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3. 가스라이팅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지기
가스라이터(가스라이팅을 시도하는 사람)와 엮여 있을 때는 헤어지고 나면 자유로워질 줄 알았다.
보복 행위에 대한 공포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가스라이터는 정말 비열했다. 내가 계속 사회생활을 이어가고 싶다고 하자 어딜 가려고 하냐면서 내 팔을 쥐어 잡고 손을 입으로 물었다.
그러다 점차 상처와 멍이 들지 않도록 머리와 배를 가격하고 머리카락을 당기는 식으로 폭력을 행사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이 없는 차 안이나 둘만 있을 장소를 노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헤어진 후에도 어떤 일을 벌일지 확신이 없었다
나는 점점 아프고 야위어갔고 몸무게가 39킬로가 되었다. 가스라이터는 술과 폭식으로 늘 살이 찌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살을 뺀다며 하루에 한 끼만 먹는 사람이었는데 나까지 늘 먹는 것을 신경 쓰게 만들었다. 자신의 식욕조차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인 나의 생각과 행동을 모두 컨트롤하려고 한 것이다.
가스라이터는 좋은 대학을 나와서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엘리트 인생을 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자신을 끊임없이 속이고, 부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긴다고 여겼다.
"너는 멍청한 *이니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너 같은 애를 만나는 게 아녔어."
"아.. 너 진짜 못생겼다."
늘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들을만한 가치가 없는 말인 걸 알지만 가시처럼 돌아다녔다. 지금도 멍할 때가 많이 있다.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나에게 준 선물도 내가 안 받으면 그의 것이라고. 나는 가스라이터의 말을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받아버렸지만 이제는 문밖에 내려놓려고 한다. 그러면 원래 주인에게 찾아갈 것이다.
가스라이터가 나를 컨트롤하려 했지만 나는 소용없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죽을힘을 다해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 모든 사회생활과 경력을 끊어 놓았지만, 서른이 넘어 취업도 했으니 성취감은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보복 행위에 대한 불안까지 막아주진 못했다.
한 번은 자기 인생을 위해 나를 만났던 것이 큰 오점을 남기기 싫으니 죽어 달라는 말을 했다.
정말 큰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법적인 절차를 거치고, 헤어짐을 택하면 된다. 그는 비상적인 방법으로 나를 단죄로 하려고 했다. 어떤 날은 칼을 들면서 빨리 누구랑 만났는지 얘기하라고 취조를 시작했다. 그런 경험이 있었으니 어쩌면 내가 보복행위가 있을까 싶어 불안해했던 것은 너무 당연했다.
그는 나의 집도 알고, 내가 어디를 자주 가는지 다 알고 있었다. 헤어진다고 해서 모든 생활환경을 다 바꿀 수는 없다. 그러니 언제고 찾아와서 괴롭힐 것 만 같았다. 실제로도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모른 척 지나갔지만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는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웠다.
나를 공격한다면 어떻게 도망치고 도움을 청할 건지를 매일 같이 생각했다.
보복 행위로 두려움에 떨면 매일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차를 직접 운전하고 다니는 게 안전할까? 보복 행위로 지하주차장에서 헤어진 전 부인을 살해한 사건이 뉴스에 나왔다. 안전하지 않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제일 안전할까? 사람이 많으면 나를 공격하진 않겠지.'
'스마트 워치를 사서 나타나는 즉시 sos를 청해야겠다. 그러면 꼬리가 잡히게.'
'가스라이터의 행동을 다 알리고 싶다. 그러면 내가 자신의 앞길을 막았다고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이 말은 가스라이터가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는 뜻이고, 어떤 사람의 인생도 또 망가뜨릴 수 있으니 바라는 마음조차 죄의식이 느껴진다
물론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이 있다. 일이 터지고 나면 처벌은 받겠지만 갑자기 괴한처럼 들이대면 나는 속수무책일 것이다. 내가 돈이 많아서 보디가드와 늘 같이 다니는 상상을 해본다. 완전한 자유는 아닌 거 같았다.
'외국을 나가서 살아야 하나? 내가 내린 답 중에 가장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만약 외국까지 와서 괴롭힌다면? 그러면 외국은 한국보단 처벌 수위가 높고, 정당방위도 인정해줄 테니 나도 맞서서 대응해줘야지.. '
이런 상상을 하면서 내 불안을 달래보곤 했다.
경찰이 아무리 빨리 출동해도 마음을 먹고 오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다. 나는 아직도 대화 기록과 폭행했던 기록을 모두 다 가지고 있다. 내가 미처 방어하지 못해 큰일이 생겼을 때 덜 억울하려면 옛날 자료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다.
지난 5년 한국의 데이트 폭력만 보아도 너무도 심각하다. 하루 26건꼴로 발생한다고 한다. 살인, 살인미수, 폭행, 감금, 성폭력 등으로 입건된 수만 지난 5년간 4만 7700명이다. 그런데도 구속은 4%밖에 되지 않는다. 나조차 통계가 잘못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만약 이게 조작된 통계라면 계속해서 나오는 강력 사건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리가 혼란스럽다.
보복 행위에 대한 불안과 위험까지 피해자가 책임져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상담을 통해 회복이 돼도, 보복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알려줄 수 없으니 거기서 오는 불안은 다 내가 해결할 몫이었다.
몇 년간 고민을 해왔지만 내 결론은 이 문제는 개인이 절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한국을 떠나 모든 인연을 끊고 살지 않는 이상 보복 행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
한번 가스라이팅 피해를 입은 사람은 어쩌면 벗어나는 순간부터 또 다른 족쇄에 묶이는 것 같다. 자유를 보장받으려면,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법이나 제도적 장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번 문제를 만든 사람은 지속 관찰을 하든, 치료를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 캐나다는 데이트 폭력을 일으킨 자는 향후 3년간 이성을 만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다. 그조차도 완전한 자유를 보장하진 못할 것이다.
가장 예쁠고 빛날 시절에 끔찍한 경험을 한 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싫다. 게다가 남은 인생까지 보복행위로 늘 공포를 가지고 사는 게 너무 싫다. 이런 가스라이팅은 연인 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고 직장에서든 사람 사이에서 언제든지 가스라이팅을 시도할 수도 있다.
나는 사회 정책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고, 범죄 분석가도 아니다. 다만 나의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의 긍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을 먼저 많이 모으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도 방법은 모르지만 다시 예전처럼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