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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양연화 Jan 06. 2021

어학당의 시간은 빠르다

- 봄날은 간다

서역 만리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 조지훈, <고사(古寺) 1> 중에서


한국어를 배우러 한국에 오는 외국인이 많습니다. 2018년에만 외국인 57,971명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아래 표에서 보듯 외국인 한국어 어학연수생은 해마다 크게 늘고 있습니다.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1년이 후울쩍 지납니다. 

- 2019년 3월 4일 법무부 보도 자료 중에서 


어학당이라는 이름

외국인이 한국어 배우는 곳을 흔히 어학당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명칭은 아닙니다. 대학 부설 한국어교육기관의 이름은 한국어교육원, 한국어문화원, 국제교육원 등으로 대학마다 다릅니다. 호주 사람 샘 해밍턴은 고려대학교 한국어센터에서, 프랑스 사람 파비앙은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미국 사람 타일러 라쉬는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에서 배웠습니다.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이 한국어 교육계의 대표 주자가 되면서 외국인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곳을 ‘한국어학당’ 또는 ‘어학당’이라 통칭합니다. 스카치테이프, 버버리, 봉고와 같이 고유명사의 일반명사화라 하겠습니다. 대학부설 한국어교육기관(법무부에서는 대학 부설 어학원이라고 합니다.)이 정확합니다만, 이 책에서는 언중을 따라 어학당이라 하겠습니다.      


외국인 어학연수생의 어학당 입학 과정(이미지 출처는 https://lei.snu.ac.kr/mobile/kr/klec/regular/application.jsp)


어학연수비자(D-4-1)와 표준입학허가서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오려면 무엇보다 사증(査證, visa, 외국인에 대한 입국 허가)이 필요합니다. 법무부는 한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에게 어학연수비자(D-4-1)를 발급합니다. 이 비자로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6개월간 체류할 수 있고, 연장하여 최대 2년간 머무를 수 있습니다. 이 비자를 받자면 먼저 어학당에 지원하여 표준입학허가서(Certificate of admission)부터 받아야 합니다. 인터넷으로 어학당 정규반에 지원합니다. 수학 능력과 재정 능력을 입증하는 서류(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은행 잔고 증명서 등)를 제출하고 등록금(6개월 치 이상)을 납부하면 어학당에서 표준입학허가서를 내줍니다. 이제 지원자가 표준입학허가서와 다른 서류를 준비해 재외공관에 사증 발급을 신청하면 어학연수비자가 나옵니다.


한국어 프로그램, 정규반과 기타

'정규반(정규 프로그램, 집중반 등, 어학당마다 이름이 다양합니다.)'은 어학당의 기본이자 핵심 프로그램입니다. 어학당 전체 수강생의 80% 이상입니다. 연중 상설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학기를 엽니다. 1급부터 6급까지 단계별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통합 교육합니다. 지원 자격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으로 흔히 성인 학습자라 부릅니다. 외국인 친구가 어학당에 다닌다고 하면 대개 이 정규과정을 말합니다. 정규반에 등록해야만 어학연수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 체류할 수 있습니다.  


정규반 외로 저녁반, 단기 연수반, 특별반도 있습니다. 저녁반이라는 이름 그대로 저녁에 직장인이나 학생이 주로 수강합니다. 정규반과 같이 계절마다 열리는데 봄, 가을에 수강생이 많고 여름, 겨울에는 적습니다. 일주일에 6~9시간 수업을 하며, 어학연수비자는 발급되지 않습니다. 단기 연수반은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 중에 주로 열리는데 대개 3주 프로그램입니다. 짧은 시간에 알차게 배웁니다. 사증면제협정국가 중 90일 체류가 가능한 국가에선 온 학생이라면 비자 없이도 수강할 수 있습니다. 특별반은 외국 대학이나 기관과 협의하여 개설합니다. 이 또한 방학 중에 자주 열리며 2~3주로 비교적 짧습니다.      



1년 4학기, 학기당 200시간


1년은 대략 52주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3개월씩 각각 13주이고, 계절마다 학기가 10주 방학이 3주입니다. 연으로 따지면 1년에 40주를 수업하고 12주를 쉽니다. 수업은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하루에 4시간입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5일을 수업해서 1주일에 20시간이고, 한 학기가 10주이니 학기에 총 200시간을 배웁니다. 그래 이수증에 이번 학기에 총 200시간을 배웠다고 명시해 주기도 합니다. '국제 통용 한국어 표준 교육과정 적용 연구(2017)'에서는 어학당의 정규반 수업 시간을 반영하여 각 등급별 교육 시간을 최대 200시간으로 하여 논의하였습니다.



시작은 배치고사

서울대학교 어학당은 3, 6, 9, 12월 첫 번째 월요일에 학기를 시작합니다. 빠르면 1일(월)이고 늦어도 7일(월)에 개강하는데 학기 준비는 그보다 이릅니다. 학기 시작 전에 배치고사를 보고 수준에 맞춰 반을 나눕니다. 대개 방학 3주 차 수요일에 배치고사(분반 시험)를 봅니다. 전부터 다니던 재등록생은 다음 급으로 올라가거나(진급) 같은 급을 다시 들어야(유급) 하니 배치 시험이 따로 필요 없지만, 신규 등록생은 반드시 배치고사를 거칩니다. 한국어 읽기와 쓰기는 지필고사이고, 말하기와 듣기는 교사와 인터뷰를 해서 판정합니다. 배치 시험 결과에 따라 급을 결정합니다. 방학 중에도 이날만큼은 선생님들이 인터뷰를 하러 학교에 나오십니다. 이제 다시 새 학기가 시작합니다. 


주요 일정

한 학기 50일 가운데 44일을 수업하고, 나흘이 시험, 하루가 문화 수업, 마지막 날에는 수료식을 합니다. 시험은 중간과 기말로 두 번입니다. 5주차 목요일과 금요일에 중간시험을, 10주차 수요일과 목요일에 기말 시험을 봅니다.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네 과목을 보는데, 평균 70점 이상이면 진급합니다. 이때 출석도 중요합니다. 출석률이 낮으면 성적이 좋아도 유급입니다. 최근 어학연수를 목적(핑계)으로 입국한 후 잠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글 처음의 표가 만들어진 배경입니다.). 이런 학생이 많으면 법무부에서 해당 대학교에 불이익을 줍니다. 출석률이 낮거나 장기간 결석하면 학교는 법무부에 통보합니다. 학기마다 한 차례 문화 수업(field trip)을 나갑니다. 교실 밖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는데, 요리, 태권도, 사물놀이를 체험하거나 민속촌, 판문점을 견학하기도 하고 때때로 공연도 봅니다. 학기 첫날 첫 시간에는 입학식을, 학기 마지막 날에는 수료식을 해서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합니다. 


학기를 마치고

학기가 끝나도 일은 남습니다. 학기를 마쳤으니 반별로, 급별로 보고서를 써야 합니다. 수업에 썼던 ppt도 다듬고 활동지도 고칩니다. 때로는 시험 문제도 새로 만듭니다. 이만하면 더 손댈 데가 없겠다 싶은데도 보면 또 고칠 데가 나옵니다. 책을 출간하기 전 3교, 4교, 5교를 보듯 수업 자료 보완에도 끝이 없습니다. 다음 학기도 미리 준비해야 허둥대지 않습니다. 진도표를 짜고 일정을 고려해 문화 수업도 예약합니다. 그러다 보면 방학은 방학이 아니고 어느새 또 분반 시험 날입니다. 




봄이 여름이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오고 또 지납니다. 연분홍 치마는 봄바람에 휘날리고 새파란 풀잎은 물에 떠서 흘러갑니다. 열아홉 시절이 황혼 속에 슬픕니다, 어학당 시간은 참 빠르기도 합니다. (원고지 18장)     

추신:

한국어교육, 한국어교원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십시오. 글로 써 보겠습니다.



책은 위 글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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