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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의 오후 Sep 05. 2019

너의 모든 첫 경험을 응원한다

요즘 챙겨보는 드라마가 있다. JTBC 월화드라마 '열여덟의 순간'

학교를 중심으로 열여덟 살 아이들의 일상과 감정을 느리고 섬세한 호흡으로 풀어가는 드라마다.

주연배우들의 풋풋한 연기와 이미지가 캐릭터와 잘 맞아떨어지면서 그 시절 그 나이의 순수함과 싱그러움을 부러운 마음으로 엿보게 된다. 내가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설레기도 하고,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극 중 부모의 모습에서 현재의 내 모습을 비추어 보기도 한다. 


특히 남주 여주의 알콩달콩한 연애를 보며 현재 진행형인 내 딸아이의 연애를 생각한다. 드라마가 현실과 얼마만큼의 싱크로율을 가지고 있는지는 내가 이미 그 시절과 멀어지기도 했고 요즘 아이들의 정서는 또 달라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부모와 어른들에 대한 생각이나 그들만의 연애방식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것 같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극의 콘셉트에 맞게 더 감성적으로 잘 포장되어 있겠지만, 주인공의 일상을 보며 우리 아이도 저렇게 예쁘게 연애를 하겠지, 저렇게 서로에 대해 고운 마음을 가지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올해 기숙형 남녀공학 고등학교를 진학한 딸애는 얼마 전부터 같은 학교 같은 또래의 남친을 사귀기 시작했다. 학교 학생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아이가 누구인지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고 학부모 모임으로 부모도 서로 알고 있었다. 학기초부터 썸 타는 느낌이 감지되어 알게 모르게 나의 시선을 끌긴 했다. 자기들끼리는 공식적으로 연애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건 그냥 연애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을 뿐, 둘은 알콩달콩 서로를 챙기고, 예쁜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딸아이는 주말에 집에 있을 땐 누가 방해하는 것도 아닌데, 전화기를 들고 아파트 놀이터로 나갔다. 살랑살랑 밤바람을 맞으면서 통화를 하면 기분이 좋다나. 둘만의 밀어를 속삭이는 데 뭔들 안 좋으랴, 둘이 어떤 말들을 주고받을까, 어떤 친구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저녁밥을 먹으며 살짝 물어봤다.


"그 친구에 대해 엄마 아빠는 잘 모르니, 네가 소개 좀 해줘 봐. 어떤 친구야?"

"음... 아빠랑 닮은 점이 많은 거 같아"

"오~ 그래? 어떤 면에서?"

"아빠처럼 감정표현이 많아. 난 걔가 말로 표현할 때 막 오글거려. 내가 엄마 닮았나 봐.ㅎㅎ"

"ㅎㅎㅎ. 그래 의외네. 그렇게 안보이던데..."

"그리고 아빠처럼 몸이 좀 뜨거워"


아빠가 웃으며 발끈한다.

"너 몸이 뜨거운 건 어떻게 알아?"

"아빠! 왜 몰라, 아빠 옆에만 앉아 있어도 아빠가 뜨거운 게 느껴지는 데, 제발 이상한 생각 좀 하지 말고!"

"으이구 당신은! 애들 손잡고 다닌다는 데 그걸 모르겠어?"


어른은 어쩔 수 없는 어른인가 보다. 몸이 뜨겁다는 말에 생각은 벌써 저만치 앞서가고, 누구나 그렇듯 우리 아이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하는 생각들이 잠시 스쳐갔다. 언젠가 '아이들도 성적 욕구가 존재하는 성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부모 성교육이 시작되어한다'던 성교육 강사의 말도 떠올랐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의 경우의 수를 떠올리면서 어떠한 상황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은유 작가는 '존재의 등에 불이 켜지면 사랑이 속삭인다'라고 했다.

자신에게 반짝이는 사람을 만나고 서로의 마음에 불을 밝히면서 느끼게 될 많은 감정의 온도를 지금 한창 경험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내 마음이 이상했다. 우리 아이가 벌써 연애를 하는구나 하는 왠지 모를 기특함도 생기고 상대는 어떤 아이일까, 어떤 면이 서로에게 끌렸을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내 아이가 좋아하는 그 아이가 더 특별하고 예쁘게 느껴졌다. 기회가 되면 맛있는 것도 사주고 싶고, 집으로 초대도 하고 싶고,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었다.


"집에 언제 한번 데려와봐, 같이 밥이라도 먹자. 그래도 우리 딸 남친인데. 부담 갖지 말고"

"엄마, 우리는 어른들이랑 밥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걔네 부모님이 밥 먹자고 하면 나 부담스러울 것 같아"

아빠가 한마디 거든다.

"그냥 편하게 놀러 오라고 해. 너 남친이어서가 아니라, 학교 친구니까"

"싫어. 내 방 보여주기 싫어"

"그래, 너 방 보여주면 도망가겠다.ㅎㅎㅎ"

예상은 했었지만, 단칼에 거절하니 좀 서운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기숙형 학교로 가면서 딸애는 비밀이 많아졌다. 예전엔 미주알고주알 많은 이야기들을 쉴 새 없이 털어놓고 늘 엄마가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아이였는데 이제는 대화를 나눌 시간도 물리적으로 줄어들고 언제부턴가 딸은 노출되어도 안전한 정보만 엄마에게 노출했다. 부모들끼리 친목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입단속을 하는 것 같았다. 또 일상이 분리된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에게 털어놓기엔 피로감이 있는 듯했다. 시시콜콜 뭐든 다 이야기하는 마마걸이 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면서도 왠지 모를 서운함이 마음 한 자락을 붙잡는다. 


큰 아이의 모든 첫 경험은 부모인 나에게도 첫 경험이다. 

많은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게 된다. 때론 의욕이 앞서 설레발을 치기도 하고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되, 부족한 듯 키우자고 다짐하지만, 작은 바람에도 심하게 흔들리고 나의 욕심인지 아이의 욕구인지 헷갈린다. 여전히 부모의 길은 어렵다.


바람이 있다면, 삶의 어느 지점에서건 어려움이 생겼을 때 엄마 아빠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대목에서 나의 부모님을 생각한다. 나의 부모님도 그런 마음이셨을까, 난 부모님이 내 삶에 너무 개입하지 않아서 서운했던 적이 많았다. 당신들의 고단한 삶으로 그저 믿고 맡기셨겠지만, 서툴고 혼란스러울 때 나의 부모도 나를 살뜰히 살피지 못했고 나도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가 언제든 비빌 수 있는 언덕이면 좋겠다고,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내가 그랬듯, 내 아이도 그럴 공산이 크지만 그래도 가끔은 입시다 진로다 재촉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은 부모라고 스스로 어깨를 토닥인다.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 아빠 같은 내공은 죽었다 깨도 못 따라가겠지만, 적어도 드라마 <열여덟의 순간>의 수빈이 엄마처럼 서로 고민을 나누고 아픔을 위로하는 고운 두 애들에게 밑도 끝도 없이 '너네 잤니?'로 관계의 결을 재단해버리는 천박한 어른은 되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열여덟이 인생의 가장 눈부신 순간이라는 것도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관점이겠지.

내 아이에게 지금 이 시기가 인생의 가장 기쁘거나 슬프거나 정말 눈부시게 행복하거나 혹은 고통스러운 순간이더라도 나는 아이가 지금 제 나이의 삶을 충분히 경험하고 누렸으면 좋겠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삶만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목적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좋겠다.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 아빠가 엘리오에게 해준 이야기를 대신 전하고 싶다.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하려고 마음을 잔뜩 떼어냈다간
서른쯤 되었을 땐 남는 게 없단다. 그럼 새로운 연인에게 내어줄 게 없지.
그런데 아프기 싫어서 그 모든 감정을 버리겠다고?
너무 큰 낭비지.

나도 기회는 있었지만 너희와 같은 감정은 못 가졌어. 늘 뭔가가 뒤에서 붙잡았지.
앞을 막아서기도 하고. 어떻게 살든 네 소관이지만 이것만 명심하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단 한 번 주어진단다.
그런데...  너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닳아 해지고 몸도 그렇게 되지.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는 시점이 오고
다가오는 이들은 훨씬 적어진단다.
지금의 그 슬픔, 그 괴로움, 모두 간직하렴. 네가 느꼈던 기쁨과 함께.

-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


'딸아, 너의 모든 첫 경험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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