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피스토 Oct 06. 2021

시가 설득하는 법

눈싸움-복효근


Photo by DDP on Unsplash


눈싸움

-복효근

 

뽀드득 눈을 뭉쳐

총알 대신

 

던지면 열에 아홉은 빗나가고

어쩌다가 맞으면

 

불꽃 대신 퍽하고 눈꽃이

눈꽃이 터져요.

 

피 대신 땀이 송글송글

눈물 대신 웃음이 터지는

 

자꾸만 하고 싶은 싸움

눈싸움

 

저 이스라엘에도 팔레스타인에도 눈이 내려서

시리아에도 IS에도 눈이 내려서

 

싸워야 한다면

세상 모든 싸움이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는 역사적으로 어려운 시절에 빛을 발했습니다. 시는 시대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고, 시대에 희생된 이들을 위로했지요. 아마도 시만이 지닌 반어와 풍자의 미학이 그 어떤 언어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복효근 시인의 <눈싸움>은 1996년 펴낸 시집 운동장 편지에 수록된 시입니다. 이른바 ‘청소년 시집’입니다. 시 <눈싸움>은 청소년의 눈으로 바라본 ‘전쟁’을 이야기한 시입니다. ‘싸움’이란 어떤 형식이라도 즐겁지 않습니다. 싸움은 이기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이기면 누군가는 지게 마련입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를 상처내야 합니다. 주먹다짐은 말할 것도 없고, 말싸움도 마찬가지지요. 나라와 나라 간의 싸움 역시 한쪽이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할 정도로 파괴되어야 끝이 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처 없는 승자는 없습니다. 승리를 위해서는 승자의 희생도 담보해야 합니다. 결국 서로의 상처만 확인하는 승자 없는 싸움인 셈이지요. 누가 얼마나 덜 다쳤는지가 승패를 결정할 뿐입니다. 

복효근 시인이 청소년의 눈을 빌려 바라본 ‘싸움’과 ‘전쟁’이란 어떤 것일까요? 시인은 오히려 세상에 싸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화해의 손짓은 고사하고 말이지요. 그러나 시인이 말하는 싸움은 ‘눈싸움’입니다. “총알 대신” “뽀드득 눈을 뭉쳐” 싸웁니다. 상대에게 눈을 맞추면 “불꽃” 대신 “눈꽃”이 퍽 하고 터집니다. 그 눈꽃에, 던진 사람도 맞은 사람도 웃음이 터지지요. “피 대신 땀이 송글송글” 나고, “눈물 대신 웃음이 나는” 눈싸움. 


시인은 희망합니다. “저 이스라엘에도 팔레스타인에도 눈이 내”리기를 말이지요. “싸워야 한다면/세상 모든 싸움이 이런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노래합니다. 이런 싸움이라면 “자꾸만 하고 싶은 싸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총알의 불꽃 대신 눈꽃이 터지는 장면은 이 시의 절정입니다. 아름다운 반어(反語)랄까요? 반어법이란 겉과 속이 다른 표현을 말합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에게 “참, 잘했다”고 말하여 잘못을 깨닫게 하는 표현법입니다. 겉과 속을 달리하여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지요. 반면 역설법은 모순적인 표현으로 의미를 드러내는 수사법입니다. 유치환의 시 <깃발>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아우성은 소리가 없을 수 없지요. 깃발의 펄럭임을 극대화한 표현입니다. 


복효근 시인의 <눈싸움>에서는 반어와 역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시에서는 총싸움 대신 눈싸움을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무리 맞아도 죽음 대신 웃음만 만발하니까요. 눈싸움에는 평화가 있으니까요. “제발 전쟁을 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시가 아닙니다. “제발 싸워주세요. 눈싸움으로 말이지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시입니다. 시는 이렇게 서정적이면서도 반어적인 표현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힘을 지닌 매력적인 예술입니다. “이스라엘에도” “눈이 내”린다면 그들은 눈싸움을 하는 시늉이라도 할까요? 그러나 중동국가에 눈이 내릴 리 만무하니, 시인의 바람이 더욱 역설적으로 들릴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바람이 실현되길 바라는 것입니다. 역설의 묘미가 눈꽃처럼 터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 속 상상의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