 매너리즘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헬스를 시작했고, 어느덧 김종국처럼 근육통을 즐긴다. 이때부터 일의 매너리즘도 탈출할 수 있었다.


"선배 오늘 또 헬스 중인가요. 왜 굳이 힘든 걸 아침부터 하시는지... 완전 김종국 다 됐네요." 얼마 전 회사 후배가 이해할 수 없다며 카톡을 보내왔다. '나보고 김종국이라니.' 티는 안 냈지만 내심 기뻤다. 이젠 덤벨을 들며 눈을 찡그리면서도 입고리는 환하게 올라간 내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아서다. 더 이상 변태 같이 웃는 모습을 쪽팔려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지도 않는다. 근육통은 온전히 내가 선택한 것이며, 내가 할 일은 오직 근육통을 미친 듯이 즐기는 것뿐이다. 나의 우상, 김종국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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