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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덤덤 Apr 23. 2020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기일 5주년에 시작하는 애도

할아버지 사랑해요. 지금 어떻게 지내세요.



암세포가 아버지의 온몸에 전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첫째의 돌잔치 후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징후는 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있었다. 아버지의 체중이 급격히 줄었고, 다리가 퉁퉁 붓고 정강이에 피딱지가 생기기도 했다. 결혼식에서 아버지를 처음 본 사람들이 건강을 염려할 정도였다. 평소에 식사를 잘 챙겨 드시지 않고, 평생 술 담배를 끊지 못하셨지만, 외적으로 다른 증상은 없어 암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상황이 심각해진 건, 결혼 후 1년 6개월, 첫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너네 아빠가 지금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지를 못하겠다고, 나더러 와서 병원에 좀 데려다 달란다."


고모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허리 통증으로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아버지는 직감적으로 병원 비용이 많이 들 거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다.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고, 병원에서 검사도 받지 않은 채,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셨다. 평생을 일용직 노동자로 살아온 아버지는 모아둔 돈도, 일을 할 수 있는 건강도 없었다. 결혼 한 아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하시면서도 생활비가 떨어지면 전화를 걸어서 말씀하시고는 했다.


"지금 5만 원만 부쳐줄 수 있니? 면목이 없다."


당시 비영리단체에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로서도 넉넉하게 드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두 달에 한 번, 때로는 한 달에 한 번, 그때그때 요청하시는 금액만 이체해 드릴 뿐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통장 정리를 하셨는데, 내 이름으로 5만 원, 10만 원 이체된 내역만 있고 다른 거래내역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그제야 전화기를 붙들고 아들에게 전화를 할까 말까 수없이 망설이셨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화기로 전해지던 아버지의 한숨과, 그 한숨에 섞여 있던 부끄러움은 이제는 내 소유가 되었다.




손녀를 끔찍이 좋아하셨다. 하루 종일 손녀의 사진만 보면서 지낸다 하셨다. 인터넷 기사를 읽고 육아 정보를 며느리에게 공유하셨고, 하루에 세 번 아내에게 전화하셔서 엄마 젖 먹고 잠만 자는 손녀가 뭘 하고 있는지 물으셨다. 전화를 거실 때마다 미안해하시면서 금세 끊으셨다고 하는데, 아마 하루에 수십 번 더 전화해 손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으셨던 것 같다. 손녀에게 동요를 불러주시려고 가사를 다 외우기도 하셨다. 할아버지가 손동작을 하면서 동요를 불러주시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첫째의 사진이 남아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전까지 아버지가 그렇게 환한 웃음을 지으시는 걸 본 적이 없다. 꿈이 있다면 본인은 뒷짐을 진 채로, 아장아장 걷는 손녀와 함께 길을 걸어보는 거라고 하셨다. 안타깝지만 그 소박한 바람을 이루지는 못하셨다.


직계가족끼리 소박하게 기념한 첫째의 돌잔치 때는 그래도 조금 나아지시는 것 같았는데, 그때 찍은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고 말았다. 아쉽지만 자신을 끔찍이 아낀 할아버지의 기억이 첫째에게는 없다. 사진을 보면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너를 아주 많이 사랑하셨다고, 기뻐하셨다고 알려줄 뿐이었다. 아직은 어려서 죽음이 무엇인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지만, 자신을 아끼던 누군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볼 뿐이다. 현재는 개념이 없어서 이런 우스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본인 돌잔치 사진을 보다가)
"이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건 신촌 할머니..."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보며)
"이건 신촌 할머니 남편."

(동생들 물어 봄)

"할아버지 돌아가셨어?"

"응 암이 넘쳐나셨거든."




아버지는 봄꽃들이 화려하게 봄의 시작을 알릴 때 병원에 입원하셨고, 벚꽃나무가 바람에 잎을 쏟아내며 봄을 흩날릴 때 돌아가셨다. 어느새 5년이 흘렀다. 납골당 계약이 만료됐고, 새로 계약을 하기 위해 가족이 오랜만에 아버지를 찾았다. 삐뚤빼뚤 글씨를 쓸 수 있게 된 첫째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지금 어떻게 지내세요."


나도 묻고 싶다.


"아버지, 잘 지내시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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