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 블렁쉬는 불어로 하얀 밤이다. 저녁 18시 부터 새벽 5시까지 밤새워 문화 축제를 즐기자는 취지이다.
올해는 안타깝게도 지하철이 새벽까지 운행하지도 않았고 무료도 아니었다. 대신 파리 시청은 자전거를 무료로 탈 수 있도록 했다.
이 행사는 2002년 처음 시작했다. 첫해에 50만 명이 참여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전시, 공연, 미술관 무료 개관은 물론 수영장도 무료 개관했기 때문이다.
나는 뉴스와 행사 사이트를 통해 미리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16구에 위치한 파리 패션 박물관, 뮤제 갈리에라 Musée Galliera 에 가기로 정했다.
프로그램을 확인하다 보니 많은 미술관이 무료입장이 가능한데 내가 일주일 전에 14유로 내고 다녀온 피노 컬렉션도 포함이 돼있었다.
"아! 이럴 줄 알았음 일주일 더 기다릴걸...
아니다 이런 날 가면 시람들이 치여서 정신없을 거야.
게다가 부분적으로만 오픈하잖아"
나 혼자 스스로 위로했다.
16구에는 기메 동양 미술관, 팔레 드 도쿄, 현대 미술관, 파리 패션 미술관이 모여있다. 저 멀리 보니 긴 줄이 보인다. 비도 오는데 다들 부지런하다.
가방 검사를 받고 입장했더니 빈자리가 없어 한 시간 동안 서서 현대 무용 공연을 봐야 했다. 공연 관계자는 공연 전에 '비가 오면 아티스트 보호 차원에서 바로 공연이 중단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날 딱 1회 공연인데 비가 안 내리길 기도했다.
네 명의 남자가 패션쇼를 하듯 공연을 시작한다. 군인 같은 모습도 있고 락커의 모습도 버였다가 한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야릇해지더니 갑자기 마이크에 대고 "나는 퀴어다. 나는 레즈비언이다" 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아 그래서 공연 제목이 `치마들 Les jupes` 이었구나"
그때서야 깨달았다. 프랑스는 법적으로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다. 동성애자들의 결혼도 입양도 모두. 그러니 현실적으로는 동성애 혐오가 심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얼마 전에도 트랜스 포비 (=트랜스 젠터 혐오)에 대한 빈대 시위가 파리에서 크게 열렸었다.
또 파리 시청들 앞에 무지개색 천들이 걸려있다. 얼마 전 동성애의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의미가 있는 공연이긴 한데.. 동성애에 대해 별 거부감이 없는 나도 이날 공연은 보기가 힘들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야하고 야릇하고 보기 불편하게 표현해야 했을까 싶었다. 나이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애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나도 결국 끝까지 보지는 못하고 다음 공연을 보기 위해 자리를 떴다.
두 번째 공연장은 3구 마레지역, 우리 회사 건물 옆에 있는 까호 드 텀플 Carreaux du Temple 이다. 이곳은 과거 의류 시장이었던 곳으로 현재는 전시회장으로 사용되는 공간이다. 패션 위크 때 패션쇼로 스타들이 이곳에 방문하면 우리가 일을 못할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곳이도 하다.
이 주변으로 유명한 편집숍들이 많고, 파리에서 가장 오랜 된 전통 시장이 있기도 하다. 옆에 3구 시청이 있는데 얼마 전에는 골동품 장이 열리기도 했다.
그냥 3구는 늘 수많은 관광객으로 시끄러운 곳이다.
이곳 역시 긴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곳은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총 3회 공연이 준비되어 있었다.
클래식 음악 + 현대 미술 + 펜싱
처음 5분 간은 호기심 있게 보았다.
"대체 이 3가지를 어떻게 엮으려고 그러지?"
갑자기 펜싱 경기도 펼쳐졌다
무용수들은 중 2명의 바이올리니스트
프랑스 해외 영토 구아들룹 출신의 연주자
안무가는 프랑스 해외 영토 기아나 출신
아주 알찬 공연이었다.
무용수들이 전문가들인지 취미반인지 알 수 없는 실력이 있지만 자연스럽고 실수도 너그러이 이해되는 편안한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