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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Jul 23. 2024

학습효과의 위력을 보다

특정한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그 일에 익숙해지는 현상을 '학습효과'라고 한다. 순수한 의미로만 보면, 더 숙달되어 가는 과정이 연상된다. 그런데 요즘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는 사례를 많이 목도하고 있다. 최근 뉴스에 '000 학습효과'라며 부정적 의미의 헤드라인이 떠있는 것을 자주 본다. 이것 말고도 청문회에서 고함을 치면서 증인을 죄인 다루듯 하는 국회의원, 엄연히 적대국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평화 운운하며 안보불감증을 조장하는 정치인 등등이 있다. 모두 이전에 같은 행태가 반복되면서 은근한 정치적 이득을 누려온 학습효과의 부정적인 단면들이다. 


정치계 쪽 예를 들었지만, 요즘 연예계 쪽도 부정적인 학습효과의 예가 많다. 얼마 전 있었던 모 가수의 음주운전 사고 후 행한 불법적 사례에 대한 학습효과가 대표적일 것이다. 연쇄적으로 그 가수가 행한 불법적 행태를 모방하는 사례가 뉴스로 다뤄졌다. 나는 이런 사례 중에서 하나를 직접 목도하고 그 폐해를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부정적 학습효과의 폐해와 파급력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실감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여전히 붐비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시달리다 밖으로 나왔다. 마을버스와 지하철을 곧바로 탈 수 있어서인지 근무지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 남았다. 산책 겸 골목길을 돌다 근무지로 가고 있는데, 멀리 근무지 입구에 경찰차들과 견인차가 보인다. 경찰들은 분주히 오가고, 견인차는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려 시도하고 있는 듯했다. 근무지에서 간단치 않은 일이 발생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근무장소로 빠르게 이동해서 전날 근무자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다. 새벽시간에 남성 입주민이 시내에서 인도의 시설물을 충격하는 음주운전 사고를 낸 후, 이곳으로 도주하는 과정에서 주차장 입구의 차단시설의 일부를 파손시키는 불상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거지로 들어간 후, 경찰관들이 도주자가 출입문을 열라는 요구에 불응하자 소방요원들에게 출입문을 강제 개방토록 하여 도주자를 검거해 갔다고 했다. 현재 출입문은 파손된 상태이며, 출입금지 표식이 X자로 설치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근무 교대를 하고 난 후, 순찰을 돌면서 추가 손상 부분을 확인했으나 다행스럽게도 흔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당장 조치해야 할 것은 차단시설을 보수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서 관리업체에 연락을 취했다. 한숨 돌리면서 앉아있는데, 갑자기 경찰관 여러 명이 들이닥쳤다. 다짜고짜 CCTV를 확인하고 증거자료를 복사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절차를 언급하면서 정식 공문을 접수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다소 짜증스러운 언쟁이 오갔고, 결국 경찰 측에서 FAX로 공문을 보내옴으로써 협조 모드로 전환했다. 


경찰관의 요구대로 화면을 전시시켜 주면서, 나도 도주자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차장 입구의 차단시설에 충격하면서 주차장으로 들어온 뒤, 지하 4층까지 내려가며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모습은 불안 불안했다. 그래도 요행인지 다행인지 다른 시설물이나 주차된 차량을 충격한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주지로 올라가는 모습, 거주지에 들어가고 난 후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출입문을 강제로 개방하는 장면, 실랑이 끝에 도주자를 연행해서 나오는 장면이 이어졌다.


'정말 그만하기 다행'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쓴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멀쩡하고 인명 피해가 없었으니까. 본의 아니게 사건에 깊숙이 개입해 전반적 상황을 보고 나니, 음주운전을 한 개인의 순간적 판단 오류가 얼마나 많은 폐해를 가져오는지 실감이 난다. 앞부분이 심하게 파손된 채로 두 개의 주차공간을 차지하고 서있는 차량, 노란 출입금지선이 붙여지고 강제개방으로 안이 들여다 보일 정도로 찌그러진 출입문, 현재의 주차공간을 알려주던 표지판이 뜯겨 나간 차단기, 이 모두가 한 사람으로 인해 이곳을 사용하는 모든 입주민이 눈살 찌푸리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들이다.


오후에도 부족한 부분 복사해 간다고 한 차례 다녀가기까지 하루종일 CCTV와 씨름했다. 전반적인 상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이 집중한 것은, 음주운전 사고 이후 추가 음주 증거 확보였다. 주차를 하고 십 여분 차에 머문 시간, 그리고 거주지에 들어간 후 음주 흔적 등을 중점적으로 보고 있었다. 나중에 뉴스를 보고 알았지만, 사고 당시는 음주를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는 것이다. 이슈가 되었던 모 가수의 행태가 그대로 리바이벌되고 있었다. 이른바 부정적 의미의 '학습효과'가 이루어진 것이다.


연예인을 공인으로 봐야 하느냐는 논란거리가 있다. 사전적 의미상 공인은 '공적 사무에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71%가 연예인을 공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 이유는 넓은 의미의 공인 범위를 적용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 일을 하는 사람'까지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의적, 사회적 책임을 느끼고 모범적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의무감을 강조한다. 이번 사건의 직접적 목도를 통해서, 인기를 얻어가며 팬덤까지 형성된 연예인의 잘못된 행태가 얼마나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게 되는 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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