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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Jun 04. 2024

씁쓸한 퇴장을 보며

최대한 은퇴 시기를 늦추면서 활동적으로 나이 들어가겠다고 시작한 일이다. 경력이라고는 군(軍)에서 지휘관, 참모로 지낸 게 전부인 나에게 쉬운 도전은 아니었다. 그런 시작도 이제 사 개월만 지나면 이 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다. 


이 일을 시작하기 전, 나이 들면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배려하며 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절대로 아닌 게 되었다. 생소한 분야에 전문성도 없이 뛰어든 일이니 자존심에 상처받는 일이 허다했다. 더구나 점점 쪼그라드는 아량과 관용 덕에 삐치는 일이 점점 많아져 갔다. 그리고 같이 근무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도 곱씹어 듣게 되는 습관도 들었었다.


이러구러 이 년이 다 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생겼던 사람 관계의 쭈뼛거림도 다 사라져 간다. 세월이 약인가 보다. 이제는 새삼 이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어쩌면 쉽고 순탄하게 살아오지 않았을 것 같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히고 있다. 이곳에서 청소일, 허드렛일, 잡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말이다. 


누구나 같은 군복을 입고 상명하복이 일상화된 문화에 젖어 있던 나에게 이런 사람들을 만나는 건 신박한 일이었다. 그들과 몸을 부딪고 같이 일하고, 때론 불평의 말을 섞기도 하면서 생각을 공유했다. 쉬는 날, 편하게 소주 한 잔 하면서 살아오고, 살아갈 이야기를 서로 들어주기도 했다. 이래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만나는 것이기에 절대 가볍지 않은 일이라 하는가 보다.


친밀도를 높여가던 사람 중에서 또 한 사람이 떠났다. 같은 날 근무하면서 호흡을 맞춰온 청소 관리원이다. 같이 청소하는 파트너와의 불화, 건강문제로 떠난 두 사람 이후 세 명째다. 그런데 이번에 그만둔 사람은 입주민과의 관계에서 사유가 유발된 것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젊은이들이 월세를 내고 입주해 사는 곳이라, 노년에 접어든 사람과 갈등 생길 일이 있을까 싶은데도 발생했다. 개인 신상이나 이직을 위해 그만둔 케이스가 아니고, 단순히 감정손상에 의해 퇴직하게 된 것이라 무척 안타깝다.


사달은 내가 연차를 쓰고 주간 근무를 비운 사이에 일어났다. 자초지종은 지극히 단순했다. 오토바이 헬멧을 쓴 입주민 한 사람이 분리수거장에 들어와 잘 정리해 놓은 박스 더미를 흐트러트리고 박스 한 개를 꺼냈다. 옆에서 지켜보던 청소 관리원이 "먼저 말을 하고 가져가면 좋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어차피 버릴 박스 하나 가져가는데 꼭 말할 필요 있나요?" 라며 까칠한 응대로 돌아왔다. 


이후 언성이 약간씩 높아져 가면서 말들이 빠르게 오갔다. 청소 관리원은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있어 배달원이라 오해를 했는지 대뜸 퉁명스럽게 말이 나갔고, 입주민은 정성껏 정리해 놓은 박스더미를 임의로 흐트러트린 것에 대한 미안함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게 전부다. 그 이후는 나쁜 감정만 에스컬레이트되었다.


급기야 양측은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다. 입주민이 소장에게 찾아가 컴플레인을 제기했고, 소장은 청소 관리원을 불러 입주민에게 사과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청소 관리원 입장에서는 소장의 일방적 사과 요구가 서운했다. 안 그래도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고 버리는 입주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가, 안 좋은 반응이 되돌아와 감정이 상한 경우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는 그동안 누적되어 왔던 감정을 끝내 억누르지 못했다. 급기야 소장에게 사직 의사를 표시하기에 이르렀고, 일사천리로 사직서가 처리되었다. 저녁에 근무하러 들어온 나에게 인사하러 와서 씁쓸하게 웃으며, 다음 근무 날에는 못 볼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그러면서 목 좋은데 가게를 하나 낼 생각이라고 했다. 전혀 계획적이거나 구체적인 이야기가 아니어서 공허하게 들렸다. 자존감의 상처를 견뎌내지 못한 채, 급작스럽게 퇴직하며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해졌다.   


서로의 마음을 좋지 않게 만드는 상황을 맞닥뜨릴 때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고민해 보곤 했다. 더구나 이런 문제로 퇴직까지 하게 된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보니 더욱 노심초사하게 된다. 나름 고심해본 결과, 쌍방간 '주관적 생각이 우선된 말과 태도'가 문제로 보인다. 이번에 퇴직까지 초래한 일도 상호 간 편견을 가지고 시작된 첫 말에서 시작되었다. 청소 관리원은 젊은 이들은 누구나 예의 없이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한다는 의식을, 입주민은 나는 입주민으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청소 관리원은 고용인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그래서 첫 말이 신경질적인 하이 톤으로 나가게 되고,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 오게 되는 것이다. 첫 말을 편견없이 예의가 묻어나는 말투로 하였다면, 아마 사과의 말부터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이번 사건이 뿌리깊은 세대갈등에서 유발된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한다. 공교롭게도 이곳에 입주해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MZ세대이고, 그들과 직접 맞닥뜨리고 지원하는 사람들은 베이비 부머 세대가 대부분이다. 세대갈등의 두 주인공이 같은 공간에서 이해관계를 달리하고 있는 형국이다. 흔히 베이비 부머와 MZ세대는 '부모와 자식간의 갈등'이라고 한다. 이 경우 개인적으로 '청소 관리원은 자식뻘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입주민은 아버지뻘이라는 의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불현듯 얼마전 나와 갈등이 있었던 입주민과의 통화녹음을 들어 보았다. 내 통화 목소리에서 빠른 속도의 가르치려는 말투의 느낌이 왔다. 이래서 꼰대 소리를 듣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 가끔은 나의 언행을 돌아보면서 다듬어 나가야 하는 당위성을 느끼게 되는 하루였다.     

기분은 선택할 수 없어도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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