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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비 Jan 16. 2021

작은 아빠의 장례식

2021.01.15.


  아내 할아버지의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 일찍 출발해야지 했는데 5시가 넘어서야 광주에서 출발했고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운전을 하는 동안 10년 전 작은 아빠의 장례가 떠올랐다.


  큰아빠의 장례 이후 몇 번의 장례가 더 있었다. 모든 장례가 다 아쉬웠지만 유독 작은아빠의 장례만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이 왈칵 올라온다. 큰아빠와 작은아빠의 나이차는 제법 컸다. 큰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작은아빠는 환갑도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 안타까워 본인 몸도 못 챙겼다고 한소리 하였었는데 정작 본인은 큰아빠보다도 더 일찍 돌아가셨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고 맞이한 설이었다. 큰 집인 사천에 가족들이 모여 제사도 지내고 서로 세배하며 덕담을 나누었지만 정작 나는 방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같이 놀 수 있는 작은아빠의 아들, 사촌동생K가 오지 않아서 심심했었다. 매년 그래왔듯이 내년에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이고 스물 중후반이 넘었기에 이제는 가족모임 보다는 친구들을 만나 노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날 아침부터 작은 아빠를 봤을 텐데 작은 아빠의 얼굴은 집으로 돌아가시던 길에 그 얼굴만 떠오른다. 방에 틀어 박혀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작은 아버지가 집에 가신다고 하셨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다 보니 진짜로 몸이 아픈 것 같았다. 작은 아버지가 방문 앞에서 가신다고 인사를 하셨고 나는 그때가 마지막일지도 모르고 아프다는 핑계로 누워서 조심히 들어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다시 누워 티비를 보았다. 티비를 보고 있는데 귀에 사촌형들과 아빠가 작은아빠의 얼굴색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들렸었다. 그렇게 설은 마무리 되었다.


  자랑거리가 몇 개 되지 않지만 나는 누우면 바로 잠들 수 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 뒤척이다 차를 가지고 드라이브를 다녀오고 늦게 잠이 들었는데 심상치 않은 전화벨 소리에 바로 눈이 떠졌다. 아빠였다.


  창원에 거주하시는 삼촌이 부산대 병원에 있다고 하셨다. 위독하니 바로 오라는 아빠의 연락에 더 물을 것이 없었다. 서둘러 부산행 버스를 탔는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중환자실앞 계단에서 사촌동생H가 울고 있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니 K가 작은아빠 옆에서 울고 있었다. 마지막 도착자인 나를 위해 산소흡기는 작동되고 있었고 나의 도착을 기점으로 작은아빠의 산소호흡기가 떨어졌고 하얀 천이 덮이며 사망시간이 선고되었다.


  3일간의 장례가 진행되었다. 큰아빠 때 보다도 자신보다 어린 동생의 죽음 앞에 아빠는 눈물을 거두지 못했다. 이틀째 저녁 사촌동생K의 부탁으로 K친구가 녹차라떼 한잔을 사왔고 사촌동생K가 그 녹차라떼를 영정 사진 옆에 올리며 작은아빠가 이 녹차라떼를 맛있게 마셨다며 추억을 공유하는데 어찌나 울었는지 아직까지도 녹차라떼만 보면 그때 기억이 난다.


  갑자기 떠버려서 눈물이 더 많았던 장례를 잘 치렀다. 작은아빠의 죽음이 믿겨지지 않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앞서 이야기 한 대로 나는 참 잘 잔다. 그러다 보니 꿈을 거의 꾸지 않는데 너무도 생생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너무도 화창한 날 돌아가신 삼촌과 막내 고모, 나 이렇게 셋이서 차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꿈에서 나는 삼촌이 돌아가신 것을 알고 있었고 삼촌이 반가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안부를 물었는데 삼촌이 너무나도 밝은 표정으로 잘 지내고 있다 하였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도 나눴는데 생각나지 않지만 너무도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잠에서 깨어나 슬픔의 눈물이 아닌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엄마에게 울면서 전화했다. 꿈에서 작은아빠를 만났는데 너무도 좋은 얼굴이었다고 그리고 그날은 49일째 되는 날이었다. 평소 이런 것을 믿지 않았지만 그 꿈은 꼭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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