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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룻강아지 Oct 11. 2020

3년차에 슬럼프 극복한 글

으르릉 왈왈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이고, 노여움은 적이다.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일을 모른다면 반드시 해가 미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



오래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고들 한다.

처음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냥 나는 강하고 싶었다. 오래 살아남아 강하다는 것은 마치,

호랑이 없는 산의 여우, 새 없는 섬의 박쥐 같은 거 같잖아.

내가 강한 게 아니라, 그냥 나보다 강한 사람이 다 죽어서 강해진 거잖아.

세상엔 천재가 많은데, 왜 난 그들 중 하나가 아니지?





회사에 안 가고 내 일을 하겠다고 한 지가 벌써 3년째다.

처음 시작할 때는 3년쯤 하면 그래도 뭔가 손에 잡히겠지 했다.

왜냐면 당시에 3년쯤 된 사람들이 내 눈에는 자기 자리를 잡은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물론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건 요즘 알았다)



그래서 3년째 된 올해, 특히 요즘은 굉장히 자조에 휩싸여 있었다.

3년이 지났어도 뭐가 된 게 하나가 없구나.

이기는 것만 알고 지는 일을 모른다면 해가 미친다고 하는데,

그동안 이긴 게 뭐가 있지? 정말 병X인가. 쯧쯧.



물론 빚을 지지 않았다(아, 최근에 교육비로 좀 졌다).

굶지 않고 있다. 사무실도 적은 비용으로 쓰고 있다.

적자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정도만 해도 지금 나이대에서는 잘 하고 있는 게 아니냐?

라는 좋은 사람들의 격려가 많았지만, 나를 자꾸 남들과 비교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또래 친구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직장에 취직하고, 모임도 나가고, 차도 사고.

이런 것들이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끔은 위축되게 된다.

그래서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인가?

이제 부모님도 정말 나이가 들었는데(나는 많이 늦게 태어난 편이다),

정말 아무것도 내가 대비해줄 수가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자기계발 시장에서는 언제나, 개나소나 월천을 부르짖는다.

이것만 하면 월 천 법니다! 저는 이걸로 벌었어요!

개중에 벌지도 못하면서 짖기만 하는 사짜는 뒤로하고,

(어쩌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돈을 번다는 데 배울 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벌었다는 사람이 그 소리를 유튜브 같은 데 나와서 하기까지 

그에게 얼마나 인고의 시간이 있었을지 헤아려보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걸 알고 있음에도 때로는 조급함을 느꼈다.



나는 언제쯤 내 실력으로 나를 안정시킬 수 있을까.

스물다섯에 이걸 시작할 때는 나 스스로 느끼기에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다.

어깨가 지금보다 더 가벼웠다. 나이가 들수록 분명히 더 무거워질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 4월에 잠깐 다니던 회사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스물여덟이면 이제 곧 30이니, 30이 되기 전에 내 일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서른 넘어서는 시도하기 어렵게 될 것 같아서 그만두고 나왔었다.



어쨌든저쨌든 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회사에 안 다니고, 내가 내 밥벌이를 하겠다는 뜻을 안 놓고 있다.

그리고 여태까지는 살아남았다.



얼마 전에 사주를 보러 갔다. 이미 많이 봤지만 또 용한 데가 있다고 해서 가봤다.

친한 형이 데리고 가줬다.

사주에서는 내가 50대부터 좋다고 한다.

그걸 듣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미친. 이럴 줄 알았어. 50? 다 늙어서 피면 어디다 쓰나.

소위 부의 추월차선을 타겠다고 이 짓을 하는데, 50?



그래. 살아남아서 강한 게 아니라, 그냥 강하고 싶은 거지.

나중에 나이를 좀 더 먹으면 이런 생각을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이야기했고,

50이 될 때까지 사람구실을 못한다거나 부모에게 할 도리를 못한다거나

밥을 굶는 게 아니라고 사주 보는 사람은 이야기했다.

뭐 그래. 사람구실은 하고 할거 다 하고 산다니 다행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정신적으로 자해하는 것은 그만두는 편이 좋다고 말을 들었다.

그건 인정. 완전 인정.



사주 보고 일하다가 잠깐 쉬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에야스 생각이 났다.



젊을 때는 노부나가의 동맹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부하 취급을 받았고,

신겐에게는 전쟁에서 패해 말에서 똥까지 지리면서 도망갔다.

중년에 노부나가가 죽은 뒤에는 히데요시와 전쟁해 이겼으나

정치적으로 패배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히데요시가 죽은 뒤에야 일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오래 살아남은 사람이 결국 일본을 통일한거지.



삶이 참 뜻대로 안 되어 왔다. 기대한 것은 충족된 적이 거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내 능력이 부족해서겠지.



돌아가도 더 이상 뭘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들면 최선을 다한 게 아닌가?

아마도 이에야스는 이런 순간을 엄청나게 많이 겪었을 것이다.

나중엔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이다' 같은 멋있는 말을 남겼지만,

젊었을 때는 분명히 '시X, 존나 뜻대로 안되네' 라고 생각했을 거야.



20대 후반의 이에야스한테 가서 

'얘, 네가 나중에 일본을 통일한단다.' 라고 하면

뭔 미친 소리를 하는거야. 하지만 기분은 좋군! 이라는 표정을 짓겠지.



나도 나중에는 그런 말을 남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엣헴 엣헴. 인내는 무사장구의 근본이다."

살아남은 사람이 강한 것은 결국 일찍 죽어버린 사람보다

더 많은 기회를 접할 수 있고, 더 많이 타석에 설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창업하겠다고 말했다가 그만두는 것을 보았다. 

혹은 시작하겠다고 말하고 여태까지도 시작 못한 사람들도 있다.

3년이란 짧은 기간에서도 내가 아는 것만 두자릿수 정도 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나는 살아남았다. 재주도 뭣도 없지만 어떻게든 벌어먹고 있다.

내게는 아직 타석이 남아 있다. 내가 아는 것, 내가 모르는 것들을 합해서.



개중 하나라도 맞는 꼴을 못 봐서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맞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에게 실망하지는 말자.

정말 다른 거 말고 실망하지 않는 것만 하자.

화내지 말자. 새가 안 울면 울 때까지 최선을 다해 기다리자.

자신이 스스로를 위할 줄 알아야 교훈도 얻고 발전도 하는 법이니까.



이에야스가 말 위에서 똥까지 싸면서 도망갔을 때,

패전 직후 '난 병신이야. 지휘도 존나 못하고...'라고 생각했다면

딱 십년 뒤 야전에서 히데요시 뚝배기를 깨버린 이에야스는 탄생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겠지. '그냥 이런 때도 있는 거지.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어.'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점점 더 잘 하고 있으니까 조급하지 말자.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다시 다음 타석에 서자. 아직 해볼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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