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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Jul 16. 2024

선한 마음이 가져온 변화

사람들은 모두 선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성선설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무작정 악한 사람이 되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문제는 그 선함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어떤 사람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자신의 이익과 연관되어 있을 때만 선한 행동을 한다. 나는 아직 전자의 기준을 가진 사람이 후자의 기준을 가진 사람 보다 더 끌린다. 


선하다는 것은, '올바르고 착하여 도덕적 기준에 맞는 데가 있다.'로 사전에 나와 있다. 그런데 용례에 비추어 어딘가 의미가 부족해 보인다. 요즘 많이 사용되는 '선한 영향력'에서 사전상 의미를 적용하면 무언가 어색하다. 오히려 유의어로 제시된 '아름답다', '어질다', '좋다'를 모두 포함한 의미가 더 맞다고 생각된다. 즉 '심성이 어질고 아름다워 타인을 이롭게 하는 데가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내가 선하다는 의미에 집중하는 이유는, 요즘은 정말 만나기 힘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그런 의미에 부합하기에 너무 부족하지만,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이런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었다. 아무튼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이 사람으로 인해 좋은 방향으로의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이런저런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면서 가끔 이런 보석 같은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사람 간의 인간적인 교류가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적 사유이든, 같은 업무를 하는 사람과의 불화이든, 입주민과의 분쟁 문제이든 갑자기 그만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니 서로 나누는 대화의 깊이가 없었고, 정을 나누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또 하나 든다면 각자 맡은 일을 처리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해서 교류를 할 만큼의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로 인해 근무시간이 감정적으로 무료하게 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삭막하게 만들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분위기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런 일에 대한 경력이 없어 신뢰도가 낮은 것은 이해하지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데면데면했다. 조기에 업무숙달을 하고 분위기에 적응해야 하는 나에게 엄청난 부담이었다. 말을 섞기 꺼려하고, 내 딴에는 특별한 것을 보고해도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듯 지루해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바뀌겠지 하면서 견뎠는데,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지속되었고 앞으로도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지속될 분위기였다. 

 

어느 날, 경리대리가 오늘 점심은 다이닝 룸에서 다 같이 모여서 한다며 시간 맞추어 오라고 했다. 다이닝 룸은 입주민들이 행사 때 빌려 쓰는 공간으로, 우리는 청소나 관리만 하고 있던 장소였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끼리는 음식을 주문해서 먹은 적은 몇 차례 있었다. 하지만 전부가 한 장소에서 식사하는 것은 이 년여 근무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의아하게 생각은 되었지만, 그냥 윗사람이 예산을 여유 있게 받아서 음식을 시켜 먹겠지 정도로 생각했다.


이 대목에서 보석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미화여사들 중 한 사람이다. 다이닝룸에서 모두 모여 식사하는 분위기를 주도했다. 다이닝 룸에 가니 커다란 식탁 위에 뷔페식으로 차려진 음식들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설명하기를 시골에 있는 언니에게서 공수받은 농작물로 만든 비빔밥 재료와 직접 짠 들기름, 참기름이라고 한다. 그냥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워 금세 군침이 돌 정도였다. 점심 식사를 이렇게 포식해 본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 많이 먹었다. 식사도 식사지만, 데면데면하던 사람들 간의 찰진 대화도 또 하나의 성찬이었다. 


그날 이후, 지나다 만나면 웃음 띤 얼굴로 반가운 인사가 오갔다. 사무실 사람들 간에도 대화에 정이 실렸다. 업무에 대한 효율성도 배가되고 긴급한 상황도 수월하게 처리되었다. 출근하면서 사람을 만난다는 즐거움이 생겨났다. 모임도 결성해서 근무시간 이외에 만나 편하게 인생 이야기를 하는 계기도 만들었다. 이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모두 한자리에서 편하게 대화하며 식사할 수 있게 만든 한 번의 기회가 정말 많은 것을 변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주인공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대답은 간단했다.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끼리 정을 나누고 지냈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사람도 내가 처음 와서 느꼈던 데면데면한 분위기가  싫었던 듯했다. 미화여사들은 아침 일곱 시 이전에 출근해서 퇴근하는 세시까지 이곳저곳을 쓸고 닦고 다닌다. 어떤 날은 부가적인 일로 퇴근 시간을 넘기는 때도 부지기수다. 몸과 마음이 피곤할 텐데, 이렇게 많은 음식들을 어떻게 준비했는지 생각하니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또 이렇게 같이 모여 아이스 브레이킹 할 수 있는 분위기를 계획한 혜안이 놀랍기까지 하다. 

 

이번 일을 통해서 '용기'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 주인공의 순수했던 시도를 '용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는 흔히 중대한 결단을 앞두거나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필요한 것이 용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비장한 용기'라고 한다면, 주인공의 했던 시도는 '순수한 용기'가 되어야 한다. 본인이 책임감을 느끼고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이 아닌, 그야말로 선한 마음이 발로가 되어 내었던 용기인 것이다. 용기는 욕망과 두려움이 공존할 때 필요하다고 하는데, 욕망은 있지만 두려움을 극복해 내고 시도했다는 것을 높이 사고 싶다. 이렇게 또 한 사람에게서 '순수한 마음으로 감동을 주는 법'이라는 인생 공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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