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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루 Jun 21. 2022

너의 뒷모습

[딸에게 보내는 편지]


2021.11.01

오늘은 너의 자가격리 2일째.

결과가 음성이라 안도했는데, 반 친구들의 연이은 양성 소식에 적잖게 당황한 어제저녁이었지. 세 번째 확진 소식이 들려오자 너는 마스크를 찾아 썼고, 서재방에 들어가 혼자 생활해야겠다며 물건을 챙기는 뒷모습이 제법 진지해 보였어.


"밤에 춥지 않을까?"

두꺼운 이불 주세요. 괜찮아요.


"마스크 쓰고 엄마 옆에서 자도 되는데?"

안돼. 혼자 잘 수 있어요.


두툼하게 요를 깔고 이불을 준비해 주었어도 혹시나 싶었는데, 밤이 되니 자야겠다며 불을 꺼달라는 말에 깜짝 놀랐어. 책상, 책장, 벽장.. 모두 불 꺼진 어둠에선 무서울 그림자 태세인 짐들이 가득한 끝 방. 평소에도 혼자 있기 꺼리던 너의 담담한 목소리.(아.. 정리라도 좀 해 둘걸.. 후회 조금?)


고장 난 온수매트가 생각났어. 온도 조절이 잘 안돼서 전기세 먹는 하마가 되어버린 매트! 버리려고 꺼내 뒀는데 본체는 어딨더라? 허둥지둥 잘 자리를 정돈해주고 물러서서 물끄러미 너를 지켜봤던 것 같아.


읽던 책을 덮고, 조용한 음악을 틀더라!

이런 날이 오면 멋지게 인사하고, 기특하다며 호들갑을 보여주려 했던 엄마는 조금 밋밋하게 불을 껐지 뭐야. 혹시나 새벽에 네가 건너올까 봐 방문도 살짝 열어 두었는데, 아침까지 잘 잤다는 우리 딸.


와우.

손을 놓아야 하는 순간엔 (동기가 무엇이든) 뿌리치는 쪽보다 뿌리침을 받는 쪽이 조금은 더 서운함이 다가오나 봐. 긴급 e학습을 세팅하고 나오지 않는 너를 생각하니 바로 이 책이 생각나 펼쳤으니 말이야.


진 윌리스의 <꼭 잡아 주세요, 아빠>

자전거로 어디든 갈 수 있게 딸을 응원하는 아빠.


스스로 어딘가 올라서서 바람을 느끼는 그 기분을 너도 느껴보길 바라는 마음.



다독이고 기다려준 시간이 지나..

아이가 제대로 페달을 밟는 순간, 너도 기억나지?


아빠, 꼭 잡아 주세요! 놓지 마세요...
이제 놔도 돼요.




사랑으로 잘 크고, 탄탄해진 몸놀림.



이제 자신만의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겠지? 어젯밤 너처럼.


손을 놓고 새로움에 신난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아마도 그림 속 아빠는 몇 걸음이고 저렇게 빈 손을 뻗으며 자전거 그림자를 따라갔을 거야. 늘 새로운 성장을, 더 먼 곳을 이야기해 주지만 정작 용기를 내 훌쩍 품을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마음은 또 다르구나.


오늘 밤 다시 엄마 곁을 찾더라도, 혼자 한 발짝 동그라미를 벗어나 보았던 어젯밤을 기억할게. 엄마 아빠가 만든 동그라미 밖으로, 조금씩 너의 원을 그려나가길 응원한다. 제 때에, 제대로 된 응원을 보내주려면 엄마도 연습 좀 해야겠네?^^♡




# 코로나 격리로 뒤숭숭하던 2021년의 어느 밤

# 첫째 딸에게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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