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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루 Jan 26. 2022

조약돌일까 빵 조각일까

[헨젤과 그레텔]


"조약돌이었어."

"아냐 언니, 빵 조각이었어!"     


 그림형제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이야기하다 꼬리가 길어진 자매가 나를 쳐다본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눈빛. 너희 둘 다 맞아. 조약돌이었다가 다음엔 빵 조각이라서 돌아가지 못했잖아. 그러자 첫째는 어차피 그림책마다 조금씩 설정이 다르다며 끝을 흐리고, 그 틈에 재빨리 책을 들고 오는 둘째^^     




 온 나라에 흉년이 들어 먹을 것 구하기가 힘들자, 두 아이를 갖다 버리자는 새엄마. 거부하지만 끝내 동조하는 아빠. (이런 설정에 대한 백 마디 말은 삼키고)이를 듣고 눈물을 흘리는 두 아이를 창 밖에서 올려다본다.나무를 해 오자며 숲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는 부모를 뒤따르는 남매. 오빠 헨젤이 미리 준비한 '은화처럼 빛나는 하얀 돌멩이들'을 길에 떨어뜨리며 걷는다. 다 잘 될 테니 걱정 말라고 그레텔을 안심시키면서.

<헨젤과 그레텔> - 제인레이

달빛에 빛나는 하얀 돌멩이들 덕분에 무사히 돌아온 첫날, 하지만 다음날은 미처 돌을 줍지 못했고 빵 부스러기를 떨어뜨리며 숲 속 더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게 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바로 그 장면. 새들이 빵 조각을 먹어버려 돌아갈 길을 찾지 못했고, 길을 헤매다 설탕 과자집을 발견하면서 극적 전개가 시작되는 것이다.     




조약돌과 빵 조각에 대한 의문이 풀린 아이들은 다시 투닥거리며 나풀~ 떠나고, 혼자 그림책을 마저 들여다본다. 그래도 헨젤과 그레텔은 손에 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땅에 뿌렸구나. 요즘 내가 쥐고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내 눈엔, 마녀와 맞닥뜨린 아이들보다 저 조약돌에 자꾸 시선이 되돌아간다.

    

사실 지난주 카카오뷰를 만들며 한구석 상큼하지 못한 기분이 남아있었다. 조용히 기록을 쌓는 목적에서 조금 다른 글 쓰기로 전환되고, 브런치에 이어 여러 플랫폼, 새로운 글 모임들. 나답지 않게 가속중이다. 큰 웃음을 내고 당찬 몸짓을 하고 있지만, 팔을 크게 휘저으며 옷깃만 펄럭이고 있을 뿐 그 안의 나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 나를 다독여 이 막연한 불편함을 꺼트리고 싶어, 합리화할 논리를 찾으라며 스스로 재촉한다.


내 주머니 속에 잔뜩 들어있는 무언가를 이제 깨달았는데 꺼내어 살필 자신이 없는 걸까. '조금 덜어내야 할지' 의심이 덧대지는 걸 막을 수는 없었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한 쓴맛을 경험해본 나이라서 그렇다며 탓을 돌리기엔 좀 부족하다. 많은 것들로 내 주머니를 채우기 충분했지만 이제야 삶의 절반에나 닿았으려나.. 알 수 없으니.     


그래 이것으로 나를 설득해 보자.

무엇인지 정확할 필요가 없었으니 이만큼 채울 수 있었던 거라고. 덜어낼 고민을 할 만큼 가득 차 출렁임에 감사하라고. 모호함은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불안일 수도 있지만, 부정확한 테두리 오차 범위만큼을 모두 가능성으로 생각해버리면 된다.


다만 나는 주머니 속 조약돌인지, 빵 조각인지 모를 생각 덩어리들을 만지작거리는 중이고, 내가 오가려는 길목마다 부지런히 뿌리며 갈 수밖에 없다. 달빛에 반짝여주면 조약돌일 테고, 밤새 새들이 날아와 먹어버린다면 빵 조각이겠지. 다행히 헨젤과 그레텔처럼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쉽게 길을 잃진 않을 테니 조금은 천천히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내 손 끝에서 온기를 먹은 조약돌을 조심히 고른다. 세상에 나와 각자의 달빛을 받아내길, 많은 곳에서 나름으로 반짝이길 바라는 진심을 담아.     

ⓒkoscya, Unsplash



# 반짝. 나의 조약돌들

# 선택의 지점이 쌓여 길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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