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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Apr 11. 2021

대학은 보내고 싶다

앞으로 10년 더, 가능하다면 더 오래

“우리 아이 이제 대학교 보내요. 축하해주세요!”

“정말 축하드려요!”

“너무 부럽습니다ㅠㅠ”

“저희 애는 곧 고등학교 갈 나이가 되는데 조마조마하네요.”

“대학원에도 꼭 보내시길 바랄게요!”


인구의 80%가 대학에 간다는 나라에서 대학 보내는 걸 저렇게 축하한다고?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여기서 아이를 고양이로 바꾸면 바로 이해가 갈 것이다. 애묘인들은 ‘대학은 보내고 싶다’하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내 고양이가 20년은 살았으면 한다는 뜻이다. 집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15년이라고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빨리 아이들을 무지개 다리 너머로 보내는 집사들이 많다. 고양이는 아픈 것을 잘 숨기는 습성을 가지고 있고, 개보다는 약이나 치료가 대중적이지 않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로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빨리 아이를 보내는 집사들의 글을 보며 내 아이가 제발 무사히 대학 갈 때까지 살아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 고양이들은 매일 약을 두 종류 이상 먹어야 하고 한 달에 두세 번 병원에 가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생활 리듬이 불규칙한 내가 규칙적으로 고양이 약을 먹이는 것부터가 어렵다.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병원은 손님이 많아 갈 때마다 기본적으로 1시간 가까이 대기한다. 진료 시간과 주차, 이동 시간을 합치면 두 시간이 훌쩍이다. 진료 시간도 짧은 병원인데, 내 일과 진료 시간이 맞지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월요일은 아예 병원 가는 날로 정하고 책방 문도 닫고 글쓰기 수업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쉬는 날이 없는 셈이라 요즘은 화요일에도 문을 닫는다. 


문을 닫는 날은 하루 종일 고양이들과 함께 있으면서 컨디션을 관찰한다. 너무 많이 자면 깨워서 놀게 하고, 털을 빗기고 쓰다듬으면서 털 결이 나빠지지는 않았는지, 더러운 곳은 없는지 살핀다. 매주 몸무게를 재고 기록한다. 체중이 빠진 것 같으면 사료를 갈아서 주사기로 조금씩 먹여 본다. 억지로 먹이지는 않는데, 보통은 색다른지 잘 받아먹는 편이다. 체중이 너무 떨어지면 나중에 병이 왔을 때 치료를 견뎌낼 힘이 없기에 되도록 지금 체중을 유지시키려 노력한다. 


수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일이 바빠 유심히 보지 못하지만, 글쓰기 수업에 오는 학생들이 내 대신 관찰을 해주기도 한다. 토했다거나, 눈곱이 붙었다거나, 똥꼬에 똥이 묻어 있다거나, 화장실에 갔다거나, 밥을 먹었다거나, 잘 논다거나. 사소한 것까지 다 얘기해주는 광팬들이 도움이 된다. 예전에는 너무 고양이 얘기를 해서 귀찮았는데, 랏샤의 죽음 뒤로는 사소한 것도 귀 기울여 듣게 된다. 대신 고양이를 귀찮게 하거나 나 몰래 간식을 주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다시는 허망하게 잃고 싶지 않기에 단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말한다. 


사실 힘들다. 나를 좀 더 돌보고 싶고, 가족과 친구,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싶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 말고도 챙겨주는 사람이 많을 거고, 나는 남편이 돌봐주니까 괜찮다. 고양이는 나밖에 돌볼 사람이 없다. 고양이에게는 내가 전부다.


대학에 보내고 싶다. 80년대 시골에서는 소를 팔아 대학에 보낸다고 대학을 ‘우골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네 마리 고양이들이 대학에 가려면 나는 책을 많이 팔아야 될 테니 ‘서골탑’이라 부르겠다. 내 등골을 빼먹는 녀석들이니 ‘등골탑’도 괜찮겠다. 어떻게 해서든 대학만은 보내보고 싶다. 이왕이면 대학원도. 


그래서 더 열심히 살게 된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능력을 키우고 인정받고 싶다. 그래야 내 아이들을 더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양이를 키운 10년 동안 나는 너무도 나은 사람이 되었다. 책방을 열었고, 글쓰기 교사로 인정받고 있으며, 책도 냈고, 지역 사회를 위한 활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기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10년 더,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오래 고양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나는 또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다. 


얼마 전 마당에 새 커플이 집을 둘러보고 갔다. 예전 흰둥이를 꼭 닮은 온 몸이 하얀 녀석이 다녀가더니, 조금 있다 여자 친구로 보이는 고등어를 데리고 다시 와서는 고양이 집 냄새를 꼼꼼하게 맡고 밥을 먹고 갔다. 어쩌면 봄이 되면 그 커플이 새끼들을 끌고 마당으로 올 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또 그들을 돌보게 될 것이고, 많이 웃고 또 가끔씩은 울게 될 것이다. 그래도 좋다. 내 책방이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방이 되길, 내 마당이 힘든 묘생에 비치는 한줄기 따스한 햇살이 되길 바라면서 나는 책을 팔고 그 돈으로 또 새 사료를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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