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대문자 J의 무계획 유럽 투어

2024년 서울 그리고 2025년 인천

by 애리

여행의 시작은 남편의 이직이었다.

2023년 10년간의 회사생활을 청산하고 나는 프리랜서이자 꿈꾸는 창업가가 되었고

2024년 8월 남편 회사 바로 옆(door to door 7분 cut)으로 이사하기가 무섭게 2025년 1월 남편은 이직을 했다. 아마도 이젠 door to door 1시간 반. 그래서 어이가 없었냐구? 아니, 오히려 만나는 사람마다 떠들어댈 만큼 그 소식에 나에겐 유머러스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웃픈' 소식을 나는 재미난 스토리로 여겼다.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표정을 조금씩 맞춰가며 내게 재밌는 이 이야기를 전했다. 때때로 너무 진지하게 '어머, 어떻게 해. 싸우진 않았어? 괜찮아?'라고 반응하는 상대에겐 그저 가볍게 말하기가 오히려 미안해져서 나 또한 진지하게 괜찮다는 말을 연발하기도 했다.


결혼 후, 남편이 첫 이직을 했을 때 그리던 청사진이 6년만인 2025년에 이뤄지게 되어 오히려 기뻤다. 사는 곳이 잠시 멀어진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잠깐의 이 아이러니한 해프닝이 좋아서 '자랑'보다는 '재미'를 선택했을 뿐이다.


한국에서는 여행을 가려면 '퇴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직장 생활 중에는 긴 여행이 어렵다. 돌이켜보니 나 또한 한국의 '빡센' 회사생활의 휴식기는 모두 퇴사 또는 이직 그 어느 사이였다. MZ세대 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이쯤에서 잠시 밝혀두고 싶다. 내게 이 휴식법을 알려주신 건, 2014년 첫 회사의 대표님(68년생, 여성)이셨으니까. 어느 날 회사(협회를 다니셨다)를 며칠 안나갔더니, 사수(지금은 이사님이 되셨다)가 집으로 찾아까지 왔더랜다. 너무 힘들어서 2주 간 쉬고 싶다고 회사에 이야기 했더니, 그럴거면 퇴사하란다. 그렇게 덜컥 퇴사하고 회사를 차리셨다. 이제 와 밝히는 이야기지만, 그런 대표님께 배웠으니 그 배움 어디로 가지 않더라. 어딘가에서 절실히 배우지 않더라도 한국인이라면 알 것이다. 우리의 휴식은 언제나 퇴사와 이직 그 어느 사이에 있다는 것을.


이직을 앞둔 퇴사의 매력은 우리 인생에서 흔치 않은 두 마리 토끼가 모두 주어진다는 데에 있다.

누구나 들어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젊을 땐 시간은 있는데 돈이 없고, 나이가 들면 돈은 있는데 시간이 없다고. 그런데, 이직을 앞 둔 퇴사에는 둘 다 있다. (유레카!)


6년간 일한 직장에서의 퇴직금과 2달 간의 시간이 우리에게 생겼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어디를 가야할까?


처음엔 그저 여행이 아닌, 유용한 곳으로의 방문을 남편이 제안했다. 명상을 하는 내게 필요한 곳을 가고, 보고, 경험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곳은 내가 가야할 곳이지, 우리가 가야할 곳은 아니다. 고생한 사람에게 주는 보상은 확실해야 했다. 그가 원하는 곳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유럽.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보면서 이 글을 쓰자니 양심이 찔린다. 이곳에서도 남편은 아주 충분한 고생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그 어디가 중요하진 않았겠다 싶기도 하다.)

IMG_1522.JPG 남편은 비행 중간중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보는 걸 좋아한다


여행지를 고르는 가장 빠른 방법은?

'홧김'에 휘두른 주먹처럼 빠르게, 우리는 '술김'에 여행지를 정해버렸다.

자주 가는 애정하는 우리 부부의 식당이 있다.

이제는 집에서 멀어졌지만 그래도 포기가 되지 않는다면 정말 '찐' 단골집 인정이리라.


애정하는 곳에서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약속한 1년의 단 한 번의 선물을 받으며, 처음 마시는 스파클링 사케의 맛에 취해 그렇게 우리는 여행지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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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인스타그램 스토리 기록을 겨우 찾아서 올려본다


그렇게 우리는 스페인 마드리드 in 이탈리아 밀라노 out으로 일정을 정했다.

기가막힌 타이밍이었다. 우리 부부의 왕복 항공권은 대한항공 마일리지 100%로 끊었다. 어떻게?

10년 간의 회사생활이 보상받는 순간이다. 회원 만료 기간은 2025년 5월. '찢었다'

이 영광을 남편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고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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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미워질 때마다, 내가 왜 이걸 너랑? 날 키워주신 부모님과 함께 했어야 하는데, 라고 품었던 순간이 딱 두 번 정도 있었음을 조심히 고백해본다. 아, 다시 생각해보니 10년 직장생활 중 6년은 남편과 함께 있을 때이니, 오직 내 것만은 아니었다. '인정')


여행 전에 설레며 계획하고 즐거웠느냐고? 아니, 전혀.

우리 둘 다 너무 바빴다. 사실 지금도 바쁘다. 꿈꾸는 창업가에게 가장 바쁜 시기였다.

가기 전에 해야할 것들이 정말 많았고, 가서도 해야할 일은 계속 있을 예정이었다.

(자꾸만 사람들이 지금 가도 되겠냐고 물어와서, 가야만한다고 말하는 것이 정말 피곤했다)

그 또한 인수인계와 이직을 준비하는 과정에 정리할 것이 많았다.


그렇게 우리는 겨우겨우 마드리드에서의 3박 호텔만을 겨우 예약하고

두 대문자 J가 거의 처음으로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났다.

한 남자는 30분 단위로, 한 여자는 1시간 단위로 엑셀에 모든 것을 기입해야만 했던 그들이었다.


지금 우리의 엑셀은? 텅 빈 그 자체다.

20250226_132726.png 결국 이게 전부다. 그 전 우리의 계획표를 본다면 정말 이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굳이 무리한 것 아니냐고? 아니.

지금 노는게 중요하냐고? 응.


인생에서는 꼭 그 때에 해야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 복잡해져도, 포기할 것들이 생겨도 해야하는 것들이 있다.


지금 나에겐 이 여행이 그러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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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셀을 보면 알겠지만, 처음에 계획했던 것들을 잘 실천했다. 앞으로 종종 등장할 예정


IMG_1524.JPG 도대체 언제 도착해?

ㅈㅇ과 ㅎㅇ의 '쀼'여행 시작!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