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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Aug 19. 2019

흔들려야 청춘이라지만

영화 <내가 사는 세상>을 보고(스포 있음)

포스터 때문이었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매끄럽지 않은 풀칠로 반복적으로 붙여진 포스터. 군데군데 스프레이와 사인펜으로 낙서가 되어있는.

인싸가 아닌 아싸의 이야기겠구나...



오늘도 비겁하거나 내일이 겁나거나


한 청년, 캐리어를 끌고 머리를 숙인 채 걸어가고 있다.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이다. 영화 <내가 사는 세상>은 소위 예술을 한다는 요즘 청춘들의 이야기이다. 남자 주인공 민규는 낮에는 배달 알바를 하면서 밤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DJ다. 틈틈이 시간을 쪼개 음악 작업을 하고 밤에는 클럽에서 공연도 한다. 그의 연인 시은은 미술학원에서 입시미술을 가르치는 강사이다.


함께 사는 그들은 넉넉하지 않지만 각자의 일을 존중하고 서로를 아끼고 사랑한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낮시간의 고된 노동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느 날 민규가 낮시간에 일하는 배달업체의 월급이 매달 조금씩 부족하게 입금이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사장은 직원을 위한 보험으로 나가는 비용이라고 하지만, 믿을 수가 없는 민규와 동료는 사장에게 증명을 요구한다. 더불어 근로계약서를 내밀자, 사장은 바로 해고를 통보한다. 


민규가 공연하는 클럽 주인은 친형처럼 믿고 따르는 형이다. 형은 클럽에 공연하는 뮤지션들의 공연비를 제 때,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 갖은 핑계를 대며 다 너를 더 잘되기 위해서라고 이야기한다. 민규의 연인 시은에게는 번번이 공연 포스터 디자인을 부탁한다. 가족 같은 형은 '우리 사이에'란 말로 모든 것을 퉁치려 한다.

시은은 늘 착하게 당하기만 하는 민규를 탓했지만, 정작 자신의 일도 답은 없다.


시은이 일하는 미술학원. 실장은 트레이닝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한 대가 없이 시은에게 많은 작업을 요구한다. 대가를 요구하는 시은을 무개념으로 몰고 학벌이 높다는 이유로 시은이 가르쳤던 제자를 시은의 상사로 앉힌다. 그리고 민규를 만나는 일조차 간섭하려 든다. 민규는 그런 시은을 대신해 실장에게 따지지만, 돌아오는 건 시은의 이별뿐.



힘겨운 삶의 마지막 희망이 시은이었던 민규는 이별통보 앞에서 무너진다. 시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민규는 클럽형에게 공연계약서를 내민다. 가족 같다던 형은 민규의 공연계약서를 보자, 얼굴을 바꾼다. 결국 민규는 공연 출입금지를 당하고 클럽에서 쫓겨난다. 그는 원치 않았지만, 다시 길을 나선다.



영화 <내가 사는 세상>, 내가 살았던 세상


어딘가 낯설지 않은 그들의 모습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20대가 떠올랐다. 사회초년생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내가 열심히만 하면 뭐든 다 될 거라고 생각했다. 벌써 20년도 더 지난 시절의 이야기다. 대학 졸업 후 학원비를 벌기 위해 중학교 영어강사 알바를 시작했다. 오전엔 배우는 학원에, 오후엔 가르치는 학원에 갔다. 수업이 끝나고 밤이 되면 원장의 차를 얻어 타고 이런저런 노하우와 조언을 들으며 퇴근을 했다. 참 따뜻하고 좋은 분을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월급이 연체되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상습적으로 월급을 연체하는 사람이었다. 초년생이었고, 알바였기에 근로계약서 같은 건 없었다. 세금도 내지 않았기에 나의 노동을 증명할 길이 없었다. 3개월 수업을 했지만,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나의 첫 노동에 대한 대가였다.


이후 홍대에 있는 작은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출근하면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밥을 올려놓는 게 막내인 나의 하루 일과 중 첫 업무였다. 그땐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도 시키는 일은 뭐든지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뭐든 스펀지처럼 흡수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5년을 넘기기 어려웠다. 매일매일의 야근으로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번아웃 증후군이란 용어는 몰랐지만, 번아웃이었다.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그럴수록 노동강도는 세졌고 업무는 많아졌다. 사무실 창문이 감옥 창살로 느껴졌고, 일이 넘쳐날 땐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공포가 밀려오는 날도 있었다. 아마도 공황장애의 초기 증상이 아니었을까. 만 5년을 채우고 감옥을 나왔다.


내가 일하던 회사 건물에 민규같은 예술을 하는 청춘들이 세 들어 살았다. 영화 스텝, 영화감독, 전업작가, 인디밴드, 작곡가, 사진작가, 뮤직비디오 감독, 애니메이션 감독 등등. 현장에서 왕성히 활동한다기보다는 아직은 지망생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젊었고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시간과 열정은 넘쳤으나, 시스템을 거부한 그들에게 가난은 치러야 할 대가였다. 그들이 하는 일로 버는 수입은 그들의 삶을 영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택시기사, 퀵배달, 막일 등 몸을 쓰는 알바를 마다하지 않았다. 서로서로 얹혀살기도 하고 대충 살아지기도 했다. 지금 그들은 모두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 또한 시은처럼 디자인 일을 하면서 너무 쉽게 나의 노동을 대가 없이 요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별다른 재료비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의 노동을 얼굴을 아는 사람이면 그냥 한 번쯤 해줄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노동으로 취급했다. 투입된 재화가 없었기에 그렇게 받은 결과물을 그들은 딱 그만큼만 생각했다.


청춘의 삶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나의 20대에 민규의 클럽형과 시은의 실장님은 적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친구들이나 주위의 사람들에게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사례였는지도 모르겠다. 20대 영화 스텝이었던 나의 남편은 6개월 동안의 작업비를 술 한번 얻어먹는 것으로 퉁쳤던 적도 있었으니까.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많구나, 노동, 인권이 존중받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특히 예술 쪽 분야에서는 아직도 도제식 관습으로 열정 페이를 요구하는 곳이 많이 남아있구나. 청춘의 삶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구나.


오히려 그때보다 더 많아졌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현란한 미사여구로 순진한 청년들을 꼬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클럽형과 시은의 실장님도 사회 초년생 시절엔 달랐을 것이다. 삶의 잔인성은 여기에 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에 방패를 둘렀을 것이고 나를 지키기 위해 어리고 약한 타인에게 빨대를 꽂았을 것이다.


소은의 이별통보를 받게 된 민규의 절망감에 나도 울컥 지난 감정이 올라왔다. 마지막 한가닥 희망의 끈이 떨어져 버린 것 같은 절망감. 어떻게 해서든 다시 되돌려야 할 절박함.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돌아설 수도 없는 막막함.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내 아이들이 곧 마주해야 할 세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나도 그 세상의 일원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나도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삶을 이용하고 있진 않았는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논리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흔들려야 청춘이라지만,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예나 지금이나 청춘이 치러야 할 대가는 왜 이렇게 가혹한 것일까. 그 가혹함에 무감해지고 마음을 굳게 닫아야만 우리가 성장하고 어른이 되는 것일까. 이것이 우리 사회만의 어두운 일면인 걸까, 전 지구적으로 인류의 어쩔 수 없는 속성인 걸까.


'내가 철들어간다는 것이 제 한 몸의 평안을 위해 세상에 적당히 길드는 거라면 내 결코 철들지 않겠다'-조국과 청춘 <세새대 청춘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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