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게 되었던 2017년, 이미 저는 많이 지쳐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직 8-9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딸아이를 친정도 없는 해외에서 혼자 돌봐야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이미 지치고 우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심적으로 저를 더 지치고 힘들게 했던 것은 저의 고충과 어려움을 공감해주거나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편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남편이 아스퍼거이기 때문에 기대할 수 없는 부분 혹은 다르게 설명해야 했던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당시에는 이를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저를 날카롭게 괴롭혔습니다. 나에 대한 마음이 변하고,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 말고는 설명 할 길이 없어 보였던 무심하고 자기중심적인 언행들은 사실 신생아가 태어나고 극심한 삶의 변화를 겪으며 아스피인 남편이 보였던 멜트다운에 해당했던 것이었습니다. 말로는 저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제 마음은 하나도 헤아려 주지 않고, 도움이 필요할 때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했던 남편이 너무 혼란스럽고, 밉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결혼 상담사를 찾아가 남편이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당시, 저는 이렇게 이미 상당히 우울하고 지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심적으로 더 힘들어졌던 때는 남편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것을 알게 된 직후였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며칠을 혼자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읽어보고 고민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접했지만 아직도 너무 혼란스러웠고, 특히 남편에 대한 오만가지 감정이 끓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본인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텐데 나에게 조금도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 너무 원망스럽기도 하고 배신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아니 본인은 몰랐다 치더라도 어머님은 본인 아들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셨을텐데 그 동안 나를 속인건가 싶어 치가 떨리기도 했습니다. 치료될 수도 바뀔 수도 없다는데 절망적인 생각도 들었습니다. 차라리 남편이 아스퍼거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무언가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는 해결책도 없는 것 같고 내 인생이 이대로 망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남편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끓어오르다가도 어린 딸아이를 생각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인생이 너무 불쌍하고 슬픈 생각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미치기 직전이었습니다.
아직 남편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새로이 정확히 이해하기도 전에(즉, 아스피인 남편의 매우 다른 사고 방식과 상황에 대한 대처 방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저는 제 감정과 복잡한 마음, 생각을 견디지 못하고 남편에게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당연히 차분하고 논리적인 방식이 아닌, 매우 감정적이고 정돈되지 못한 방식이었죠. 아직 제 생각도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온 날선 말들이 상황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남편을 탓하는 말투, 모두 남편의 책임인 것 같이 느끼는 감정, 아스퍼거에 대한 부정적인 라벨링 등...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이 도저히 소화할 수 없는 방식과 내용으로 남편에게 '아스피'라는 부정적인 낙인을 찍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즉각적인 거부반응을 보였고, 자신이 아스피인 것이 확실하냐는 부정을 하다가 제가 강하게 쏘아 붙이면 그럼 만약 아스피가 맞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 어차피 치료할 수 없는 것인데 자기는 그냥 이렇게 태어났을 뿐이다라는 식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소통 방식이 이미 남편에게는 너무 과한 것이어서 남편은 이미 멜트다운 상태로 더 이상의 소통은 커녕 제대로 기능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정형인적 사고방식에 따라 제 감정에 대해 누군가 알아주어야 했고 그건 당연히 남편이어야 했습니다. 그게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마음에 저는 더더욱 많은 시간을 들여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한 자료와 책을 미친듯이 찾아 읽기 시작했고, 남편에게도 읽을 거리를 공유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기만의 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 남편은 제가 보내 준 모든 자료들에 대해서 무시하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혹여나 읽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 저와 대화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저는 점점 저 혼자 또 다시 이 관계에서 희생하고 노력하는 것 같은 생각에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더 남편을 비난하면서, 마음 속으로는 공감하지 못하는 뇌구조 때문에 내 어려움과 고충에는 관심도 없고 본인만 편안하면 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어린 아이 뿐 아니라 불평하는 부인까지 더 많은 과부화가 걸렸던 남편은 더더욱 소통을 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공격성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더 방어적으로 변하고 더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서로에게 너무나 큰 상처와 고통이 되었던 시간들이었죠.
저는 점점 더 우울해져 갔습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갔습니다. 특히 한국에서의 삶과 커리어를 모두 포기하고 남편과 결혼생활을 위해 호주에 정착했던지라 이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니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시절 저는 어느 정도 쇼핑 중독 문제도 있었던 것 같고, 잠시라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안증에 시달려 스스로를 괴롭혔습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 특히 친정과 친한 친구들에게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의 문제들이 제 삶 전체의 실패로 비춰질까 두려우면서도 또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이상하게 뒤얽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본질적인 결혼 생활 관계 개선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결혼과 삶의 본질적 측면 (소통과 이해, 사랑과 배려, 신뢰 등등)에 대한 불신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는 늘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믿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을 꿈꿔왔었습니다. 이런 부분들이 조건이나 다른 모든 것들보다 중요하다고 믿어왔었죠. 하지만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게 된 이후에는 그것이 현재 배우자와 과연 가능한 것인지, 나아가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기는 것인지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유를 찾아 어디에라도 탓을 하고 싶었지만 그조차도 명백하게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답답하고 화가 나다가 억장이 무너지고, 너무 슬퍼 몸을 가누기도 힘든 마음이 들다가도, 다시 분노와 배신감이 치밀고, 절망이 밀려오다가 주저 앉고 싶어 무기력해졌습니다.
이런 우울증을 극복하는 데에는 정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나마 남편의 아스퍼거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빠른 극복이 가능했던 것도 같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배우자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정형인 배우자가 알게 되었을 때, 많은 정형인 배우자들이 러스 커블러의 감정 곡선에 따른 감정 변화를 겪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감정 곡선을 거치며 우울증을 서서히 극복하게 된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통해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