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것을 알게 되다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에 대해 알지 못하고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기존에 발생하던 남편과의 갈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려움과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인 부부들에게도 출산과 육아는 어려운 고비임에 틀림 없습니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아내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고 이를 정확히 공감해주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부부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일반적인 일입니다. 하물며 정형인들에게도 힘든 이러한 과정은 남편이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경우, 즉,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경우, 어려움의 수준을 넘어서 제 개인적인 의견과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정형인 배우자에게 있어서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경험과 과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배우자 (남편)는 고의적으로 부인의 고충을 외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알아채고 이해할 능력 자체가 원천적으로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인의 입장에서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든 없든, 임신을 했거나 출산 직후 신생아를 돌보고 있는 경우 호르몬의 변화와 수면 부족, 몸의 변화와 통증을 직면하는 동시에, 남편이 공감을 해 주지 않고, 필요한 위로의 말이나 도움의 손길을 먼저 건네지 않음으로 인해 받는 아픔과 고통, 외로움은 모두 같은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자폐가 없는 정형인 남편의 경우, 고의적이거나 특별히 공감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인에게 그렇게 대할 가능성이 적고 개선의 가능성도 큰 반면,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경우, 100% 아내에게 그러한 고통을 줄 것이고 개선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죠.
이런 상황에서 남편의 자폐를 적어도 알고 있다면, 그런 행동들이 고의적인 것이 아니라 발달 장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미리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를 모르는 경우, 부인이 느끼게 되는 고통과 외로움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설마 아무리 몰라도 이렇게까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외롭게 하는 것일까. 정형인의 뇌로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죠. 제가 느낀 배신감과 분노, 고통과 외로움 그 모든 것들은 다양한 색채를 띠고 있던 제 인생이 마치 흑백으로 변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파괴적이고 폭력적이었습니다.
제가 꿈꿔 왔던 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이로움과 행복감, 즐거움에 대해 느끼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 즐거움을 내비쳐도 함께 아이를 만든 남편은 진심으로 즐거워 하거나 공감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힘듦에 대해 토로해도 무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거나, 때로는 오히려 제게 짜증이나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아스피들은 자신이 이해할 수도 없고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감정적인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면, 반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그것이 자신을 향한 것인 경우 부당한 공격을 받는다고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무반응으로 대응하거나 멜트다운으로 넘어가 되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화 불가, 공감 결여로 어려웠던 제 결혼 생활이 아이를 낳고 좀 나아지기를 바랬던 실낱 같은 희망마저 무너지고, 아이를 키우며 어렵고 힘들어도 마땅이 누려야 할 행복마저 사라져 버린 것 같아 절망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남편은 그 모든 갈등에도 불구하고 마치 기계처럼 한결같이 늘 저를 사랑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저를 힘들게 하는 행동에 악의가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분명 나를 분노하게 할 정도로 적절한 반응과 공감을 보여주는 데에는 실패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고 진심으로 자신의 역할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 찾아 간 부부상담의 첫 세션에서 이러한 저의 이야기들을 모두 들은 상담사분은
'남편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라고 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저의 설명에는 위의 내용들에 추가로 눈맞춤을 잘 하지 못하고 갈등 상황에서 틱처럼 보이는 반복행동 (제 남편의 경우에는 손가락을 코에 문지르며 냄새를 맡는 행동. 긴장하거나 갈등이 고조 된 경우에 보이는 행동)이 있는 점, 그리고 '사랑'이나 '가족', '남편의 역할' 등과 같이 추상적이지만 상식적인 개념에 대한 이해가 나이에 비해 매우 떨어지는 점, 당연히 전반적으로 공감능력이 떨어지고,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파악이 안 되는 점 등등, 지금 생각하면 매우 일반적인 고기능 자폐 스펙트럼, 아스퍼거 증후군에 해당하는 특징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결혼 상담에 너무 많은 실패를 한 터라, 결혼 상담 경력 20년차의 아주 경험이 많은 상담사 분을 찾아갔던 상황이었습니다. 나이가 꽤 지긋한 중년의 백인 상담사 분이었습니다. 그 날 상담사 분이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알고 이야기를 해 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만약 그 분이 다른 상담사 분들과 마찬가지로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파악하지 못하고 제게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기대치를 낮추고 남편을 더 이해하라고 조언했다면 저는 더욱 고통을 받고 절망을 했겠지요. 진실을 알 게 된 것은 분명 유레카와 같은 순간이었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그 상담사 분을 만난 것은 지금까지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분이 제게 추가적으로 한 말이 있었습니다. 남편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다는 것은 확신하지만 자신은 뉴로다이버스 커플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관계 개선을 위한 도움을 줄 수 없고, 제가 이 관계 때문에 우울증이나 다른 어려움이 있으면 개인 상담은 가능하지만 그 이상의 도움은 줄 수 없다는 것이었죠. 나아가, 자신이 오랜 시간 커플 상담을 해 오며 봐 온 바로 뉴로다이버스 커플의 경우 이혼율이 80%인데, 이혼을 안 하고 사는 경우에도 별거를 하거나 다른 나라에 떨어져 사는 등 특수한 케이스가 많고, 이혼을 안 하고 오랜 시간 살게 되는 경우 정형인 배우자, 주로 부인은 스스로의 모습을 잃고 괴로워 하게 되고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다양한 정신과적 질환에 시달리며 모든 에너지를 관계의 개선을 위해 쓰지만 나아지지 않아 고통받고 좌절하는 결말을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아직 나이가 젊고 결혼한 지 오래 된 것도 아닌데, 좀 더 경제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진심으로 충고하고 싶다
지금 당장 이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좋지만, 당장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고 했습니다.
그 모든 조언들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제 막 돌이 된 아이가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관계가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찾아 간 부부 상담에서 이혼이 답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한 시간 정도의 상담을 마치고 나와 어안이 벙벙하고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혼자 차에서 두 시간을 울었습니다. 엄마를 애타게 찾을 아이 얼굴이 아른거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돌아왔지만, 만약 친정이라도 같은 나라에 있었더라면 집에 돌아갈 생각을 안 하고 친정에 갔을 것 같습니다.
상담사는 제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다면 인터넷에 꽤 많은 자료가 있으니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구요. 읽으면 읽을수록 '그래그래' '맞아 이건 우리 남편 이야기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답을 찾지 못했던 이 관계의 갈등의 원인과 문제점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 같을 것이라구요.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할 것인지는 제가 천천히 생각한 후 결정해도 좋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에 남편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에 대한 내용도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