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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로티피컬레이디 Oct 22. 2022

뉴로다이버스 커플/부부의 상담

배우자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모를 때, 일반적인 부부상담 왜 독이 될까?

배우자 중 한 사람이 자폐스펙트럼에 있는 커플, 뉴로다이버스 커플의 경우 매일 갈등에 부딪힙니다. 뇌구조가 다르니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대화가 안 되니 이를 해결할 수도 없고 문제는 점점 악화되기 마련이죠. 뉴로다이버스 커플이라면 커플/부부 상담을 고려하거나 받아 본 경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뉴로다이버스 커플의 경우, 일반적인 부부상담은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독이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보통 부부/커플 상담을 위해서는 부부/커플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상담사를 찾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뉴로다이버스 커플과 같은 특수한 경우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상담사가 자폐스펙트럼, 특히 고기능 자폐스펙트럼 즉 아스퍼거증후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첫 번째 문제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아스퍼거증후군에 대해서 알고 있더라도 뉴로다이버시티가 커플이나 부부관계에서 야기하는 문제점과 해결책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두 번째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정형인-아스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양상과 원인, 그에 따른 해결방법은 정형인-정형인 사이의 관계에서의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폐스펙트럼에 있는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 학생과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뉴로다이버시티는 커플/부부관계에서 뉴로다이버시티와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오늘 글에서는 첫 번째 문제 상황, 즉, 뉴로다이버시티를 모르고 정형인들 간의 관계를 기준으로 하는 부부상담이 어떻게 독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일반적인 정형인-정형인 커플/부부의 경우에도, 서로 감정이 상하고 갈등이 발생하는 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관계가 지속되는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갈등 상황은 상호간의 대화를 통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서로의 다친 감정을 알아주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 진심어린 사과를 함으로써 해소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갈등 상황이 원인이 된 부분에 대해서 두 사람 모두가 감정이 상하거나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데에는 별다른 의심이 없을 것이고, 그것이 해소되는 과정에서도 두 사람 모두 서로 '통함'으로써 용서하고 정서적 응어리가 풀어지는 과정을 거칩니다. 


 하지만 정형인-아스피 커플/부부의 경우, 갈등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정형인과 아스피는 특정 상황에 대해 전혀 다르게 느끼거나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형적으로 두 사람은 정서적 교류, 친밀감을 필요로 하는 수준이 매우 다른 것이 갈등이 원인이 될 수 있는데요. 정형인 배우자가 커플/부부라는 친밀한 인간관계에서 주고 받기를 원하는 정서적 교류, 이해, 친밀함, 애정은 아스피 배우자에게는 사실상 필요하지 않거나, 다르게 발달된 뇌구조의 특성상, 너무 과하거나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는 특별히 갈등이 발생할 상황이 아님에도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정형인 배우자가 일상적인 문제(하지만 아스피 배우자의 관심사는 아님)를 아스피 배우자와 논의하려고 하거나, 대화 중 공감을 얻으려고 하거나, 애정 표현을 주고 받고자 하는 경우에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아스피 배우자는 이러한 상황들에서 이에 필요한 상호적 반응이나 적절한 답변을 하지 못하고, 예민한 감각문제로 신체접촉을 거부하거나, 눈빛을 피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정형인 배우자는 이러한 아스피 배우자의 태도에서 자신의 요구와 필요가 무시되고 거부 당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정형인 배우자는 당연히 슬픔과 실망, 나아가 이것이 반복되면 분노와 미움 등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를 상대방에게 표현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강한 감정들이 표현될 경우, 상황은 더더욱 악화됩니다.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처리해야 할지 모르는 아스피 배우자는 더더욱 교류를 거부하고 셧다운 혹은 멜트다운 상태가 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물론 아스피 배우자 역시 이러한 과정이 쉽지 않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어 기제로 교류의 문을 닫아 버리고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가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정형인 배우자는 훨씬 더 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이 발생한 상황에서 정형인들은 당연히 대화와 교류를 통해 이를 해소하고자 하지만 그러한 시도를 하면 할수록 아스피 배우자는 더더욱 강하게 교류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죠. 애초부터 원인을 알 수 없이 무시되고 거부 당한 것으로 인한 슬픔, 나아가 그것을 이해받고자 설명을 함에도 불구하고 차갑게 소통을 거부하는 상대로 인한 답답함과 좌절감.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매번 반복됨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분노와 미움. 이러한 관계는 기본적으로 교류와 이해를 통해 소통하고 애정을 확인하고자 하는 정형인 배우자를 점점 해결되지 못한 감정적 문제들의 누적으로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합니다. 아스피 배우자는 교류를 피하고 차단해 버림으로써 스스로의 평정심을 찾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상태를 확보했지만, 정형인 배우자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충족되지 않고, 점점 더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진정한 소통이 좌절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아스피 배우자도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정형인 배우자가 원하는 부분들이 너무나 부담스럽고 과하게 느껴지고, 상대방이 부당한 요구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부분들에서 정형인 배우자가 너무 많은 간섭과 통제를 하려고 한다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자신의 기준에서는 이 관계에 충실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는데 정형인 배우자가 너무 많은 불만을 표시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하지만 감정적 교류가 잘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나 해결되지 않은 갈등 상황에 대한 불만은 없습니다.


 상담사를 찾게 될 때 쯤, 정형인 배우자는 미치기 직전입니다. 자신의 정서적 필요, 욕구들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쌓이고 쌓여 해결되지 않아 곪아 터지기 직전의 문제 덩어리를 안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 아스피 배우자는 그때 그때 셧다운이나 멜트다운을 통해 자신의 바운더리를 지키거나 어려움을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를 했습니다. 상대방이 괴로워 하는 것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도 잘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훨씬 침착한 모습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상담사에게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정형인 배우자는 처리되지 못한 감정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내며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울음을 터뜨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 아스피 배우자는 아무런 고의도 없었으며 자신은 그저 이성적으로 반응했을 뿐이라고 담담히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아스퍼거증후군과 그것이 커플/부부에게 미치는 영향을 모르는 상담사는 감정이 격앙되어 있느 정형인 배우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경험한 일이지만, 수많은 부부상담에서 제가 좀 더 침착하게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조언을 너무나 많이 들었습니다. 부부 상담 전문가들은 저희 커플을 보고, 무딘 남편도 좀 더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더 노력을 하거나 변화해야 할 사람은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는 저라고 충고했습니다. 상황을 들어 보면 남편은 갈등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자리를 피하거나 입을 다문 것 뿐이고, 제 경우 울음을 터뜨리거나 화를 내거나 며칠동안 이런 감정이 해소되지 않는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변화해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정형인-정형인 관계를 보는 렌즈를 통해 본다면 위와 같은 조언들이 정답이 될 수도 있겠지요. 정형인이라면 그 관계를 이어갈 의지가 없는 단계가 아닌 한, 관계 개선을 위해 자연스럽게 상대방과 어느정도 상호적인 교류를 하게 되고 그것이 싸움과 다툼일지언정 주고 받는 것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경우 자연스럽게 감정 해소가 되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시원하게 울거나 화를 내고 나면 마음이 풀리기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여기서 '시원하게'라는 것은 그러한 감정적 분출이 있을 때 감정이 충분히 표출이 되고 이러한 표출이 상대방에게도 영향을 미쳐 상응하는 피드백이 있어서 화해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부부싸움 후에 배우자가 울음을 터뜨리면 상대방이 이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어 사과를 하거나, 안아주거나, 위로가 되는 말들을 건네면 갈등 상황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반적 관계에서 당연히 존재하는 상호작용이 전제가 될 경우, 그리고 그런 시각으로 볼 때, 정형인 배우자의 분출되는 감정 표현들은 성숙하게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며 통제할 수 있는 성인이 하는 정도를 넘어선 너무 과한 것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배우자를 대하는 정형인 배우자는 전혀 다른 상황에 있습니다. 다툼이 생겨 정형인 배우자가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 아스피 배우자는 위에서 언급한 반응들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리를 피하거나 갑자기 버럭 화를 낼 수도 있습니다. 정형인 배우자의 감정 표현을 이해하기 어렵고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셧다운 상태가 되는 경우도 있고, 혹은 울음 소리나 그 때 처한 상황 등에서 감각 과부화로 견디기 어렵게 되면 멜트다운 상태가 되어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 수 있는 것이지요. 뉴로 다이버스 커플의 정형인 배우자는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스피 배우자 때문에 섭섭할 일이 많은데, 그 섭섭한 감정을 상대가 전혀 알아주거나 받아주지 않으니 쌓이고 쌓인 화는 정형인 배우자를 분노와 슬픔, 예민함 등등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 채우게 될 수 있습니다. 


 이미 이렇게 벼랑 끝에 몰려있는 것과 같은 상태에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아 간 부부상담에서 듣는 조언이 정형인 배우자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라면, 이는 정형인 배우자에게는 그야말로 독이 됩니다. 사실 정형인 배우자는 이미 더 노력할 기운도 사랑의 에너지도 별로 남아있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스피 배우자는 그렇지 않아도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역시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는 믿음을 굳히게 되고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해 나가야 하는 뉴로다이버스 커플에게 그럴 기회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생각해 보면 남편의 아스퍼거증후군을 알지 못하고, 찾아갔던 일반적인 부부상담들에서 들었던 모든 조언들은 저를 더 지치고 힘들게 만든 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과 돈, 에너지를 쏟아 부은 뒤 이렇게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관계는 더더욱 나빠지고 내 마음은 더 공허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우울하고 불안해졌습니다. 상담사는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제게 불안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추가 상담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공감능력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성실하고 한 눈도 팔지 않고 집안일도 적절히 잘 도와주고 있는 남편은 아내의 이야기를 조금만 더 귀기울여 들어준다면 좋을 것 같다는 정도의 조언만을 들었습니다. 남편은 당연히 상담사 앞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이야기 했지만, 상담사는 남편이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말을 '적절한 아이컨택을 하면서 실제로 그 말의 뜻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피드백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알아 들을 수 없다는 점을 알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아스퍼거증후군에 대해서 처음 제게 이야기를 해 준 부부상담사는 제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그 분은 아스퍼거증후군과 그것이 커플사이에 발생시키는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제 이야기만 듣고도 남편의 아스퍼거증후군을 문제원인으로 짚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이를 개선시키기 위해 커플 상담을 이끌어갈 지식도 없고, 그러한 훈련을 받지 못했으며, 이는 경험이 있는 상담사만이 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덧붙여 제게 일반적인 부부상담은 이제 더 이상 찾지 않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돈을 쓰는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제게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 커플에게 해롭다고 말이지요. 


 제가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알게 된지 벌써 5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네요. 5년 전에는 찾기 어려웠던 뉴로다이버스 커플에 대한 전문적 도움과 관련 자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저희 부부도 몇 번 뉴로다이버스 커플 전문 상담사와 상담을 받기도 했고, 미국의 AANE라는 전문 기관에서 주관하는 커플 그룹 모임이나 온라인 코스 등도 수강을 했습니다. AANE는 기존 상담사들 중 관심 있는 사람들이 뉴로다이버스 커플 상담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하는 코스도 개발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분명 전보다 제 배우자와 뉴로다이버스 관계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그 안에서 서로 조금이나마 원만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배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뉴로다이버시티는 생소한 주제입니다. 특히 아직까지 자폐스펙트럼을 둘러싼 수많은 논의와 연구들은 자폐스펙트럼 자체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많은 노력과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자폐 진단을 받게 되면서 '자폐 아동'을 양육하는 것에 대한 논의 또한 많은데, 이 연장선상에서 자폐아동의 부모에 대한 논의들도 꽤 활발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성인 아스퍼거인, 특히 본인의 자폐를 모르고 성인이 되어 결혼까지 한 경우 그 커플 속에서 정형인인 배우자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국내외를 불문하고 충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스피 배우자/파트너 혹은 아스피 가족구성원과 함께 살아가는 정형인들을 위한 단체인 'The Neurotypical'에서는 'SALVE (Support, Assistance, Listening, Validation, Education 지지, 지원, 경청, 인정, 교육)'을 정형인들을 위한 치유책이라 권장합니다. 그래서 정형인 배우자들의 서포트 그룹을 통해 서로의 고충을 경청하고, 인정해 주고, 지지하며, 필요한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말이죠. 상담을 통해 받지 못한 도움을 어쩌면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이야기들을 듣고 내가 처한 상황을 인정 받고,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을 통해 더 잘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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