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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May 28. 2024

꿈속에서 만난 선배

꿈을 꿔 본 적이 언제였던가? 자고 나면 전혀 기억은 없으면서, 잠 만 설치게 만드는 일명 개꿈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선명하게 생각나는 꿈이 최근엔 없었다. 꿈에서, 선배와 나는 응접실 같은 곳에 앉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항상 치열하게 살았던 선배는 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의 초청으로 연구를 하러 간다고 했다. 꿈의 대부분은 어떻게 미국의 초청을 받았는지에 집중되었다. 말미에 연구를 하러 가기 전 사전 답사 형식의 여행을 가려는데, 같이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난 뜬금없다는 생각으로 '형수 님하고 같이 가시면 되지요.'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대답을 듣고 난 선배의 표정은 보지 못한 채, 꿈에서 깨어났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의 꿈을 꾼다는 것은 일상적일 수 있지만, 문제는 이 년여를 혈액암으로 투병하다 얼마 전 영면에 든 고인이라는 것이다. 꿈이 너무도 선명하고 괴이한 생각이 들어, 아침 준비를 하고 있던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아내는 죽은 이가 꿈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막연히 불안해했다. 출근하는 나의 등뒤로 '아무거나 막 만지지 말아요." 한다. 전기 분야 전문성이 부족한 내가 섣부르게 행동할까 봐 불안한 눈치다. 출근하며 전철 손잡이를 붙잡고 서서 눈을 감으니, 꿈이 돌이켜지면서 부고를 받던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내와 과천의 둘레길을 걷고 있다 비보를 접했다. 얼마 전, 밝은 목소리로 전화 통화한 기억이 남아있는 선배의 부고였다. 보낸 사람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이름이었다. 평상시 같으면 전화를 꺼내보지 않았을 텐데, 걸음 수를 알아보는 앱을 보려고 꺼내는 바람에 부고를 보게 되었다. 내일은 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라 오늘 밖에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거의 뛰듯이 내려와 부랴부랴 집으로 가서 대충 씻은 후 조문할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저녁 일곱 시 반이었다. 현지에 도착해 조문 마치고 다시 올라왔다 자고 내일 근무하러 가기에는 너무 피곤한 일정이었다. 현지에서 잠을 자고 바로 출근할 요량으로 짐을 챙겨 출발했다.


저녁 아홉 시가 훨씬 지난 시간에 들어간 빈소는 쓸쓸했다. 얼마나 많은 조문객이 다녀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들어간 시각에는 두 테이블만 남아있었다. 저녁도 먹지 못하고 출발한지라 요기를 달래고 있는 동안 두 테이블 마저 텅 비었다. 덩그러니 아내와 둘이 앉아 있으려니 고인이 된 선배의 부인과 아들이 왔다. 가끔 눈물을 찍어내면서 털어놓는 선배의 투병생활 이야기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끔찍했다. 통화하면서 밝은 목소리로 괜찮아지고 있다는 말은 연출된 것이고, 누구에게도 투병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고 했다. 통원치료 중 고통 때문에 병원 앞에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말을 할 때, 선배 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배는 정말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다. 허투루 보내는 시간 없이 정해진 목표에 따라 움직였다. 주어진 일은 빈틈없이 해내려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예민한 상태로 스스로를 닦달했다. 일 년여 같이 근무하면서 수없이 들어온 인생사는 외울 정도다. 어릴 때 정말 가난했었다. 폐지를 수집하는 아버지의 리어카를 뒤에서 밀면서 지나가는 친구들 얼굴 보는 게 그렇게 창피했다고 했다. 그리고 셋방을 전전했던 궁핍했던 어린 시절이 트라우마로 남아, 아파트보다는 자신의 단독주택 갖기를 갈망했다. 두 번에 걸친 단독주택 집 짓기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두 번째 집이 완성되고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때쯤, 병은 드러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골수이식을 받기 전, 공여 예정자가 가족들의 만류로 공여를 포기하면서 치료가 어려워졌다고 했다. 어느 날 수제 한차 선물세트를 보내왔을 때 느낌이 싸했던 기억이 났다. 몇 달  전부터 시한부 판정을 받고 생을 정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에게 그런 선물을 돌렸을 거다. 선배 부인이 마지막에 했던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도 이틀 동안 업무에 매달려 있었다. 그 아까운 시간에 나와 같이 보내주지 않은 게 못내 아쉽고 야속하다." 선배는 그런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 마을을 대표해서 집 근처에 들어올 대형 건축물 관련 의제기 문건을 검토하고 있었다.

이제 모든 아쉬움 내려놓고 영면에 드시길...     

선배는 비록 시한부 인생을 살았지만, 어릴 적 트라우마를 극복하려 열정적으로 살았음을 인정한다. 그렇지만 삶이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니 문제다. 아마도 죽음으로 가는 막다른 길에서 매일 '내가 잘 못 살아오지는 않았는가?'를 되돌아봤을 것 같다. 그리고 자위하는 것도 있겠지만, 후회하며 아쉬워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선물세트를 보내 주면서 아쉬움을 달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선배 부인의 '아쉽고 야속하다.'라는 애절한 말을 들으면서, 아까운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한 것은 선배가 하늘에서도 못내 후회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삶이란 걸 되돌아보게 되었다. 시한부란 '어떤 일에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둠'이라는 뜻이다. 의학적으로 예후를 빅데이터 화하여 산출되는 것이라 개인별로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은 아니다. 3개월을 선고받고도 몇십 년을 더 산 예를 많이 보고 있다. 나도 그리고 그 누구도 사고든, 병이 들어 인생의 시한이 짧아질 대상자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자신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평소에는 오래 살 것처럼 늘 바쁘게 하루를 보내지만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 잘 사는 것에 대한 많은 글들을 읽어 보았지만, 정답은 없었다. 크게 두 부류다. 첫째는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아등바등 살 거 없이 재미있게 살아라.'라는 부류와 또 하나는 '이왕 살 거면 열정을 가지고 삶의 족적은 남길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라는 부류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 '잘 사는 것'에 대한 절대기준이 있을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을 다 만족스럽게 해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선순위와 비중을 어떻게 달리할 것인가를 잘 선택하는 것이 키 포인트라는 생각이 든다. 후회할 일을 최소로 하는 삶이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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