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게 된 뒤 겪은 감정의 변화 1편
지난 글에서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게 된 시점과 직후에 제가 겪었던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었는데요. 오늘은 그 때 언급했던 커블러 로스의 감정 변화 곡선에 대해서 포스팅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알게 된 이후에 제가 원하던 결혼 생활과 관계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 제가 생각했던 사람/배우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배우자)가 제 옆에 있다는 것 때문에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정형인 배우자들이 상대방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알게 된 이후에 흔히 저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마치 소중한 사람이 죽는 경우나, 가까운 가족 구성원의 갑작스러운 장애를 받아 들여야 하는 경우, 시한부 질병에 대한 진단을 갑자기 받아 들여야 하는 경우에 이를 받아 들이기가 너무 힘든 나머지 겪는 감정의 변화와 비슷하다고 해요.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뉴로다이버스 관계에 대해 상담사/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Mark Hutten이라는 분의 자료를 보다가 알게 되었고, 이를 알게 된 이후에 제 감정의 변화들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감정을 직시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마음 속 힘든 감정들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감정 곡선을 통해 언젠가 이러한 격변의 과정이 다 끝나고 수용의 단계에 이르를 수 있다는 이론적인 지식이 어둠 속 한 줄기 빛처럼 희망이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한참 마음이 많이 괴로웠을 때에는 도저히 끝나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이번 글에서는 커블러 로스의 감정 변화 곡선에 대해서 번역하여 지식을 나누고 제 이야기도 덧붙이기로 할게요.
1969년 엘리자베스 커플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박사는 "애도의 5단계", "상실의 5단계" 또는 "5단계"라고도 알려진 "죽음의 5단계"에 대해 썼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단계를 변화, 손실 및/또는 충격에 대한 방어 기제 또는 대처 기제로 식별했습니다. 해당 단계들은 선형 또는 단계별 방식으로 설명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설명을 위한 것으로서, 상실이나 죽음을 겪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경로이므로 현재 유명한 DABDA(부인, 분노, 협상, 우울, 수용) 방식으로 배치되었습니다. "죽음과 그 과정에서"(1969)가 출판된 이후로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감정에 대한 설명은 "커블러-로스 변화 곡선"에 맞게 조정되었습니다.
Kübler-Ross 모델 또는 Kübler-Ross 변화 곡선 모델은 형성된 이후 사람들이 "중대한 변화 또는 손실에 대한 반응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개인 및 조직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Kübler-Ross 모델은 극도로 충격적인 경험이나 직장 및 비즈니스와 같은 부분에서 기타 상황들을 겪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Kübler-Ross 변화 곡선 모델은 변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개인적 상실, 변화, 죽음 또는 극적인 경험을 하는 동안 경험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은 동일하므로 이러한 상황에서 이 모델을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역자: 뉴로티피컬레이디, 원문 출처: https://www.ekrfoundation.org/5-stages-of-grief/change-curve/)
커블러 로스 모델은 원래 불치병을 선고 받고 죽음을 받아 들여야 하는 환자와 같이 죽음, 상실을 맞이한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번역문에서 이야기하는 바와 같이 이제는 큰 변화나 손실을 겪는 상황에 일반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을 알게 되고 난 뒤에 겪은 심경의 변화가 이러한 커블러 로스의 감정 변화 곡선을 통해 꽤나 잘 설명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위 곡선에 따라 제가 겪은 감정 변화를 서술해 보려 합니다.
1단계, 충격 - 사건에 대한 놀람 또는 충격
처음 남편의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알게 되고 이것이 개선의 여지가 없는 발달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과 같은 충격을 겪었습니다. 너무 놀라 현실감이 없었다는 표현이 적당할 것 같아요.
2단계, 부인 - 불신, 사건이 사실이 아닐 거라는 증거를 찾음
그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아닐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단계인데요. '설마 우리 남편이... 그럴리가 없어... 처음에 그럼 어떻게 전혀 이상한 점이 없었지? 그 결혼 상담사가 남편을 보지도 않고 너무 단정 지은 것은 아닐까? 우리 남편이 공감 능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자폐라고 생각될 만큼 이상한 점을 내가 설마 놓쳤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과 부인...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 때문에 아닐거야라는 증거를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3단계, 절망 - 현실이 원하는 바와 다름을 인식. 때로 분노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이 남편은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것이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던 결혼 생활은 불가능 한 걸까? 남편이 상태가 나아지지 않는다던데 그렇다면 나는 결국 소울메이트같은 배우자와 살 길은 이혼을 하지 않는 이상 전혀 없다는 건가? 그게 현실이라는 건데... 왜?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지?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 남편은 알면서도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은건가? 시부모님은? 다들 나를 속인건가? 정말 그렇게 다들 무섭고 나쁜 사람들인데 나는 연고지 없는 이 나라에서 가족이라 생각하고 의지하고 잘 지내려 했던걸까?
수많은 생각들이 저를 괴롭혔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현타'가 오더군요. 그리고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불공평하고 억울하다는 생각... 그런데 남편은 평온하고 내 이야기에 반응도 보이지 않고 나 혼자만 괴로운 상황인 것 같아 더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4단계, 우울 - 기분이 가라앉고 에너지가 없음
분노에도 정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더군요. 분노하는 것과 현타에도 지쳐가는 시점이 왔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판데믹으로 악명 높은 멜번의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고 하는) 락다운이 시작되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남편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린 딸과 집에 갇혀 재택 근무를 하려고 하니 아무도 제 업무 상황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더군요. 번아웃과 우울감이 한 번에 몰려 오면서 저는 점점 깊은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그 전에도 우울감이 늘 있었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싶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고 깨지 않고 싶을 정도의 깊은 우울감이 가시지 않는 나날들이 찾아왔습니다. 수많은 자살 충동과 통제 되지 않는 눈물이 하루를 잠식했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우울증을 겪으며 남편 때문에 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망가진 것 같다는 생각, 남편을 만난 것은 원가정에서 부모님과의 애착 형성의 문제나 그로 인한 내면의 상처 때문인 것 같은 생각, 내 인생이 불행한 것은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탓인 것 같은 생각도 심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린 딸을 생각하면 하루 빨리 우울증을 털어 내고 다시 밝고 행복한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글을 이어가다 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져 5단계~7단계의 이야기는 2편에 계속하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