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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스 Mar 13. 2022

반사회적 식습관  ‘돼지고기 기피증’입니다.

나는 돼지고기를 먹지 못한다. 최근엔 환경과 지구를 생각하며 채식주의를 실천하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채식이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와킨 피닉스는 “동물들의 권리”에 대해서 말했다. 실제로 와킨 피닉스는 채식주의자다. 이제 어떤 사람들은 동물을 단백질 공급원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동물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명으로 여긴다.  동물 사육으로 인한 탄소발생을 줄이거나, 동물의 생명권 보호를 위해 식욕을 억제하고 채식을 하다니 너무나 대단하다. 나에게 고기는 음식이다. 고기를 좋아하거나 즐기지는 않지만, 먹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다만, 돼지고기는 예외다. 먹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 먹을 뿐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는 데에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사연이 있다.


가장 힘들었던 사람들은 나의 가족들이었다. 한우는 언제나 비쌌다.  우리 식구가 배불리 먹기는 어려웠다. 당연히 우리 집 밥상에 자주 오르는 건 돼지고기였다. 고기를 거부하는 내게 엄마는 온갖 회유와 설득을 시도했다. “너도 돼지고기를 먹으면 얼마나 좋니?” “딱 한 번만 먹어봐” 그나마 접근하기 쉬운 양질의 단백질이던 돼지고기를 안 먹는 나는 늘 엄마의 걱정을 들었다.  수많은 설득에도 나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스스로 라면을 끓일 수 있게 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식구들이 삼겹살을 먹을 때는 엄마의 잔소리를 피해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도시락을 싸가는 덕에 이런 나의 특이한 식성이 타인에게 드러날 일이 거의 없었다. 문제는 대학생이 된 후부터였다.


대학생이 되어서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되자 나와 다른 식성과 기호를 가진 타인들과 밥을 먹는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밥을 먹자는 동기들, 밥을 사주겠다는 선배들, 이런 다양한 사람 들과의 식사자리가 자주 찾아왔다. 외부 식당에서 밥을 사 먹을 때는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학식이었다. 가성비 좋은 학식은 모두가 선호하는 점심 메뉴였다. 다만 그날 메뉴에 제육볶음이나 돈가스가 나오면 나는 혼자 패닉에 빠졌다.

특히 돈가스가 나올 때는 가장 힘들었다.


 제육볶음은 밥과 김치, 국 같은 간단한 반찬이라도 있지만 돈가스는 약간의 샐러드와 밥, 묽은 수프가 전부였다. 그때마다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해요’, ‘돈가스를 별로 안 좋아해서요’라고 무난하게 잘 대처해 갔다. 그러다 어느 날 선배들 여럿과 밥을 먹게 되었다. 그날 메뉴는 돼지고기가 포함된 메뉴였다. 내가 고기에 손도 대지 않자 한 선배가 물었다. “넌 왜 안 먹니?” 대충 얼버무리려 했지만 선배는 집요했다. 피곤해진 나는 그만 나의 특이한 식성을 실토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나를 신기한 생물처럼 바라봤다. 짖꿋은 선배는 내게 질문공세를 이어 갔고, 그 질문은 “너  소고기는 먹니?” 까지 이르렀다. “네”라는 한 마디 대답에 그 선배는 나를 ‘비싼 소고기만 먹는 아이’라고 놀려 댔고 그 선배는 나를 볼때마다 그렇게 불렀다.


 이런 일이 있고 보니, 나는 이런 나의 반사회적인 식성을 감추게 되었다. 제육볶음을 잘하는 식당에서 사람들이 모두 제육을 먹을 때 나는 순두부 찌개를 먹었다. 돼지고기 불고기 백반으로 유명한 식당에 가면, 나는 함께 나온 된장국과 밑반찬을 먹었다.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돼지고기는 모두가 선호하는 음식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는 이런 내 특이한 식성을 두번다시.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돼지고기를 먹는 자리에 가게 되면 아무도 모를 곤경에 처한다. 대학시절 동아리에서 야유회를 간 적이 있다. 근교에 있는 선배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간곡한 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따라나섰지만, 아차 싶었다. 역시나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고기는 넉넉했다. 나는 간절히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았다. 학생들이 준비한 식단에 반찬이 있을 리 없었다.


 야채도 상추와 오이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먹을 것은 그 두 가지뿐이었다. 누군가 고기를 굽기 시작했고, 고기가 익자 다들 젓가락질이 바빠졌다. 오갈 곳 없는 나의 젓가락은 빈 허공을 오르내렸다. 오이는 그나마 먹기가 낫지만 양이 적어 금방 바닥났고, 넉넉한 것은 상추뿐이었다. 토끼처럼 상추만 뜯어먹을 수도 없었다. 상추는 고기를 싸기 위해 존재한다. 더구나 고기 없이 상추만 먹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나는 난감하고 배가 고팠다.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삼겹살, 중간중간 분위기를 띄우는 재밌는 사람들 덕분에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식사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 그때 나는 절박하게 밥을 기다렸다. ‘밥이라도 먹으면 이 허기는 면할 수 있겠지’ 나는 간절히 기다렸다. 밥을 가지러 간 누군가가 말했다. “밥 누가 했어? 밥솥 스위치를 안 꽂았네” 사람들은 누가 그랬냐며 핀잔 반 웃음 반이었지만, 나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패닉에 빠진 내게 누군가 하는 말이 들렸다.  “배불러서 밥 안 먹어도 될 것 같은데.” 다들 밥 생각이 없는 듯했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했다.

 모두가 즐겁고 배부른 그날의 모임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고, 나는 집에 오자마자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돼지고기를 못 먹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꽤나 불편한 일이다. 김치찌개는 햄이나 소시지, 돼지고기를 피해 가며 먹어야 하고, 햄버거의 패티를 빼고 빵만 먹거나 핫도그를 먹을 때 소시지만 남기고 먹는다. 족발 보쌈 같은 야식은 우리 집에 없다. 곱창전골을 먹어야 하는 날은 당면만 부지런히 건져 먹는다. 사람들이 볼 땐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어쩔 수가 없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식당의 다수는 돼지고기를 주메뉴로 한다. 음식의 종류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상당히 좁아진다. 그러다 보니,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먹는 즐거움이 가장 큰 즐거움이 되고, 잘 먹는 사람이 칭송받는 요즘 세상에서 나는 반사회적인 식성을 가진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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