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할 수 없었던 결혼 생활의 갈등,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남편과의 갈등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고 그 원인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 후 허니문 기간도 잠시, 좀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남편과의 관계로 매일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죠. 그런데 문제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의 느낌이 지금까지 이전 연애나 다른 인간관계에서 경험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좋은 말로 달래거나 울며 애원을 해 봐도, 때로는 답답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 봐도 남편의 반응은 늘 한결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등이 발생하고 난 뒤에는 단 한 번도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었다는 느낌이 없었죠. 늘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은 내 쪽이었고, 남편은 무덤덤하게 내가 미친여자 역할이라도 된 듯한 드라마를 제삼자처럼 관람하고, 그 다음 날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모닝허그를 하고 커피를 만들건데 같이 마실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문제를 없는 취급하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내 감정을 무시해버리는 남편의 태도에 저는 더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조차도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남편 때문에 더욱 마음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차라리 내가 화를 낼 때 상대방도 같이 화를 내고, 필요한만큼 감정을 표출하고 난 뒤, 사과할 일이 있었다면 사과하고 같이 화해를 통해 풀어가고 하는 일반적인 관계라면 갈등이 발생할 때 힘이 들어도 납득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연애도 많이 했었고, 싸우고 풀 때마다 마음은 아파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도저히 이해가 되는 구석이 없었습니다. 답답해서 미쳐버릴 지경이었죠. 그런데 이런 사람이랑 평생을 살기 위해 결혼 서약을 했다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주변에 이야기를 해 보았지만 남편을 순하고 착한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친구들이나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남자들은 원래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특히 저를 잘 아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일수록 때로는 제가 성깔도 부리고 예민하기도 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남편이 같이 큰 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묵묵히 듣기만 했다는 점에서 남편이 참 착하고 순한 것이 아니냐고 생각을 했죠. 또 덧붙여 기대치를 낮추고, 결혼은 연애랑 다른 것이니 좀 봐주기도 하고 너그럽게 상대를 보듬어야 한다는 조언들을 했습니다.
그런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듣다 보니, 처음 해 보는 결혼이기 때문에 내가 잘 모르고, 원래 결혼이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하나의 가정을 만드는 과정이라 쉽지 않은 것인데, 혹시 너무 내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닐까 자책을 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더 노력하면 될 것을 남편한테만 너무 기대려고 하거나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더 나를 내려 놓고 상대의 필요와 욕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갈등을 줄이려고 노력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미 이 관계 속에서 살아오면서 최대한으로 노력해서 상대를 이해해 보려고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나의 기대치를 낮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기대치만 낮춘 정도가 아니라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의 기본적인 필요와 욕구들조차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서서히 제 스스로를 파괴하고 망가뜨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랑의 반댓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울고 불고, 애원하고, 어르고, 달래고, 설득을 해보고, 소리도 쳐보고, 화를 내어도 늘 무반응,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사람. 나를 사랑한다고 믿기가 어려웠죠. 그래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면 고민도 하지 않고 당연한 것 아니냐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했었습니다. 그 때마다 남편은 교과서나 백과사전에서 읽은 적이 있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만 받아들인 초등학생과 같은 답변을 했습니다.
"사랑은 서로 함께하는 것이지." "사랑은 상대방을 아껴주는 것이지."
지금껏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상대를 진정으로 아껴주고 함께 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왜 나는 그렇게 느끼지 못해 힘이 드는지를 토로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맥상 이런 대답을 하는 것은 어린아이도 할 수 있는 도돌이표같은 대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나름 저와 결혼하기 전에 7년 동안 연애를 했던 여자친구도 있었던 사람이 이런 대화 중에 하는 대답이라고 보기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랑을 해 본 적도 없고 고민해 본 적도 없는데 책이나 영화에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말을 들은 어린아이가 하는 정도의 대답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함께 하는 것이 뭔데? 자기한테는 상대방을 아껴주는 게 무슨 의미야?"
이렇게 한 단계 발전한 질문을 던지게 되면 그 다음부터 남편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기 시작합니다. 제가 답답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느냐고 추궁을 하면
"나도 알아. 그래서 설거지도 하고 쓰레기도 버리고 요리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잖아.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거야?"
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또 다시 기운이 다 빠지는 기분이 듭니다. 대화 중 누가 집안일을 하지 않아서 문제라는 주제로는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고, 정신적인 지지를 받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것, 내 마음과 기분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내게 상처가 되니 더 나은 관계를 위해 그 부분을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 사람인 것처럼, 혹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없는 셈치고 또 다시 자신의 기준에서 이 관계에서 본인이 하는 노력과 그 정당성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합니다.
그나마 이런 대답이라도 하는 날은 다행이었습니다. 수많은 경우 눈맞춤도 하지 않고 촛점 없는 눈으로 멍 때리다가 대화 중 잠이 들어 버리거나 반수면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억지로 듣는 척도 잘 되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가락 냄새를 번갈아 가며 맡는 반복행동, 손에 잡히는 것은 무엇이든 만지작거리는 행동을 하기 일쑤여서 내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생각때문에 더 상처를 받고 속이 상했습니다. 그런 날에는 속이 상해서 혼자 울다가 잠든 적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런 반응은 아스피들의 멜트다운 중 한 유형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의 감정에 대한 이해에 필요한 뇌의 기능이 미발달된 아스피들이 본인이 잘 이해 할 수 없는 감정교류의 문제로 갈등을 겪는 상황이 되면, 실제로 두통이나 다른 신체적 통증을 느끼거나, 노력을 해야만 그나마 좀 할 수 있는 눈맞춤이 더더욱 되지 않고, 잠이 들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아스피 본인을 위해서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죠.
커플상담을 몇 번이나 시도해 보았지만, 늘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남편과 저는 각자의 입장만을 이야기했고 상담사가 이야기하는 해결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미 최대한으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제게 더 감정조절을 할 것을 조언하거나 남자들의 공감 능력 부재에 대해 강조를 하는 것은 독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남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저는 이미 결혼 생활의 갈등을 개선하기 위한 각종 서적을 섭렵하며 읽고 남편에게 설명하려고 하다가 지치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고, 제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감정조절과 홀로 분노와 속상함을 삭히는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상담 내용은 오히려 저를 더 지치게 만들었고, 상담을 했는데도 상황이 더 나빠지기만 하는 것이 절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당연히 육아는 지옥과도 같은 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전혀 모르던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한 것이었고, 당시에는 남편도 아이가 생기고 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를 했습니다. 남편과 가장 많이 갈등을 겪고 힘들었던 부분은 남편이 도통 가장으로서의 역할, 남편으로서의 역할, 부부라는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폐가 있다보니 당연히 본인 위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 필요한 상호적인 노력과 희생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런 개념을 상식선에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남편이 아빠가 되고 예쁜 아이를 보고 하면서 그런 부분을 스스로 느끼고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제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고, 육아로 더 힘들어진 부인을 이해할 리 없는 남편은 저를 더욱 절망에 빠뜨렸습니다.그 와중에 시어머니와의 신경전, 아이 육아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대한 소통 불가, 낮시간 독박육아와 이를 남편이 전혀 진심으로 공감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따르는 외로움이 저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출산 후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은 기댈 곳 없는 남편과의 관계 속에서, 그것도 친정은 한국에 저는 호주에 멀리 떨어진 상황 속에서 버틸 힘을 잃어 갔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뇌의 발달장애이기 때문에 예쁜 아이를 본다고 해서 갑자기 이런 가족을 만들어 준 부인과 가족에 대한 감사함, 배려, 희생하고 싶은 마음과 같은 것들이 커질 리 없습니다. 아스피들은 마음이론의 결핍으로 상대방의 고통, 슬픔, 아픔, 기쁨 등을 본다고 해서 그것을 정형인들처럼 즉각적인 공감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정형인들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아스피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물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아스피 본인의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고, 더군다나 신생아 육아라는 감각 과부화가 엄청나게 발생하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늘 실패로만 끝났던 커플 상담을 다시 해 보자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함께 부부상담을 받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 혼자 먼저 상담을 받고 다음에 자기 혼자 상담을 받은 다음에 같이 가서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상담사 앞에서 또 싸우기만 할 것이고 자기 이야기를 하지 못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저 혼자 처음 부부상담을 받으러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혼자 가게 된 부부상담에서 상담사로부터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개념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습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