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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루 Dec 23. 2021

내 키오스크를 입고, 나아가기

[키오스크]

올해 가장 강렬했던 그림책, <키오스크>.

다양한 물건을 파는 가판대, 작은 키오스크 안의 생활자이자 판매원인 올가를 만났다. 누가 어떤 물건을 필요로 하는지, 지금 지나가는 이는 누구인지 잘 아는 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것도 확실히 알고 있는 그녀다.

조명 꺼진 밤 홀로 읽는 여행 잡지, 오늘은 석양이 황홀한 먼바다를 발견해 한참 들여다보다 사진을 붙여놓고 잠든 올가의 모습. '갇혀있다'라고 말하기 미안할 만큼 행복한 평온함이 은근하게 그녀를 감싼다.

좁은 부스 안이지만, 올가에게 이 일상이 그녀를 얽매고만 있는 건 아니었으리라 마음을 짚어보던 중, 한결같던 일상의 은, 불시에 찾아왔다. 배달원이 평소보다 멀리 놓고 가버린 신문 뭉치, 신문을 옮기려 씨름하는 사이 과자를 훔치려는 남자애들로 흐트러진 올가의 흐름.


쾅! "갑자기 올가의 세상이 뒤집혔어요!"


키오스크가 쓰러졌다.

겨우 일어나 흩어진 물건을 주우려 애쓰던 올가가 번쩍, 키오스크를 들어 올렸다! 좁은 키오스크가 내 움직임을 한정하는 줄 알았는데 이건 뭐지? 내가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거였다니. 이 놀라운 발견 앞에서 올가는 신나게 자리 잡아 키오스크를 정돈할 수 있었다. 음~ 이런 능력이 있었다며 한 번 웃고 제자리를 찾을 수도 있었지.

하지만 올가의 선택은, 잠깐의 산책.


키오스크 안에서 바라만 보던 사람과 풍경들을 직접 만나는 길을 택한 경쾌한 발걸음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한 사고강물에 풍덩!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였고 강물에 빠진다'는 이 건조한 말에 올가의 표정이 궁금하다면.. 흐르고 흘러 바다에 닿은, 올가의 새로운 삶을 한번 보시라. 키오스크는 여전하지만, 팔을 걷어붙여 바꿨을 화사한 그 안에서 올가는 이제 조금의 불편에도 직접 자리를 옮기는 쿨함과 그럼에도 즐거운 여유가 느껴진다. 한밤 중 홀로 잡지를 오리는 대신, 석양이 황홀한 바다와 직접 마주해 밤을 맞은 올가. 이제 그녀는 더없이 행복할까? 해변의 그녀가 또 다른 여행 잡지를 들고 있는 마지막 장면에 마음이 뻐근해진다. 그래, '깨뜨림'의 힘을 알아버렸으니 머무르고 있지만은 않겠지? 언젠가 다시 산으로 떠나보려는 그녀의 꿈을 응원하며 함께 다음을 상상해 본다.




<키오스크>가 주목받고 책모임마다 회자되는 동안, 이 책만큼 각자의 입장이 되어 읽어내는 책이 있을까 싶은 다양한 이야기가 넘쳤던 것 같다. 키오스크를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닿은 사람, 내가 둘러멘 키오스크가 결국 '나'임을 깨닫는 사람, 계속해서 꿈을 꾸다, 결국 이루는 엔딩에 포커스를 주는 사람.


나의 한 장면은, 바로 여기다.


키오스크를 들어 올린 올가의 한 발짝!

주춤하지 않고 가볍게 내디딘 한 발, 기존의 내 존재 위치를 개의치 않고 떨쳐 나온 틈.

이 한 걸음이 길가의 만남으로 이끌었고, 우연을 만들어 강물로 빠지게 했다. 강물이 흐르는 동안 숨겨진 많은 일이 스쳤겠지만, 결국 원하는 바다에 닿게 한 흐름.


능동적인 움직임을 선택한 올가에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늘 익숙한 자리에 앉고, 끌렸던 노래나 영화를 반복해서 즐기는 안정형 인간이면서도 소극적이거나 애매한 건 견딜 수 없어하는 양면을 모두 가진 나.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활개 치는 은둔형이랄까. 그러니 항상 바빠 울타리 바깥에 호기심 느낄 겨를이 없었던 걸까.

아니다. 고개를 빼고 있었지만 늘 아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한계를 주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넌 거기까지' 울타리를 쳐 놓고 있었다니! 좀 더 갖추고, 좀 더 여물어야 꿈꿀 자격이 있다고 나를 막았던 마음이 올여름 만난 <키오스크> 앞에서 부끄러웠다.


망설임 없는 한 발짝.

내 키오스크를 놓지 않고 현재를 버리지 않더라도, 올가처럼 성큼성큼! 첫걸음을 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가 없는 거였어. 완전히 새로울 필요도!

일단 내 발걸음이 새 길에 올라서야, 우연도 사고도 일어나는 것.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내가 오랫동안 쌓아왔고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걸음을 떼었고, 울타리 안에서만 쓰던 글들을 공개적인 자리로 옮겨 나를 드러내는 중이다.

이 걸음이 더 새로운 기록을 쓰게 했고, 낯선 것들을 시작하게 했으니 난 지금 산책 중인 거겠지?


산책 길, 안전한 동그라미 밖에서 만난 커다란 존재들에 압도되어 그들의 길을 가늠해 보기도 한다.

마치 <작은 눈덩이의 꿈>의 꼬마 눈덩이가 그러했듯, 이미 몸집을 키운 큰 존재들을 올려다본다.

"와아.. 아저씨는 어떻게 그렇게 커요?" 감탄하며 묻던 마음이 딱 나와 같을까. 싱긋 웃어주고 가버린 큰 눈덩이가 지나간 길을 한참 바라보고만 있던 작은 눈덩이의 마음을 이제야 진정으로 공감한다. 그 커다란 몸집이 너무나 멀고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나 끝내 구르기 시작했던 그 녀석처럼, 나도 빈 자국만 쳐다보고 있진 않을 거야. 나도 내 걸음으로,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구를 거야.

"내 힘으로 굴러야 내가 정말 가고 싶은 곳을 알 수 있어."


작은 눈덩이처럼 오랫동안 눈길을 굴러 몸집이 단단해질 때까지, 올가처럼 산책길에 맞닥뜨릴 풍덩! 을 기대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 또한 조금씩 나아지는 것. 완벽보다 발전을 꿈꾸는 나의 키오스크 안에서 오늘도 글을 쓴다. 이제, 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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