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마음에 착륙할 글을 기다리며
안녕? 난 지금 포르투갈의 한 카페에 와 있어. 겨울이라지만 이곳의 공기는 묘하게 부드럽고, 창으로 드는 빛마저 매력적이야. 돌바닥에 스며든 습기 때문인지 테이블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작은 울림이 파두처럼 은근히 전해져, 쭉 뻗은 내 다리까지 두근거리게 해. 여기서 잠시 따뜻한 라테로 손을 녹이고 다시 배낭을 메야지. 렐루 서점에 들를 참이거든. 호그와트의 모티브가 된 계단을 올라 중후한 서가 앞에 선다는 상상만 해도, 벌써 콧김이 들썩거린다. 멋진 영감이 떠오르면 배낭 끝에 잽싸게 매달고 올 테니 기대해!
_이런 편지를 진짜 포르투갈에서 쓰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뜬금없이 외쳐보고 싶었다. 아주 먼 곳에서, 최고조의 행복감으로 “안녕,” 하고.
사실 내가 있는 곳은 도서관 카페다. 작년 겨울부터 출근하듯 오다 보니 벌써 사계절을 이 자리에서 보냈다. 처음엔 2층 자료 열람실 구석이 좋았는데, 어느 날부터 로비의 카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벽을 등진 계단식 테이블 중 하나를 골라 앉으면, 오른쪽 통창 너머로 화단이 보인다. 계절마다 색을 바꾸는 나무들, 저 멀리 산 능선이 훤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을 사이에 두고 뜨거운 여름의 소음이 한창이었는데, 지금은 등 뒤에서 히터가 드르르르 진동한다.
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작은 테이블에 올린 노트북을 덮개를 열면 주변은 금세 희미해진다. 타인의 시선과 소음에 예민한 편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는 자리다. 덕분에 점심나절이 지나기까지 몇 시간 동안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따뜻한 연유 라테죠?”
카페 키오스크에서 주문하고 카운터에 닿기도 전에 사장님이 웃으며 손을 내민다. 텀블러를 건네면서 짧은 인사가 오간다. 휴관일과 주말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이곳을 찾으며 얻은 다정이라 해야 할까. 오늘도 뜨거운 커피를 내려놓고 창밖 능선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마음이 멀리 날아가 버렸다. 초록을 벗은 가지들 저편으로, 포르투갈까지 날아간 마음을 붙잡아 손끝에 내려놓는다.
이 작은 테이블은 내겐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여행의 출발점이다. 말하자면 떠날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 매일 같은 시간, 오늘의 탑승 게이트가 되어줄 테이블을 찾아 이곳에 온다. 작은 노트북을 열면 비행기를 타러 게이트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 된다. 훨훨 날아갈 준비를 마친 설레는 걸음으로.
그러다 카페의 익숙한 소리가 현실을 깨운다. 커피머신이 부지런히 돌아가고, 앞 테이블의 꼬마가 다리를 퉁탕거리는 아침. 나를 데려가 줄 기억이나 장면 하나가 도착하길 기다리며 글을 쓴다. 지연되는 비행기만큼이나 마음이 늦는 날도 많으니, 일단 내 몸부터 여기로 보내두는 셈이다.
어쩌면 공항은 ‘떠나는’ 장소가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경계 없는 하늘로 날아갔던 내 생각들이 돌아와 빈 화면 속 새로운 문장으로 착륙한다. 나를 다시 데려오는 마음의 경유지, 나의 공항이자 카페. 오늘처럼 생각의 고리가 멀리 날아갔다 돌아오는 날도 있지만, 가끔은 경유지조차 되지 못하고 공중에서 선회하다가 착륙에 실패하는 날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곳엔 큰 창이 있다는 점이다. 이륙하는 기분을 잊지 않게 해 주는 파란 하늘이 내다보이고, 계절마다 얇아졌다 두툼해지는 빛의 온기에 마음을 기대곤 했다. 언젠가 내게 돌아올 마음이니 초조하지 말라고 일러주는 계절을 오롯이 느끼면서.
어떻게든 꾸준히 해 보자는 의무감으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쓰는 일’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아니, ‘쓰는 나’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확장하는 일이라 생각하고 자꾸만 멀리 날아가려 했다. 생각은 늘 높이 떠 있었고 나는 그 뒤를 따라가느라 가쁜 호흡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추상적인 비행만으로 가닿을 수 없는 ‘바닥’(지금 여기, 그러니까 나의 일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커피와 함께 작은 인사를 건네는 카페 사장님, 눈인사를 나누지는 않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할아버지. 갑자기 내게 방석을 건네는 옆 테이블의 누군가. 나를 둘러싼 관계와 연결되는 순간, 떠다니던 글도 잠시 착륙한다. 그런 순간이 늘어날수록 조금씩 욕심이 생기려 한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잘 쓰였으면 좋겠다. ‘쓰임’이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닫힌 마음에 틈을 내어 잠시 숨 고르게 해 주는 글. 오래전에 눌어붙은 껌을 한 번 떼어내 볼 마음을 먹게 하는 글. 일회용품처럼 쓰일지라도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
그러니 조금 더 머물러 본다. 오늘의 게이트는 카페 앞 7번. 하얀 테이블을 활주로 삼아 날아간 마음을 기다리며 쓴다.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살포시 착륙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