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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티피컬레이디 Oct 24. 2022

카산드라 증후군

정신과 전문의 및 상담사가 판단할 수 있는 특징들

 뉴로다이버스 커플의 상담은 일반적인 커플 상담으로는 개선될 수 없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형인들의 감정 교류와 갈등 해결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커플 상담은 한 쪽 당사자가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뉴로다이버스 커플에게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습니다. 자폐 스펙트럼의 특징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들의 다른 의사소통 방식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정형인 배우자가 겪는 어려움, 아스퍼거 당사자가 필요한 도움과 이해 등을 종합적으로 알고 있는 전문가만이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수많은 일반적인 커플 상담에서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였을 뿐더러 오히려 더 힘겨운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뉴로다이버스 커플 상담에 전문화된 전문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뉴로다이버스 커플 전문 상담에서도 상담사가 정확히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인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희망이 느껴지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오늘 글은 미국 뉴로다이버스 커플 전문 상담사인 사라 스웬슨(Sarah Swenson)이 Good Therapy라는 사이트에 기고한 글 중의 일부를 발췌, 번역한 내용을 토대로 전문가들의 시각으로 본 뉴로 다이버스 커플의 정형인 배우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참고 원문https://www.goodtherapy.org/blog/identifying-the-partner-of-someone-who-may-be-autistic-theyre-usually-misdiagnosed-0205205)


 그녀는 이 글에서 전문가들이 상담에서 뉴로다이버스커플의 정형인 배우자를 알아차릴 수 있는 특징들을 잘 짚어주고 있을 뿐더러 그럴 경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특징들은 타인에게 인정 받지 못하는 결혼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더더욱 고립되고 우울, 불안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정형인 배우자의 상태와 문제들을 잘 드러내 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녀는 뉴로다이버스 커플의 정형인 배우자 대부분이 복합적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Complex-PTSD) 를 겪고 있는데, 스스로는 트라우마로 인한 외상을 특정하여 식별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는 그들이 의도된 것은 아니나 지속적인 트라우마 상태를 만들어내는 관계 속에 계속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아스피 배우자가 정형인 배우자를 해하거나 학대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이 정형인 배우자를 혼란스럽게 한다고 하죠. 정형인 배우자는 그녀의 남편(대부분 아스퍼거 남편과 정형인 부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글에서도 정형인은 부인,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사람은 남편으로 설명이 됩니다)을 여전히 사랑하거나 적어도 사랑했고, 상담사에게는 좋은 남자라고 (적어도 나쁜 남자는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형인 부인은 오랜 시간동안, 갈등을 회피하는 것을 생존 전략으로 택해왔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최소화하는 법을 익혀왔을테지만 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 부분은 뉴로다이버스 커플 관계에서 정형인 배우자가 서서히 스스로를 잃어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데요. 저에게 처음 남편의 아스퍼거에 대해 언급을 했던 상담사도 이 부분을 지적하며 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 관계에서 떠날 것을 권했었습니다. 


 사라 스웬슨은 이러한 정형인 배우자들 대부분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예전의 내 모습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어요. 삶의 기쁨이 줄어 들었고, 친구들도 잃었습니다. 제게 기쁨을 주었던 것들에 대한 흥미를 유지할 수 없어요.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매우 외롭다는 것이에요.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아 두렵습니다." 


 정형인 배우자가 상담을 위해 작성한 서류를 보면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경우는 아스피 남편이 직업적으로 성공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경쟁이 치열하고 존경도 많이 받는 분야일 가능성이 크죠. 남편은 지적으로 뛰어나고,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고, 외부에서 보기에는 완벽한 커플로 보이는 상황인 것이지요. 정형인 배우자는 이런 경우 흔히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저도 완벽한 결혼 생활은 없고 모든 관계마다 나름의 문제가 있는 건 아라고 있어요. 저를 생각하는 친한 친구들은 자기들의 결혼 생활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면서 저를 위로하려고 해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제가 겪는 외로움이나 어려움은 너무나 다른 종류이고 설명하기도 어렵고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정형인 배우자가 참을성이 없거나, 자기 위주이거나,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들릴 수 있는데, 이는 보통 그녀가 그녀의 어려움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문자게 무엇인지를 짚어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정형인 배우자는 마음 속으로는 이런 문제들의 원인이 남편이 그녀를 대하는 방식, 그리고 남편 자체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담자의 남편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정신과의사/상담사는 오히려 정형인 배우자가 나르시시즘적인 면모를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라 스웬슨은 뉴로다이버스 커플일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 그가 좋은 남자임에도 어째서인지 직장을 계속 잘 다니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스웬슨은 이런 경우 보통 다음과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아스피 배우자는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재능도 있지만 장기적인 실직상태로 인한 경제적 압력은 정형인 배우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갑니다. 아내는 홀로 가정의 수입을 책임지고, 아이들을 감독하고 돌봅니다. 그녀는 이러한 내부적인 가족의 역기능을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는 숨깁니다. 기댈 곳이 아무데도 없는 것이죠. 수치심도 느낍니다. 완전히 지치게 되죠. 그녀는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죽을 것만 같은 공포에 시달립니다."


 사라 스웬슨은 이런 경우 의사/상담사는 정형인 배우자에게 우울증 진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상담 횟수를 거듭할수록 그녀가 남편이 무엇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을 보게 된다고 합니다.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는 것부터 ("제가 심지어 그림 도표를 만들어서 주방 카운터에 붙여 놓았다구요!") 그녀가 화가 났을 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방식까지 말이죠 ("그 사람은 늘 모든 것을 고치라고 하고 내가 울어도 알아채지조차 못해요!"). 그런데 또 다음 상담 때에는 놀랍게도 남편에 대한 연민에 가득차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정형인 아내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남편은 어쩌면 최선을 다 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남편도 사람인데 제가 너무 완벽한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저는 왜 항상 남편에게 불만이고, 남편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런 경우 정신과의사/상담사는 그녀가 경계성 인격장애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나아가, 정형인 배우자가 이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죽기살기로 살아가야 해요!"라고 소리치며 남편과의 경험을 복잡하게 설명할 때, 정신과의사/상담사는 그녀가 왜 떠나지 못하는지를 의아해하며 코디펜던시 성향을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사라 스웬슨은 위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여성을 내담하는 경우, 뉴로다이버스 커플 관계를 의심해 보라고 이야기 합니다. 남편에게 자폐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자폐가 커플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자폐가 있는 남성과 결혼한 경우, 정형인 배우자가 정형적으로 보이는 심적 상태라는 것이지요. 물론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더 자세한 상담이나 검사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카산드라 증후군에 괴로워하는 정형인 아내의 특징은 우울증, 코디펜던시 성향, 트라우마,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고 매우 혼란스러워 한다는 점에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사라 스웬슨의 말처럼 제 개인적으로도 정확히 이러한 증상들을 그때 그때 정도 차이, 발현 양상의 차이만 있을 뿐 장기적으로 겪었습니다. 제게 처음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던 상담사도 이런 부분을 보고 남편의 자폐에 대해서 알려주었던 것이지요. 


 카산드라 증후군의 가장 힘든 점은 (특히 아스퍼거 남편의 자폐를 모르는 경우에) 분명하게 겪고 있는 어려움이 정확히 설명이 안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공감이나 이해를 받을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뉴로다이버스커플의 정형인 배우자이시라면 본인이 느끼는 어려움이 이유가 있는 문제이고, 실제로 존재하고, 정말 힘든 문제라는 것을 인정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그 원인인 자폐스펙트럼과 그것이 커플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새롭게 관계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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