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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Dec 24. 2019

나는 비자발적 딩크족입니다.

나는 비자발적 딩크족입니다.

나는 아이가 없다. 엄마가 될 수 있었던 시간이 내게 13년쯤 있었다. 한 남자의 아내이기는 하지만, 아이의 엄마는 아니다. 나는 회색지대에 서 있다. 결혼했으면서 자녀가 없다는 것은 내 또래 여성들 사이에서 쉽게 교집합을 찾아내기 힘든 조건이다. 결혼 후, 나에게 우리 가정에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감기몸살만 걸려도 “좋은 소식이 있는 게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난 그냥 감기에 자주 걸리는 허약체질일 뿐이었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었던 부부동반 모임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이들의 임신과 출산, 둘째 이야기로 꽃 피우기 시작했다. 5년 여가 지난 후부터 그런 모임에서는 늘 무거운 입과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경청하는 것을 나의 포지션으로 삼았다. 내가 알 수 없는 이야기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들로 넘쳐나는 시간에 나는 그 어느 대화에도
 끼어들 수 없었다. 가끔 만나는 조카들을 보며 어렴풋이 아이들이 성장하고 자라는데 수많은 물건들과 돈, 고통, 고민, 번거로움이 존재함을 알았다. 조카들을 보며 얻은 얄팍한 지식으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기도 해보았지만, 여전히 더 깊은 대화로 들어가는 이들에게서 나는 튕겨져 나올 뿐이었다.      

 

자녀를 가질 수 있는 방법들을 현대의학은 갖고 있다. 주변에서 여러 차례 권유와 병원 소개 등을 받았다. 현대의학에서는 불임으로 규정했지만, 사실상 의학적으로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에 시도해볼 법한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와 남편은 그 시도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만성질환자이기도 하고 타고난 저질체력인 내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그 과정을 통과하기 위한 고통은 아이를 얻는 기쁨에 비하면 당연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손상될 내 몸은 또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그 희박한 가능성에 내 부실한 건강을 또 부서뜨려야만 하나. 오랫동안 반복되고 또 반복된 대화로 남편과 나는 우리의 긴 고민을 이만 접고, 현재의 상황에 자족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 후에 다가온 가장 큰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습관처럼 의무처럼 해오던 고민을 멈추어도 된다는 사실은 다소 어색하기까지 했다. 결국 길고도 긴 슬픔의 밤이 끝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사람들에게 나는 임신과 출산이라는 미완의 과업을 완수해야만 하는 존재다. 주변에 우리 가정에 꼭 아이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을 비치고 기도하겠다는 좋은 분들이 계시다. 슬그머니 질문이 올라온다. ‘아이가 없으면 안 되는 걸까’ 아이 없는 가정은 여전히 불완전한 가정으로 비치는 것일까. ‘자녀’라는 존재가 삶의 행복에, 삶의 풍요함에 그렇게 절대적인 변수인가. 결혼한 여성에게 행복의 완성은 임신과 출산이라는 너무나 오래된 명제에서 이제 나는 예외가 되고 싶다. 나는 이제부터  비자발적 딩크족이다.


자녀가 없었던 시간은 사실상 견뎌온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말들이 나를 찌르고 뒤흔들고 지나갔다. 그때마다 나는 주저앉아 그 말들이 내 마음에 더 큰 구멍을 내지 않을 때까지 혼자 신음하며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른다.   


횡단보도에서 아이 엄마 손을 붙잡고 아장아장 걸어가는 여자아이를 보다가, 내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여전히 그런 순간이 문득문득 나를 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나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외출하고 낮잠도 자고, 아픈 아이를 엎고 응급실로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 남편과 쉬는 날 하루 혹은 반나절의 짧은 여행을 가기도 하고, 쇼핑을 하든 외식을 하든 우리에겐 그 어떤 제약도 없다. 아이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부모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다. 넉넉한 삶은 아니지만, 아이들 키우느라 경제적으로 허덕일 일이 없다. 조금씩 여유돈을 모아 취미생활을 즐긴다. 모든 일을 마친 깊은 밤 재울 아이가 없는 나는 좋아하는 책에 깊이 빠져든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은 길을 걸어갈 수는 없지 않을까. 대부분이 같은 길을 가지만, 다른 길로 가는 사람도 있다. "자식을 키워봐야 어른이 된다." 고 말하지만, 나는 어른이 되는 다른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혹 그만큼의 성숙함을 이뤄내지 못한다 한들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나는 아이의 손 대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오늘도 동네를 휘젓고 다닌다. 나는 아이가 없는 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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