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가 발목을 잡는다
내 치명적인 단점이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마무리를 잘 짓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는 굉장히 작은 것처럼 보였으나,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게 제일 결정적이었다.
창업을 하려고 생각할 때의 일이었다.
오래된 친구랑 뭔가를 같이 해보기로 해서, 실제로 이야기를 다 맞춰놓았고, 친구는 열정적으로 강의안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는 장소를 잡기로 했다. 신청자가 없어도 장소를 잡고 1대1로라도 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올린 강의에 신청자가 없었고, 나는 그래서 장소를 잡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무슨 멍청한 짓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그 일이 작게 보였다.
그래서 그 친구와의 일이 없던 것이 되었다. 지금 다시 관계는 어느정도 회복되었지만, 일을 같이 진행한다는 신뢰를 영영 잃어버렸다.
아주 큰 댓가를 치른 것이다. 지금도 뼈아프다. 그때의 자신을 불러다가 싸대기를 치고 싶다. 나는 합의가 된 대로 응당 강의실을 잡았어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일을 추진하기 위해 나도 강의 모집 글을 쓰고 모집 글을 올리는 등의 활동을 했었던 것이다.
일을 80% 다 진행시켜 놓고, 마지막 20%를 홀대해 친구의 신뢰를 잃고, 어쩌면 잘 될 수도 있었을 프로젝트를 엎어버렸다.
지금 그 일을 돌아보고, 현재를 관찰해보면 가끔 그런 일들이 보인다.
분명히 아주 노력을 많이 쏟았고, 잘 해왔다. 훌륭하게 80%의 일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모종의 방심, 혹은 자만, 그게 아니라면 80% 했으니 이제 시간문제라는 자신감이나 낙관적인 평가,
혹은 80%나 일을 잘 마무리했으니 이제 좀 쉬어가자는 안도감, 거기서 발생하는 귀찮음 때문에 20%를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않는다. 원래 당초에 하기로 했던 대로 시행하지 않는다.
지금 손에 잡고 있는 일이 아주 훌륭한 일일 수 있다.
아니면 어떤 놀라운 합의를 이끌어내는 일일 수도 있고. 아무나 못하는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여태까지 잘 해왔다고 생각한다면, 더 긴장하는 편이 좋다.
지금부터 할 20%를 훌륭하게 끝내지 못하면, 지금까지 해왔던 80%의 평가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끝의 20%를 처음의 80%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일을 망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