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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Jun 25. 2024

바퀴벌레, 잘 알아?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해프닝이 벌어진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불청객, 바퀴벌레 때문이다. 혐오스러운 해충으로 바퀴벌레를 첫 번째로 꼽는 사람이 많다. 대개의 경우 바퀴벌레를 본 여성들은 자지러지는 비명을 질러대기 일쑤다. 이 시기에는 사무실 전화도 핸드폰으로 착신전환 해놓고 상시 출동대기 상태를 유지한다. 그러다 출동하면 본의 아니게 살생의 업보를 수시로 저지르게 된다. 


순찰 중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여성 입주민이, 원망 섞인 눈초리에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5층 계단에 바퀴벌레가 있다 한다. 또 한 번은 여성 입주민이 전화하여 다급한 목소리로 10층 통로에 뒤집어진 바퀴벌레가 있으니 빨리 치워달라고 했다. 즉각 출동하여 처리해 주기는 했지만, 마치 왜 미리미리 잡지 않고 내버려 두었냐고 책망하는 투 같아서 씁쓸했다.


더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중에 하이라이트는 이틀 후 휴일에 있었다. 여성 입주민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까지 내려와 다급하게 자기의 집으로 좀 같이 가자고 말했다. 같이 올라간 집에는 두 명의 친구가 놀란 눈으로 구석에 몰려있었다. 방에 바퀴벌레가 들어와 수납장에 들어갔다고 했다. 수납장에서 물건을 꺼내는데, 나와서 다른 수납장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나는 바퀴벌레가 머물고 있다는 수납장의 물건을 하나씩 꺼내면서 바퀴벌레의 숨통을 조여갔다. 마지막 물건을 들어낸 순간 바퀴벌레는 운명을 직감한 듯 다소곳이 배를 바닥에 대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여성 세 명을 지켜낸 수호신 마냥, 그놈을 생포해 내려와 완벽하게(?) 처리했다.  


이제는 매 번 순찰할 때 계단으로 이동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졌다. 계단으로 오르면서 슬슬 마실 나왔다가 예상치 못한 위협에 내몰린 바퀴벌레를 조우하는 경우가 많다. 구석에서 빤히 쳐다보며 운명을 거스를 수 있는 방도를 찾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러나 어쩌랴. 내 가시권에 들어온 이상 살려서 돌려보내는 불명예는 없어야 한다. 다행히 구멍 없는 벽으로 둘러쳐진 계단이라 수많은 전과를 올리고 있다.


입주민들을 위한다는 사명감으로 전과를 올리고는 있었지만, 살짝 의아한 생각이 든다. 과연 바퀴벌레가 그렇게 질색하여 혐오할 만큼 해충이냐는 것이다. 흔히 경멸하는 대상에게 "바퀴벌레 같은 놈"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걸 들었다. 왜 바퀴벌레가 좋지 않은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평상시 별로 관심이 없었던 곤충이었는데, 부득불 관심을 가지고 확인해 볼 수밖에 없었다.


바퀴벌레는 백악기부터 지구상에 존재한 곤충으로 인간으로 보면 대 선배격이었다. 이후 공룡이 멸종되는 시기와 빙하기를 거치면서도 살아남았을 정도로 생존력이 강했다. 지구의 생태계에서 분해자 역할을 수행하며 식물의 번식을 돕기도 하는 등 생태계의 건강한 균형유지에 기여하는 없어서는 안될 곤충이었다. 단순한 해충으로 폄하하기에는 하고 있는 역할이 너무 중요했다.


바퀴벌레는 모기, 벌, 빈대 등과 달리 공격능력이 전혀 없어, 인간에 대해 직접적인 어떠한 해도 입히지 못한다. 기껏해야 음습한데 거주하며 병균을 옮기고 토사물과 알집으로 인해 집을 어지럽히는 정도의 피해를 준다. 그럼에도 혐오감을 주는 이유는,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에 공존하는 곤충 중에 가장 크다는 것, 군집성의 특징, 그리고 생김새 정도일 것이라 추측된다.  


바퀴벌레는 사람의 비듬이나 각질도 먹을 정도로 잡식성이다. 주로 습기가 많은 곳을 선호하고 부패한 음식, 동물 사체, 곰팡이가 피거나 발효된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습기가 많은 곳을 최소화하고 주방이나 하수구 등을 깨끗하게 유지한다면 바퀴벌레가 발붙이기 어려워진다. 결국 바퀴벌레가 많다는 것은, 인간들이 더 가까이 와서 살수 있도록 터전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본 바퀴벌레의 실체는, 그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혐오의 대상으로 취급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분명해진 것은 인간의 거주구역이 밝고 깨끗하면, 바퀴벌레는 가까이 다가 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가까이 다가오게 한 것은 우리가 헛점을 보였다는 것이고, 어차피 다가왔다면 의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선입견 만으로 혐오의 오명을 덧씨우면 안된다. 나쁜 이미지로 고정하려면, 최대한 실체를 알아보려는 노력을 한 후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종종 그런 노력을 소홀히 한 채, 처음 자리잡은 관념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계단에 설치된 센서등이 켜지면, 삼면이 벽으로 둘러쳐진 구석에서 처연한 눈으로 올려다 보던 바퀴벌레! '난 사실 알고보면 그렇게 나쁜 친구는 아니랍니다." 라며 중얼거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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